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신매매로 얼룩진 '성소도시'

심진용 기자 2017. 7. 24. 22: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ㆍ미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대형트럭서 시신 8구 등 밀입국자 ‘비극의 현장’

미국 텍사스주 남부 샌안토니오는 멕시코의 국경도시 누에보라레도에서 차로 2시간 거리다. 주와 주를 잇는 고속도로 3개가 교차한다. 손꼽히는 교통 요충지이지만 바로 이런 조건 때문에 샌안토니오는 밀입국 인신매매의 허브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 또한 갖고 있다. 멕시코의 밀입국업자들이 중남미 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려는 이민자들을 샌안토니오 등으로 데려온다. 그 대가로 높은 몸값을 요구하고, 갚지 못하면 인신매매로 넘겨 버린다.

CNN은 23일(현지시간) 드러난 인명참사로 샌안토니오가 또 한번 인신매매의 진원지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이날 이른 새벽 샌안토니오의 35번 주간 고속도로변 월마트 주차장에 세워진 대형트럭에서 시신 8구가 나왔다. 폭염에 달궈진 차 안에서 질식 등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함께 발견된 부상자는 30명에 이른다. 이 중 1명은 병원에서 숨졌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던 이민자들이 차에 갇힌 채 희생당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경찰이 23일(현지시간) 이 도시 내 한 월마트 주차장에서 9명이 갇혀 있다 숨진 대형 트럭을 조사하고 있다. 샌안토니오 | AP연합뉴스

샌안토니오 경찰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인신매매 차단을 위한 웹페이지를 따로 만들 정도지만, 최근 들어 샌안토니오와 인근 지역에서 인신매매 사건은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지난 7일 멕시코와 과테말라,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출신 72명을 가두고 문을 잠근 대형트럭이 샌안토니오 바로 남쪽 러레이도에서 적발됐다. 그 다음날에는 멕시코와 과테말라 출신 33명을 실은 대형트럭이 국경검문소에서 걸렸다.

지역 시민단체 ‘노예제에 대항하는 샌안토니오’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인신매매 희생자 가운데 25%가 텍사스를 거쳐 갔거나 텍사스 안에서 억류당한다. 지난해 이곳에서만 인신매매 사건 670건이 발생했다. 역시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캘리포니아주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샌안토니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성소도시’ 중 하나다. 불심검문을 하거나, 미등록 이주자 신분을 문제 삼아 체포·구금하지 않는 곳이다. 론 니렌버그 샌안토니오 시장은 “샌안토니오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구에게도 등을 돌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샌안토니오가 속한 텍사스주는 지난 5월 도시의 반발에도 불구, 이민자 단속과 추방에 협조할 것을 의무화한 성소도시 금지법을 밀어붙였다. 법안은 9월 발효된다. 댄 패트릭 텍사스주 부지사는 참사 직후 페이스북에 “오늘 벌어진 비극이 바로 내가 성소도시 금지법을 추진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멕시코 장벽 건설’ 추진 등 국경 통제가 강화되면서 인신매매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3500달러 정도였던 밀입국 수수료는 지난 1월 8000달러까지 치솟았다. 밀입국업자에게 더 많이 의존해야 하는 이민자들은 그만큼 더 위험해졌다. 수수료를 못 내거나 사기를 당하면 인신매매를 당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