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아래 '이것' 하나가 열사병 막아준다

입력 2017. 7. 24. 11:26 수정 2017. 7. 2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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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지자체들 건널목 앞에 그늘막 설치
어린이공원 실증 연구서 효과 입증
차양·녹음이 열사병위험지수 낮춰

강한 폭염 때는 쉼터만으론 역부족
덩굴식물·녹음나무 쓰면 더 효과
'침묵의 살인자' 열사병 예방하려면
물 마시고 에어컨도 적절히 활용을

[한겨레]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이 천막 그늘에서 따가운 햇볕을 피하고 있다. 2017년 7월 12일 서울 경복궁역 사거리.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열사병은 2차 세계대전 때 미군 신병훈련소에서 125명이 사망하면서 이름을 얻었다. 이후 1995년 시카고에서 700명, 2003년 프랑스에서 1만4800명의 목숨을 앗는 등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서울시내 건널목에 설치된 527개의 ‘그늘막 쉼터’는 열사병 위험을 얼마나 막아줄 수 있을까?

과학·의학 분야 국제 출판사인 엘스비어가 발간하는 <법의학저널>(JFLM) 8월호는 음악축제에 참가했다 한꺼번에 응급실로 실려온 12명의 환자 가운데 3명이 숨진 사건에서 폭염 속에 장시간 춤을 춰 열사병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진단한 임상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의료진은 환자들이 마약을 복용한 경력이 있어 초기에 약물 의료사고로 오진하는 바람에 응급처치에 실패했다고 논문은 지적하고 있다. 또다른 논문에서는 아이스박스에 갇혀 숨진 한 소년의 사인에 대해 부검 결과 사전 질병이나 산소 부족, 이산화탄소·약물 중독 등에 대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아 생리학적 검사를 한 결과 열사병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내렸다고 밝혔다. 폭염에 의한 열사병은 ‘침묵의 살인자’라는 별명답게 급작스럽게 닥쳐 종종 의료진조차 당혹스럽게 만든다.

열사병은 최초의 중국 황제 진시황의 목숨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싱가포르 국립의대 허나이창 교수는 진시황이 장생불로의 묘약을 찾아 떠난 다섯번째 전국 순시 도중 한여름에 화려하고 두꺼운 옷을 입고 자객을 피하기 위해 꽁꽁 싸맨 청동마차 안에서 ‘더위를 먹어’ 숨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진시황은 열사병으로 죽었다>) 이휘재 서울대 보라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더위를 먹으면 두통과 근육통에 어지러움까지 겹치는 열탈진이 오기 쉽지만 체온이 40도 이상이 되면서 의식이 없어지는 열사병으로 바로 진행될 수 있다. 열사병은 응급조치를 하지 못하면 21~63%가 사망에 이를 정도로 무서운 병증”이라고 말했다.

우리 몸은 바깥 공기 온도에 따라 늘 열 손실이 일어난다. 기온이 체온보다 낮은 35도 이하이면 복사를 통한 열 손실이 60%, 땀의 증발에 의한 열 손실이 30% 정도 일어나지만, 기온이 35도 이상이면 복사로 열을 제거하기가 불가능해지고 오직 증발로만 열을 제거할 수 있다. 여름철 습한 날씨에 증발도 잘 일어나지 않으면 몸에 열이 쌓여 체온이 올라가게 된다. 강한 복사에너지인 햇볕을 쬐면 우리 몸의 복사로 열이 제거되기는커녕 몸 안에 더 쌓인다. 바깥 기온이 높은 폭염 때 강한 햇볕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자치단체들이 건널목 부근에 파라솔이나 천막으로 만들어 놓은 그늘막은 이런 의미에서 시민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 있다. 2013년 서울 동작구청이 50여개의 그늘막을 처음 설치한 뒤 올해에는 18개 구청으로 늘어나 서울시내에만 527곳에 그늘막이 설치됐다. 그늘막은 부산·대구 등 지방으로도 확산돼 시민의 좋은 반응을 받고 있다. 동작구 노량진동의 박연희(65)씨는 “그늘을 만들어 햇빛을 안 받으니까 좋다. 양산이나 선글라스가 없는 노인들은 백내장에 대한 위험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건널목 그늘막은 정말 온열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을까?

