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화백 장녀 "인사동은 아버지의 '술 골목'이었다"

김아미 기자 2017. 7. 2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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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문화재단 주최, 장욱진 탄생 100주년 기념전
장욱진 화백 (가나문화재단 제공) © News1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제가 몰랐던 아버지의 그림도 이번 전시에 나왔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새로운 그림을 만날 때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장욱진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이러한 감격적인 순간들을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박수근·이중섭 화백과 함께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장욱진 화백(1917-1990)의 장녀 장경수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경운박물관 관장)가 2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장욱진 백년, 인사동 라인에 서다'전 개막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번 전시는 장욱진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가나문화재단이 마련했다. 전시장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전관에서 장욱진의 예술을 연대기 순으로 보여준다.

장 화백이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덕소시절(1963~1975)을 비롯해, 명륜동 시절(1975~1979), 수안보 시절(1980~1985), 신갈 시절(1986~1990)로 나눠, 장욱진 유화 및 먹그림 100여 점을 비롯해 최종태, 윤광조, 오수환 등 3명의 조각, 도자, 평면 작품 30여 점을 전시한다. 가나문화재단 측에 따르면 '나무와 새와 모자'(1973)는 소장자가 미국에서 갖고 있던 것으로, 그간 가족들도 알지 못했던 그림이다.

진진묘Zinzinmyo-My Wife_s Buddist Name_33x24cm_Oil on canvas_1970 (가나문화재단 제공) © News1

특히 이번 전시에는 장욱진 화백이 부인 이순경 여사를 그린 '진진묘'((眞眞妙, Zinzinmyo-My Wife's Buddist Name,1970)가 나왔다. '진진묘'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으로, 장 화백이 그림에 직접 제목을 붙인 몇 안 되는 그림으로 꼽힌다. 2014년 10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6억여원에 낙찰된 바 있다.

장 이사는 '진진묘'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날 이순경 여사가 남편에게 '다른 화가들은 부인 초상화를 잘도 그려주는데 당신은 왜 내 그림을 한번도 그려주지 않느냐'고 했다. 장 화백은 이 말에 들은 척도 않다가 불현듯 덕소로 가 이 여사의 초상을 그려왔다.

장 이사는 "'진진묘'라고 써 있지 않으면 어머니를 그린 것인지 모를 정도로 '불상'을 닮은 그림"이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춥고 혹독한 덕소에서 '진진묘'를 그리시고는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석달을 앓았다"며 "어머니가 '이거 하나 그려놓고 나와 인연을 끝내려는 건가' 하실 정도로 사실상 이 그림을 썩 좋아하지는 않으셨다"고 소개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가장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술도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장 이사는 "식구들이 다 굶어죽게 생겨 결국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나섰다"며 "우리가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것도 어머니 덕이었다"고 했다.

"우리 집이 남들 보기에 화목한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허나 아버지는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늘 미안해했고, 우리는 그런 아버지를 가엾게 여겼죠. 어머니, 아버지가 싸우는 날이면 오히려 아버지 편을 들기도 했는데, 그런 제게 어머니는 '말리는 네가 더 싫다'고 했을 정도예요."

그랬던 장 화백이 유독 가족 그림을 많이 그린 것에 대해 장 이사는 "아버지가 가족도를 그리면 형제들은 그게 다 자기 자신을 그린 것인줄 알았다"며 "아버지가 가족 사랑을 드러내진 않으셨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그림이 잘 안 될 땐 결국 '술'이었다"며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술을 드셨던 아버지에게 인사동은 '술 골목'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 화백의 그림 중 초창기 '덕소 시절'의 그림을 좋아한다고도 했다. "덕소 시기는 아버지가 고독한 싸움을 하던 시기"라며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때"라는 것이다. "그 시절 그림들은 유난히 쓸쓸하고 외로워 보여요. 가족과 떨어져 혼자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라 그런지, 저는 그 시절 그림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홀로 투쟁했을 아버지 생각이 나서요."

장경수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경운박물관 관장). 2017.7.24/© News1 김아미 기자

전시를 주최한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이중섭, 유영국, 변월룡 작가의 100년 전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욱진 100년 전시는 열지 않았다"며 "장욱진 100년전은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곳에서 열려야 마땅하나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그 틈새를 메워야 한다는 생각에 가나아트에서 서둘러 전시를 열게 된 것"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김 이사장은 장욱진을 스위스 출신의 화가 파울 클레(1879-1940)와 단순 비교하는 시각에서도 이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로운 상상과 기하학적 조형으로 구상과 추상을 오가는 장욱진의 그림은 종종 파울 클레와 비교돼 왔다.

김 이사장은 "장욱진의 경우 오히려 민화적인 요소와 선불교적 요소가 많으며, 장 화백과 생전에 친밀하게 교우했던 김병기 화백은 '장욱진의 그림에는 한국적 풍류가 깔려있다'고 평하기도 한다"며 "장욱진은 직감에 의해 그림을 그린 화가"라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7일까지.

초기 덕소시절(1963~1975) 그림. 나무와 새와 모자_26.5x34cm_Oil on canvas_1973 (가나문화재단 제공) © News1
명륜동 시절(1975~1979) 그림. 무제_26.7x21.3cm_Oil on canvas_1979 (가나문화재단 제공) © News1
수안보 시절(1980~1985) 그림. 겨울_호도_36.5x26.5cm_Oil on canvas_1982 (가나문화재단 제공) © News1
신갈 시절(1986~1990) 그림. 무제_28x21.5cm_Oil on canvas_1986 (가나문화재단 제공) © News1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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