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 스크린의 시대정신, 송강호로 보는 韓 근현대사

입력 2017. 7. 2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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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장진리 기자] 배우 송강호의 필모그래피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흐름과 그 궤를 같이 한다. '공동경비구역 JSA', '효자동 이발사', '변호인', 그리고 오는 8월 개봉을 앞둔 '택시운전사'까지, 송강호의 얼굴 속에 격동하는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있다. 분단의 아픔을 웃음과 눈물로 짊어진 북한군 중사부터 대통령의 이발사, 불의에 항거하는 변호사, 민주화항쟁의 참상을 목도하는 평범한 택시운전사까지, 송강호의 얼굴에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다. 

#공동경비구역 JSA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남북한 군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박찬욱 감독이 지난 2000년 선보인 시대의 역작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측 초소에서 북한 초소병(신하균)이 총상을 입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남북은 이 사건을 두고 북한의 납치설과 남한의 기습테러공격으로 엇갈린 주장을 펼친다. 중립국 감독 위원회에서는 책임수사관으로 취리히 법대 출신의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이영애)를 파견하지만, 사건 당사자인 남한의 이수혁 병장(이병헌)과 북한의 오경필 중사(송강호)는 상반된 진술만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남북한 병사들의 진한 우정 이야기는 아픈 분단의 현실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자아낸다. 

북한의 오경필 중사 역을 맡은 송강호는 진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인물을 완벽히 연기해내며 '국민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를 쌓기 시작했다.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쌓인 금지된 우정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분단의 현실 속에 우뚝 선 인물이 된 송강호를 이 작품을 통해 우리 영화계의 하나의 시대정신이 되기 시작했다. '송강호가 웃으면 영화가 슬프다', 어느새 영화계에서 하나의 법칙이 되어버린 문장의 시초가 된 작품이기도 하다. 

#효자동 이발사 

청와대가 경무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 경무대가 위치한 동네 효자이발관의 이발사 성한모(송강호)는 나라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믿는 평범한 시민이다. 어느날 성한모는 중앙정보부 직원을 간첩으로 오인해 신고하고, 대통령은 성한모의 감시정신을 높이 사 모범시민 표창장을 하사한다. 이 일로 청와대 이발사가 된 성한모의 인생은 격동하는 대한민국의 1970년대 한가운데에서 요동친다. 설사병에 걸린 사람이 간첩이라는 나라의 발표에, 성한모는 "우리 아들은 간첩이 아니다"라고 아들 낙안을 제 손으로 경찰서에 데려가지만, 돌아온 것은 고문으로 다리를 못 쓰게 된 비극적인 결과 뿐이다. 

시대의 비극에 휘말린 소시민의 삶. 사사오입과 4.19 혁명, 5.16 군사 쿠데타를 거치며 희노애락을 거듭하는 이발사 성한모가 된 송강호의 고군분투는 1970년대 소시민의 얼굴을 대표한다. 평범한 경무대 지역 시민에서 청와대 이발사로, 나라에 의해 평범한 일상을 잃게 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송강호의 시름 어린 얼굴과 어깨에서는 시대의 절절한 아픔이 느껴진다. 

#변호인 

백 없고, 돈 없고, 가방끈도 짧은 세무 변호사 송우석(송강호)는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남들이 하찮게 보는 일들로 탁월한 사업수완을 발휘하며 부산에서 제일 잘 나가고 돈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대기업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전국구 변호사가 되기 직전, 우연히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게 되고, 송우석은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가 고문으로 완전히 망가진 진우의 모습을 확인한다.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송우석은 모두가 회피하는 사건의 변호인으로 나서고, 불의에 맞서게 된다. 

'변호인'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던 부림사건의 배경을 한 작품으로, 영화 속에서 故 노무현을 본딴 변호사 송우석을 연기한 송강호는 '변호인'으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송강호를 시대정신의 정점에 올려둔 작품.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공판 장면은 가히 압도적이다. 정치적이기 보다는 인간적인 '변호인' 속 송강호가 선사한 울림은 천만 관객을 사로잡았다.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은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가 통금 전에만 돌아오면 거금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영문도 모른 채 광주로 길을 나선다. 만섭의 기지로 검문을 뚫고 겨우 들어선 광주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 투성이다. 위험하니 서울로 돌아가자는 만섭의 만류에도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는 구재식(류준열),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과 취재를 이어가고, 만섭은 맞닥뜨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상에 절망한다. 

역사의 비극에 휘말린 평범한 소시민이라는 점에서는 '효자동 이발사'와 궤를 같이 하는 작품이다.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가 연기하는 만섭 역시 '효자동 이발사'와 마찬가지로, 나라가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깡패들과 폭도들이 벌인 폭동에 대학생들까지 합류했다는 뉴스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라고 읊조리다, 광주의 실상을 실제로 목도한 후 분노하고 절망하게 된 송강호의 결 다른 연기는 아픈 시대 한가운데 관객을 데려다 놓는다. 차마 보기 괴로울 만큼 처절한 광주의 현실과, 시대의 아픔을 목도하는 평범하지만 가장 특별한 송강호의 얼굴은 이제 스크린을 대표하는 시대의 정신이다. 

mar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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