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화해] "너 잘 되라고.." 사사건건 집착하는 부모님, 어쩌죠

한국일보 입력 2017. 7. 24. 04:42 수정 2017. 7. 24. 11: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 김경진기자 jinjin@hankookilbo.com

저희 집은 겉으로는 요즘 보기 드문 화목한 가정입니다. 가족 간에 대화도 많이 하고 여행도 다녀요. 지방에서 일하는 저는 주말마다 부모님이 계시는 서울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부모님과의 대화는 실은 제가 부모님이 원하는 답을 해드리는 겁니다. 가정적인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는 사실 보수적인 기성세대의 대표주자이자, 자식에게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부모님일 뿐입니다.

저는 장녀이고 여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저희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요. 저를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부모님의 태도에 늘 거부감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타협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집에서 독립적인 개체로 존중받은 적이 없습니다. “쟨 뭘 해도 안돼”가 동생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였어요.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아버지는 화가 나면 벽을 향해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동생은 말 한마디 못하고 울기만 하는 성격이에요. 저는 대신 반항하거나 뒤에서 동생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전전긍긍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동생에게 학생회 활동을 하라고 채근하시면, 저는 동생을 학생회에 끼워 넣으려고 여기저기 부탁하는 식이었어요.

동생이 성인이 된 지금도 부모님은 모든 일에 사사건건 간섭합니다. 저는 그나마 직장 때문에 떨어져 있지만 동생은 모든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며칠 전 동생이 사귀는 남자가 누군지 꼬치꼬치 캐묻는 어머니 때문에 동생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머니는 전화로 제게 하소연을 하시더라고요. 밤마다 통화를 하는데 누군지 궁금한 게 당연하지 않냐고요. 저는 궁금한 건 궁금한 거고 상대가 그 궁금증을 해소해 줄 이유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습니다. 어머니는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요.

어머니는 일상의 시시콜콜한 일까지 털어 놓으시며 저나 동생 또한 그러길 바랍니다. 저는 그럼 어머니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들려드립니다. 안 좋은 얘기를 하면 언짢으실 테니까 좋은 일만 말해요.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합니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인정받지 못 할까 봐 늘 불안해 하세요. 집에선 제가 아들 같은 입장이라 직장생활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주시는데, 그럼 저는 그 조언을 활용한 예를 얘기하면서 아버지가 저에게 매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시켜드려요. 만약 저도 한 집에서 살았다면 이런 가족의 상담가 역할을 하는 건 불가능했을 겁니다.

부모님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아버지는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인정이나 챙김을 잘 받지 못했고, 그래서 가정 내 위치에 대한 집착이 큰 것 같아요. 어머니는 흔히 말하는 ‘돈 벌어서 동생들 대학 다 보낸’ 사람인데, 살면서 아빠한테 무시를 자주 당했어요. ‘너희 엄마 저렇게 무식해서 어디다 쓰냐’ 같은 말이요. 묵묵히 참고 살았는데 딸들까지 자기 말을 안 들으면 그땐 폭발해요. 우리가 입바른 소리를 하면 아예 입을 닫아버려요. 그럼 아빠가 저희에게 엄마한테 사과하라고 합니다.

예순의 나이를 바라보는 부모님은 점점 더 귀를 닫으시는 것 같아요. 예전엔 ‘우리 가족은 완벽하지 않아’라고 하면 ‘맞아, 사람은 완벽하지 않아’라고 하셨지만 지금은 ‘배가 불렀구나’ 아니면 ‘난 좋은데?’라고 하십니다. 가방 끈 긴 딸의 잔소리가 듣기 싫으신가 봐요. 하지만 대화를 피하면 분노하세요.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너 잘되라고 이러는 건데’ 하며 서운해하십니다. 마무리는 항상 ‘그래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 살아가겠냐’ 입니다.

한때 부모님을 보면서 저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결혼도 자식도 다 거부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앞두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결혼을 하면 타깃은 동생이 되겠죠. 저 역시 결혼을 계기로, 애 낳아라, 시부모께 효도해라 등 새로운 간섭이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자식은 지금도 낳고 싶지 않거든요.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다만 조금 더 성숙한 가정이길 바라요.

(서진영씨, 가명ㆍ30세ㆍ연구원)

자식에 끊임없이 요구하며 죄책감 유발하는 부모

결혼 후에도 간섭 이어진다면 단호하게 선 그어야

진영씨, 당신은 꿋꿋하고 성숙한 사람이에요. 스스로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채찍질하며 살아왔는지가 느껴집니다. 글로만 봐도 진영씨가 좋아져요.

진영씨가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 그대로, 엄마는 연민을 일으키는 사람이에요. 사연을 보면 이 사람이 자기를 위해 립스틱 하나 사본 적 있을까, 그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동시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이 나게 합니다. 왜 그럴까요. 돈 벌어서 동생들 학비 대고 종일 자식 생각만 하는 사람이 왜 짜증을 유발할까요.

