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에 기타 더하면 수만 개 소리 만들 수 있죠"
여우락 페스티벌서 90분간 공연
땅 밑을 파고드는 검푸른 빛줄기가 눈앞에 그려졌다. 지난 21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017 여우樂(락) 페스티벌에서 '블랙스트링'이 선보인 '블루 셰이드(Blue Shade)'는 그 음악이 국악인지 클래식인지 헷갈릴 만큼 신비로운 무대였다.
'블랙스트링'은 거문고 명인 허윤정(49·서울대 국악과 교수)을 주축으로 기타리스트 오정수, 대금 연주자 이아람, 타악 연주자 황민왕이 활동하는 퓨전국악그룹. 전통 국악을 토대로 재즈의 즉흥성과 현대음악의 독특한 매력을 가미해 연주하는 이들은 지난해 국악 그룹 최초로 독일 유명 재즈 음반사인 액트(ACT)와 정규 1집 음반을 냈을 만큼 국내외에서 사랑받고 있다.
천지를 가르는 대금 사이로 심장을 두드리는 북소리, 슬금슬금 올라탄 거문고와 부드러운 기타가 묘하게 어우러지는 '칠채'를 첫 곡으로 90분간의 연주가 시작됐다. 처용무에서 착안한 '마스크 댄스'는 기괴함 그 자체였다. '진도씻김굿'을 몽환적으로 노래한 '신노래', 거문고 줄을 긁고 문지르고 뜯고 두드려서 만든 '낯선 달', 거문고와 타악이 마주 보며 빚어낸 '흐르는, 떠가는'도 좋았다. 힘이 넘치는 무대였다.
독일 트럼펫 연주자 율리안 바서푸르가 함께한 '공중정원'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아람과 황민왕이 태평소를 물고 바서푸르와 같은 선율을 연주했다.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랄까. 허윤정은 "서양 금관악기인 트럼펫에도 다채로운 색깔이 있다. 율리안의 트럼펫은 여유로우면서 슬픔이 녹아 있어 우리 음악과 어울릴 것 같았다"고 했다.
국립국악고등학교와 서울대 국악과를 나온 허윤정은 유치원 대신 아버지(허규 전 중앙국립극장장)의 연습실에서 놀았다. 극단 민예를 이끌던 아버지가 단원들에게 전통 연희를 가르치려 마련한 공간에서 종일 판소리와 탈춤을 보며 지냈다. "나에게 소름 끼치는 음악은 여전히 국악이지요." 공연 전 만난 그는, "민속음악인 산조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문고를 잘 모르고, 거문고로 연주할 수 있는 곡도 한계가 있어 월드뮤직으로 영역을 넓혔다"고 했다.
"거문고는 기타 소리와 비슷해요. 한 음 한 음 줄을 튕기면서도 음과 음 사이 여백이 있어 자연스럽죠. 반면 대금은 흐르는 물처럼 끈기가 있고, 북과 장구, 꽹과리 등 타악은 듣는 이의 심장을 울려요." 허윤정은 "이 악기들에 또 다른 악기를 덧입히더라도 우리 음악이란 사실엔 변함없으니 새로운 레시피를 수만 개 만들어낼 수 있다"며 "우리는 위태롭게 외줄 타는 서커스 광대. 완성된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 긴장하고 또 연습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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