경남과학기술대 조경학과 류남형·이춘석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어린이공원을 대상으로 열사병위험지수(WBGT)와 체감더위지수(UTCI)를 측정한 결과를 보면 건널목 그늘막도 온열질환 예방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은 지난해 8월11~13일 사흘 동안 경남 진주시내 칠암·가호 어린이공원 두 곳의 모래밭, 고무칩 포장지, 쉼터(셸터), 녹음지를 대상으로 기온, 상대습도, 풍속, 장·단파 복사 등을 측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열사병위험지수와 체감더위지수 값을 산출했다. 열사병위험지수는 체육이나 산업 현장에서 고열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을 위해 만든 지수이고, 체감더위지수는 세계기상기구와 유럽연합이 공동개발한 지수로 사람이 실제 느끼는 열 환경에 대한 감각을 지수화한 것이다. 조사기간은 사흘 모두 일 최고기온이 각각 36.8도, 35.9도, 35.9도로 폭염경보가 발령된 날씨였다.

연구팀의 조사 결과 두 어린이공원의 3일 30분 평균 열사병위험지수는 31.2~39.4도로 열사병 위험도가 높거나 극심한 정도였다. 모래밭에 비해서는 나무그늘(녹음)에서 2.8도, 지붕으로 햇볕이 가려진 쉼터에서는 각각 1.0도, 2.3도가 낮았다. 하지만 차양에 의해서도 열사병 위험을 피할 수 없는 정도였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인체가 흡수한 복사량에 근거한 체감더위지수는 두 어린이공원 3일 30분 평균 39.9~48.1도로 온열스트레스가 매우 강하거나 극심한 정도를 나타냈다. 모래밭에 비해서는 나무그늘이 2.8도, 쉼터가 각각 2.3도와 1.0도가 낮게 나타나 차양에 의해 체감더위지수가 낮아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역시 차양에 의해서 온열스트레스를 적정 수준까지 낮추지는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연구팀이 2014년에 건물 옥상에 갈대발로 만든 그늘막을 설치하고 사람들이 활동하기 적당한 ‘온열쾌적 지표’를 측정하는 실험에서, 3일 평균기온이 34.4도인 기간에는 차양 시설만으로도 온열쾌적성이 확보된 반면 3일 평균기온이 37.5도인 혹서기에는 차양을 설치해도 온열쾌적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류 교수는 “건널목 그늘막이 햇볕을 가려 태양의 단파복사에 의한 열사병 발병 예방 효과는 있겠지만, 혹서기에 온열쾌적성을 확보하려면 차양보다는 덩굴식물이나 녹음수로 햇볕을 가리는 방안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폭염 환경에 의해 발생하는 온열질환은 초기에 열경련과 땀띠 등 가벼운 증세로 시작하지만 더위에 오래 노출되면 열실신, 열탈진, 열사병 등 중증 상태로 발전하기 쉽다. 열경련은 더위에 땀을 많이 흘려 염분이 부족해 발생하는 것으로 덥다고 맹물을 마셨을 때 일어나기도 한다. 햇볕에 오래 서 있어 잠시 의식을 잃는 열실신은 시원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면 회복되지만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열경련을 지나 열탈진에 이르면 적극적으로 치료해 열사병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우선 서늘한 곳에서 쉬면서 물 1리터에 소금을 4분의 1~2분의 1 티스푼 정도 넣은 0.1~0.2%의 소금물이나 스포츠 이온음료를 마셔야 한다. 이휘재 교수는 “열탈진과 열사병은 딱 구분짓기 어려울 정도로 증세가 비슷하다. 중심 체온이 40.5도가 넘거나 의식 장애가 심하고 탈수가 심해 피부를 만졌을 때 오히려 땀이 없는 상태면 열사병으로 판단해 온몸에 물을 적시고 선풍기 등을 돌리는 등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한 적극적인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온열질환을 예방하려면 목이 마르기 전에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게 좋다. 노인 등 고위험군은 폭염 기간에 매일 2시간 이상 에어컨을 쐬어 심부 체온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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