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토크] 이준익 감독·김별아 작가"박열 동주 바라는 관점 비슷해 동질감 느꼈죠"

고규대 2017. 7. 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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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 이준익 감독 - 소설 '열애' 김별아 작가 인터뷰
1917년생 박정희 윤이상 윤동주, 역사를 보는 아이러니
"일제강점기는 우리에게 역사적 트라우마" 이준익 감독
"박열의 아내 후미코의 시선으로 다룬 사랑" 김별아 작가
영화 ‘박열’의 이준익(오른쪽) 감독과 소설 ‘열애’의 김별아(왼쪽) 작가는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는 관객이나 독자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은 “외면적 비극을 내면화한 인간의 존재에 대해 다룬 게 비슷하다”고 입을 모았다.(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고규대 기자] 지금 왜 일제강점기인가. 청년 박열의 이야기를 다룬 각기 다른 장르의 두 편이 우리 앞에 섰다. 개봉과 함께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230여 만 관객을 만난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과 그의 부인 가네코 후미코의 시선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박열을 다룬 소설 ‘열애’(작가 김별아)가 그 주인공이다. 관동대지진으로 조선인 학살이 자행되던 시기 불령선인(不逞鮮人)을 자처하며 황실을 조롱하고 제국주의를 무너뜨리려 한 아나키스트 혁명가 박열. 그의 곁에는 동지이자 아내인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가 있었다. 23일 경북 문경 박열의사기념관에서 가네코 후미코의 91주기 추도식도 진행됐다. 이준익(58) 감독과 김별아(48) 작가가 한 자리에서 만나 70여 년 전 불꽃 같은 삶을 보여준 박열 등 당시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건네주는지 들어봤다.

“저희, 인연이라면 인연이네요. 제가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대(현 연세대학교) 후배여서 최근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을 하고 있거든요.”

김별아 작가가 지난 18일 서울 중구 충무로에 있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프로덕션 작업실을 찾아 인사말을 먼저 건넸다. 최근 펴낸 책 ‘탄실’을 건네주면서 윤동주와 박열 등으로 이어진 작품 세계에 동질감을 표현했다. 이준익 감독은 김 작가를 만나기에 앞서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영화 ‘박열’의 포스터와 김 작가의 소설 ‘열애’ 표지 이미지를 띄워놓고 손님 맞기에 분주했다. “김별아 작가의 프로필을 보다 ‘가미가제 독고다이’라는 일본 자살 특공대(가미가제)에 동원된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쓴 걸 보고 반가웠어요. 저도 제주도에서 일본까지 헌팅을 하다 엄두를 못 내고 잠시 접었던 소재였는데, 아무튼 동질감을 느꼈네요. 하하.”

두 사람은 10년의 나이 차이에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슷한 관점을 가졌다고 서로 추켜세웠다. 이 감독이 영화 ‘황산벌’부터 ‘박열’ ‘동주’로 시대를 훑은 것처럼, 김 작가도 드라마로 화제를 모은 소설 ‘미실’을 포함해 ‘논개’ ‘백범’ ‘열애’ ‘탄실’ 등 근대까지 망라하는 역사 소설을 써왔다. 인터뷰는 기자의 화두 제시에 이 감독과 김 작가가 각자의 생각을 던지고, 토론하는 형태로 두 시간 남짓 진행됐다.

-박열로 만난 인연이니, 먼저 왜 현재가 아닌 과거 이야기를 작품의 소재로 다뤘는지 궁금합니다.

이준익 감독(이하 이준익) “내가 왜 과거만 이야기하느냐, 이렇게 말할 순 없어요. ‘라디오스타’처럼 바로 지금 이야기도 했잖아요. 소재는 그냥 소재일 뿐이지, 과거에 매달린다거나 그런 건 전혀 없어요. 예술은 다시 말해 판타지라는 거지. 미래는 물론이고 과거나 현재도 현실에 없으면 다 판타지죠.”

김별아 작가(이하 김별아) “‘해리포터’의 배경이 미래인가요? 과거같지만 미래와 따로 구별하지 않아요. 과거 이야기가 어느 나라든 예술 장르에 자주 등장하는 건, 여전히 해야할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죠.”

영화 ‘박열’의 이준익(오른쪽) 감독과 소설 ‘열애’의 김별아(왼쪽) 작가는 아나키스트 박열이 이후 전향 논란이 있었다는 점에 의견을 달리했다. 다만, 당시 시대의 파편화된 정보로 인해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린다는 건 섣부르다고 입을 모았다.(사진=방인권 기자).
-공교롭게 두 분 모두 박열·동주 등 일제강점기 인물을 깊게 들여다봅니다.

이준익 “일제강점기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있는 때죠. 독립운동으로 그 시대를 보기도 하고, 댄스홀이나 모던보이, 그리고 신여성으로 근대를 다루기도 하죠. 수혈된, 혹은 이식된 근대라고 보는 관점도 있을만큼 우리 근대사가 여러 모습이에요.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알려진 건 주류의 이야기잖아요. 사실 아주 극소수 인물의 이야기죠. 저는 영화를 통해 그 시대에 살던 아주 소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김별아 “60·70년대에 공부했던 세대는 시대정신을 강요받은 게 아닌가 싶어요. 개인을 자세히 보지 않았죠. 2010년 즈음부터 개인을 보는 시대의 관점이 이동했어요. 소설이라는 장르로 개인을 통해 시대를 보는 내러티브를 찾아낸 것으로 봐야죠.”

