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남북 합동 오케스트라 지휘를 러시아인에게?

2017. 7. 24. 05:0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러시아를 순방하면서 발레리 게르기예프 마린스키 극장 예술감독을 만나 남북 합동 오케스트라 지휘를 부탁했다.

그동안 남북 대화가 재개될 기미가 보일 때마다 문화예술 교류도 거론돼 왔다.

지휘자 정명훈은 서울시향 예술 감독 재임시절 다시 한 번 남북 합동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직접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다.

게다가 남북의 문화예술 교류는 공통의 문화를 통한 민족 동질성 회복을 목표로 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0년 8월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의 공연에서 북한 소프라노 리향숙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왼쪽). 박원순 시장이 지난 6월 3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에서 발레리 게르기예프를 만나 1대 ‘서울 글로벌 대사’로 위촉하고 있다. 국민일보DB·서울시 제공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근 러시아를 순방하면서 발레리 게르기예프 마린스키 극장 예술감독을 만나 남북 합동 오케스트라 지휘를 부탁했다. 뜬금없는 아이디어는 아니다. 그동안 남북 대화가 재개될 기미가 보일 때마다 문화예술 교류도 거론돼 왔다.

공연예술의 경우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함께 시작된 평양-서울 방문 공연을 계기로 물꼬가 트였다. 가장 활발하게 소통한 장르가 국악이었다면 가장 더디게 진행된 분야는 오케스트라였다. 2000년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야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서울을 방문해 KBS교향악단과 합동 공연을 가졌으며, 2002년 KBS교향악단이 평양에 답방하여 재차 합동 연주회를 가졌다.

2000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조선국립교향악단의 공연은 클래식계에서는 최초의 한민족 교류와 화합의 장이었다. 4회 공연 모두 전석 매진을 기록한 가운데 객석은 역사적 무게를 의식한 듯 엄숙했다.

긴장한 객석과 달리 무대 뒤 남북한 음악가들은 훈훈한 풍경을 연출했다. 협연자 조수미는 북한 지휘자 김병화에게 “선생님, 스타 되셨네요”’라고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판문점에서 살벌한 담판이 오가는 와중에도 이런 화기애애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이 바로 문화예술 교류이기에, 이를 ‘통일의 마중물’이라 부른다.

지휘자 정명훈은 서울시향 예술 감독 재임시절 다시 한 번 남북 합동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직접 평양을 다녀오기도 했다. 정명훈의 갑작스런 퇴임으로 무산된 이 프로젝트를 박 시장은 계속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제안이 우려스러운 이유는 그 상대가 게르기예프였기 때문이다.

남한과의 문화예술 교류에서 북한은 외세 개입을 꺼려왔다. 이는 그동안 남북한 합동공연에 제3국이 개입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정명훈은 한민족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인 반면 게르기예프는 러시아 지휘자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지만 통일 한민족의 문화적 우월성을 과시할 악단의 지휘봉을 외국인에게 맡기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이분(게르기예프)이 푸틴 대통령과 굉장히 친하다고 하더라. 그럼 북한과의 관계도 풀어낼 수 있는 면이 있지 않을까”라는 박 시장의 기대는 오히려 외세에 민감한 북한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게다가 남북의 문화예술 교류는 공통의 문화를 통한 민족 동질성 회복을 목표로 한다. 지난 합동 공연에 ‘아리랑’ ‘선구자’ ‘사향가’ 등이 함께 불린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한민족에 관심 없는 이 러시아 지휘자가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무엇이 있을까. 게르기예프는 과연 북한 오케스트라가 국악기를 접목한 배합 관현악단임은 알고 있을까.

70년 넘는 분단의 결과로 남북한은 사상뿐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으로도 이질적이고 대립적으로 변화했다. 남북 문화교류는 이질감을 극복하고 공통분모를 최대화시켜 남북 관계를 소통과 화합의 프레임으로 전환시키는 전략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동안 남북 교류의 실패는 상당수 의도치 않은 오해와 불신에서 비롯됐다.

북한과의 직접교감이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북한과의 모든 라인이 단절됐기 때문이다.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만큼 더욱 예민하고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 남북교류에 참여했던 다수의 전문가들이 실패 없는 남북교류를 위해서 이구동성으로 조언하는 바는 ‘남북이 서로 해야 할 일 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시장의 제안은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고려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시도된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