"기사 잘못 쓴 보도매체 없애는 공작이 여러분이 할 일"

박광연 기자 2017. 7. 24. 22:3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원세훈 녹취록’ 내달 30일 선고공판 중대 변수 부상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24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파기환송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검찰이 24일 대선개입 혐의로 기소돼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6)의 결심공판에 새롭게 제출한 증거를 보면 원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각종 선거개입과 여론조작을 지시한 정황이 나온다.

이날 결심 공판이 이뤄지면서 1심, 2심, 대법원과 파기환송심을 거치며 4년을 끌어온 원 전 원장 재판은 마지막 선고만 남기게 됐다. 재판부는 다음달 30일 선고 공판을 연다고 밝혔다. 통상 검찰의 구형이 있은 뒤 2~3주 안에 선고기일을 잡지만, 재판부는 한 달여의 시간을 두고 각종 법리와 증거를 세세하게 검토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검찰이 새로 제출한 증거들이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을 입증할 증거로 작용할지 재판부의 판단이 주목된다.

이날 검찰이 새로 증거로 제출한 ‘국정원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 중 2011년 11월18일 회의 내용을 보면 원 전 원장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2월부터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다”며 “지부장들은 현장에서 교통정리 잘될 수 있도록 잘 챙겨보라”고 말했다. 당시는 이듬해 4월 치러질 총선을 준비할 때다.

원 전 원장은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1년 앞두고도 ‘후보 관리’에 나섰다. 2009년 6월9일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은 “1995년 선거 때도 구청장은 본인들이 원해 민자당 후보로 나간 사람은 없고, 국정원에서 나가라 해서 나간 것”이라며 “우리 (국정원) 지부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후보들을 지금부터 잘 검증해 어떤 사람이 도움이 되겠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국정원 지부장들로 하여금 현장에서 보수단체 인물들이 적절히 공천되게 하고 사람을 추천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 전 원장이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보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여론 형성에 개입하라고 주문한 내용도 드러났다. 2011년 11월18일 회의 녹취록에는 “일이 벌어진 다음 대처하지 말고, 지금부터 모든 신문 등에 (칼럼과 사설 등을) 준비해 놓았다가 아침 신문에 실리도록 하는 치밀함이 있어야 한다”는 지시 내용이 담겨 있다.

2009년 12월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은 “기사가 난 다음 보도를 차단시키겠다는 건 무슨 소리냐”며 “기사 나는 걸 미리 알고 못 나가게 하든지 아니면 기사 잘못 쓴 보도 매체를 없애버리는 공작을 하는 게 여러분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국정운영 등에 대한 언론 보도나 여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작 정치를 지시한 게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2012년 총선 직후 열린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은 “심리전이란 게 대북 심리전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에 대한 심리전”이라고 부서장들에게 강조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해당 문건을 증거로 채택했다.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이 “기존 녹취록과 다른 내용이 많은데 검찰의 의도적 편집 결과로 보여 자료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며 증거 채택에 반발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국가안보 기능에 한정한 국정원법의 원칙과 한계를 넘어 국정원장의 지위를 이용해 불법적으로 정치에 관여하고 선거에 개입했다”며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의 행위를 “정치와 선거에 관한 여론을 인위로 조성하는 등의 반헌법적인 행태”로 규정하며 “소중한 안보자원이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 사유화되면서 안보역량의 저해가 초래됐다”고 구형 사유를 설명했다.

원 전 원장은 최후진술을 통해 “저는 정치중립과 선거중립을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며 “심리전단 직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행위였다면 바로 중단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6월 검찰은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원 전 원장을 기소했다.

하지만 2014년 9월 1심은 원 전 원장의 선거 개입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2015년 2월 2심은 선거 개입 혐의를 유죄로 보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해 법정구속시켰다. 상황이 반전되는 듯했으나 2015년 7월 대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핵심 증거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아 사건을 파기해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