-우리 예술이 미래보다 과거에 집중한다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던데요.

이준익 “1917년생 인물로 박정희·윤이상·윤동주 세 사람이 있어요. 박정희는 국내자, 윤이상은 국외자죠. 속지주의라는 현대 국가의 개념으로 보면 윤동주는 용정에 살았으니 중국 사람인데, 여권은 일본여권을 쓰고 정신은 한국인으로 살았죠. 각 인물마다 100주년을 맞아 말도 많고 화젯거리도 많잖아요. 이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조선, 그리고 근대가 달라지는 게 아주 아주 아이러니합니다.”

김별아 “동주문학회에 있었는데, 이 감독님의 영화 ‘동주’를 보고 부활시켜 주셔서 고마웠어요. 하하. 이 감독의 말씀처럼 근대를 볼 때 개별적으로 인식하는 게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구멍 난 데를 이으면 하나의 그림이 돼요. 마치 퍼즐처럼. 문학이 하는 역할이 그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미래든, 과거나 현재든 모두 판타지라면 예술 장르가 인물을 미화하거나 왜곡될 위험도 크지 않을까요.

김별아 “이 감독님이 만든 ‘황산벌’ ‘평양성’ 그리고 요즘 영화까지 보면서 속으로 반가웠어요. 마치 마음의 길이 같이 간다고 할까. 근대까지 다루는 역사를 바라보는 지점이 다르지만 같은 게 있다고 봤죠. ‘왕의 남자’ 정도면 역사를 변형시키거나 상상할 수 있는 정도의 전범이 아닐까 싶어요.”

이준익 “‘황산벌’은 제 판단으로 실제와 가장 가까운 영화라고 생각해요. 위인이라는 계백이나 김유신이나 사실 누군가 만들어놓은 허상 아닐까요? 영국의 제국주의를 조롱하는 것은 영국 자신이고, 미국의 팍스아메리카를 비판하는 것도 미국 자신이어야 하죠. 우리는 우리 과거와 현재, 미래에 ‘딴지’를 걸고 ‘허상’을 깨어 실체를 드러내야 발전이 있어요.”

-작품 소재를 어디서 어떻게 찾나요. 비결이 있을까요.

김별아 “역사적 소재를 찾을 때 조선왕조실록을 많이 참조해요. 아직도 연구 중이고, 앞으로도 연구가 필요한 게 바로 역사여서 소재를 찾는 게 무궁무진하다고 봐야죠.”

이준익 “영화는 소설과 달라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장편영화로 만들기가 불가능해요. 먼저 시대의 요구를 담은 소재라 하더라도 투자사의 경제 논리, 극장가의 흥행 논리에 따라 무산되는 게 부지기수죠. 아마 1년에 수천 편의 아이디어가 중단될 거예요. 역으로 그만큼 영화적 메시지가 무엇인지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봐야겠죠.”

-소설가로서의 영화, 감독으로서 소설을 바라보는 느낌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김별아 “요즘 서사를 이야기할 때 텍스트보다 영상이 친숙한 이들이 많아요. 평론하는 분들도 텍스트로 상상하던 게 화면으로 모두 나오는 세상이니 압도된다고 하더라고요. 소설이 침몰하지 않나 불안해요.”

이준익 “영화의 아버지, 아니 모든 것의 아버지가 텍스트죠. 요즘은 문자언어를 마치 구비문학처럼 보지 않고, 요약본을 듣는 시대라는 게 아쉬워요. 따지고 보면 말에서, 글에서, 영상으로 문명이 이동하는 것뿐이죠. 김 작가님이나 저나 여전히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영화 ‘박열’의 이준익(왼쪽) 감독과 소설 ‘열애’의 김별아 작가는 각각 영화 ‘동주’의 DVD와 소설 ‘탄실’에 사인을 나누기도 했다.(사진=방인권 기자)
△이준익 감독은…

잡지사 미술기자로 영화와 인연을 맺고 영화수입·영화제작사로 활동하다 영화 ‘키드캅’으로 감독에 입문했다. 이후 ‘황산벌’(2003) ‘왕의 남자’(2005) ‘ 평양성’(2010) ‘사도’(2014) ‘소원’(2014) ‘동주’(2015) ‘박열’(2017) 등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 등 화려한 필모그라피를 써내려가고 있다. 현재 래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변산’을 준비 중이다.

△김별아 작가는…

1993년 소설 ‘닫힌 문밖의 바람 소리’로 등단해 2005년 장편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해 주목 받았다. ‘미실’은 MBC 드라마 ‘선덕여왕’(2009)의 소재가 돼 큰 인기를 끌었다. 역사 소설에 관심이 많은 김 작가는 ‘조선 여성 3부작’인 ‘채홍’과 ‘불의 꽃’ ‘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를 펴냈다. 이후 ‘논개’를 비롯해 근대 인물을 다룬 ‘가미가제 독고다이’ ‘백범’ ‘열애’ 등을 썼다.

고규대 (en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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