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 임대료 인상·가맹본사 구매 강요..'을·병' 등골 빠진다

김강래,양연호,박재영,이희수 입력 2017. 7. 24. 17:52 수정 2017. 7. 24. 21: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핫플레이스 경리단길 주변, 5년새 임대료 2배 '껑충'
편의점주 절반 "창업 후회..임금 더 뛰면 직원 내보내야"

◆ 580만 자영업자의 위기 ② ◆

24일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에 있는 상가들이 텅 빈 채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이곳은 임차료 상승 등으로 터줏대감 상인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한 대표적 상권으로 꼽힌다. [이승환 기자]
수년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서울 망원동과 이태원 경리단길 일대 상가. 골목 곳곳에 트렌디한 감성의 음식점·카페 등이 들어서자 두 곳을 합쳐 '망리단길'이라는 애칭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24일 기자가 방문한 이 일대 상인들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경리단길 일대에서 5년간 양식점을 운영해온 구 모씨(57)는 "5년간 임차료가 두 배 이상 뛰었다"며 "더 이상 가게를 유지하기 힘들어져 다음달에 문을 닫는다. 일산 쪽에서 가게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구씨는 "작년에 근방에 대기업 아이스크림 브랜드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난 뒤에도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10% 이상씩 올렸고 기존 상인들과 재계약을 꺼렸다"며 "장사는 건물 없이 할 게 못 된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동네 자영업자들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것은 비단 '고임금'뿐만이 아니다. 수년 동안 피땀 흘려 상권을 일궈놓으면 느닷없이 임차료를 인상하고, 건물수리·재건축 등 각종 이유를 들이대며 계약 연장을 거부하는 건물주들 횡포는 자영업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실제 여신금융협회가 최근 한국갤럽에 의뢰해 500개 영세 가맹점을 설문한 결과 경영애로 사항으로 불가항력적인 '경기침체'(57.2%) 외에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임차료'(15.8%)가 꼽혔다.

개발과 대기업 진출, 임차료 상승으로 터줏대감 상인들이 대거 쫓겨난 대표 '젠트리피케이션' 1번지는 서울의 신사동 가로수길. 가로수길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 모씨(42)는 "장사가 잘 되면 좋지만 미래는 항상 걱정투성이"라고 하소연했다. 장사가 안 되면 창업할 때 들었던 투자금이나 권리금을 손해 보게 되고, 잘 되더라도 임차료가 올라 언제 쫓겨날지 불안하다는 것이다. 가로수길 인근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2008~2009년쯤부터 임대료가 계속 큰 폭으로 올랐고 2013~2014년에는 대기업이 건물을 통째로 임차하거나 사들이면서 많게는 서너 배 이상 올랐다"면서 "개인 자영업자들이 매달 1000만원씩 하는 임차료를 감당하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힘들게 새로 자리잡아 상권을 개척해도 '가시방석'이기는 마찬가지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5~2016년, 2016~2017년 '제2의 경리단길'이라 불리며 상인들이 상권을 새로 개척한 서울 성수동의 경우 상가 임대료가 각각 1.57%와 4.88%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평균 상승률의 5~6배를 웃도는 상승률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랜차이즈 가맹 자영업자들은 본사 횡포라는 고질적 '갑질'에도 신음하고 있다.

이재학 남서울대 교수가 최근 S편의점에 가맹된 서울 소재 가맹점주 총 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절반 이상(55.6%)이 가맹점 창업에 대해 '잘못된 선택'이라고 답했다. 편의점 본부의 지원에 대해 만족하는 사항이 없다는 답변도 22%에 달했다.

가맹점주들은 본사에 대해 가장 불만족인 사항으로 '24시간 영업 강요'(17.1%)를 꼽았다. 과도한 로열티 요구(15.8%), 일일 매출금 송금(14.5%), 과도한 위약금 요구(11.2%), 영업독점권 미인정(10.5%) 등에도 불만이 많았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피자 프랜차이즈 매장을 운영하는 문상철 씨는 "2011년 10년 동안 지속된 본사와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재계약 협상을 진행하던 중 '재계약을 하게 되면 리뉴얼 공사를 해야 한다'는 본사 측 요구에 수천만 원을 손해봤다"고 말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가맹 본사는 가맹 사업자 점포 환경에 드는 비용을 20% 이내에서 지원하도록 돼 있고 점포 확장이나 이전 시에는 40%를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문씨는 공사비를 전혀 보상받지 못했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로 최저임금 인상까지 발표하면서 점주와 종업원 간 '을·병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상당수 편의점 점주들은 임금이 더 오르면 알바생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김상훈 스타트비즈니스 대표는 "정부가 임차료나 본사의 정책 등 업주가 예상 불가능한 리스크를 줄여주지 않는다면 결국 인건비를 놓고 '을'격인 영세업자와 '병'격인 종업원 간에 분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강래 기자 / 양연호 기자 / 박재영 기자 / 이희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