진영씨의 엄마는 침습적인 사람입니다. 습자지에 물이 스미듯이, 엄마는 딸들의 인생을 침습하고 있어요. 때리고 욕하는 공격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아주 수동적인 방식으로 집요하게 자식들의 인생에 스며들어요. 이게 짜증을 유발합니다. 지금까진 진영씨가 이걸 잘 감당해온 것 같아요. 하지만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집니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출발선 앞에서, 이제부터 내가 선택한 사람과 만들어갈 자주적인 삶에 더 이상 엄마가 침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인 것 같아요.

또한 엄마는 요구가 많은 사람입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에서 첫째는 요구가 아닌 무조건적인 수용과 수긍이에요. 무조건적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잘나도 못나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 여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될 수 있어요. 자식은 어리기 때문에 먼저 수긍해야 하는 건 부모 쪽입니다. 요구는 자녀의 몫이에요. 인정해주세요, 사랑해주세요, 부르면 대답해주세요, 이게 자녀의 역할이에요. 그런데 이걸 엄마가 하고 있어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제대로 지어지려면 각자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진영씨의 부모는 이 역할에 충실하지 않았어요. 자녀가 어렸을 때도, 성인이 된 후에도 초지일관 요구만 해요. 부모는 이런 요구를 대화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침습은 관심과 애정으로 착각하고 있고요. 결과적으로 자녀들은 날개를 제대로 펴지 못했어요. 진영씨는 노력을 통해 일정한 위치에 올랐지만, 동생의 삶은 쭈그러들어버렸어요.

엄마 역시 성숙한 부모에 대한 경험이 없는 듯 해요. 짐작하건대 다소 방치된 환경에서 성장하지 않았나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헌신적인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수도 있어요. 또, 사연에서 유추하자면 지식이나 상식의 깊이가 다소 얕은 게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딸들에게 부리는 고집이 성격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예요. 근거 없는 지식이 이상한 방식으로 조합돼 고집으로 굳어지고, 그 고집이 자식에게 받아들여지는 걸 존중 받는 거라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 그에 대해 지적하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여기는 거죠.

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딸들의 상태입니다. 진영씨는 지금 죄책감 덩어리예요. 본인이 자각하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상태에 처해있다는 것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요. 왜냐하면 진영씨는 무조건적인 수용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이걸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뭔가를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부모님이 원하는 말을 해드리고, 그걸 넘어 부모님이 얼마나 옳은지를 계속 알려드리죠. 그러나 불편한 대상에게 보내는 과도한 칭찬은 일종의 방어기제예요. 그 뒤에는 엄청난 적개심과 분노가 있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부모와 자녀 간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선 이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진영씨는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독립한다는 표현을 썼죠. 이건 아주 특별한 표현이에요. 보통은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한다고 하죠. 진영씨 가정은 부모와 자식의 위치가 바뀌어 있어요. 부모는 끊임 없이 요구하고 죄책감을 유발하는 반면, 진영씨는 참고 수용하고 스스로 다스려요. 진영씨의 표현에서부터 이미 부모의 위치에 올라가 있다는 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가 상호간에 독립하려면, 두 딸이 부모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요. 진정한 독립이란 연을 끊는 게 아니라 몰두하는 대상이 바뀌는 거에요. 부모 보다 진영씨의 배우자, 자녀 그리고 진영씨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 그게 진정한 독립이에요. 결혼 후에도 엄마의 간섭이 이어진다면 ‘내 가정이니까 내가 하나씩 배워가면서 만들게요. 이제 내가 가장 많이 의논할 대상은 엄마가 아니라 남편이에요’라고 단호하게, 반복해서 말해야 해요. 부모와 계속 좋은 관계를 갖고 싶다면. 지금 선을 그어야 합니다.

자식을 낳을 생각이 없다는 말에서 진영씨가 느끼는 불안이 감지돼요. 버리지도 못하고 미워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하나 더 생기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아 가엾고 안쓰럽습니다. 진영씨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부모에게 분노를 느껴도 돼요. 나는 그래도 당신이 좋아요.

동생은 더욱 가엾어요. 저는 불운하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이라는 기준 하나 때문에 삶 전체가 위축되고 말았어요. 언니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취직이나 기숙학교 등을 통해 집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거예요. 그러나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택하지 않도록 옆에서 조언해주세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불행으로 빠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정리=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지면을 통해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해결되지 않는 고통 때문에 힘겨운 분이라면 누구든 신청해 보세요. 사연은 한국일보 사이트(http://interview.hankookilbo.com/store/advice.zip)에서 상담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하신 후 이메일(advice@hankookilbo.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오은영 박사의 상담 내용은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됩니다.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