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어야 '산다'] '100대 국정과제'서 빠진 자살문제.. 종사자들 "허탈"

이창수 기자 2017. 7. 23.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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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문제, 文정부 5년 계획 '100대 과제' 빠져 / "이전 정부와 다를 바 없어.." 관계자들 허탈 / '자살종합대책''자살대책전략팀' 꾸린 日과 비교 / 자살예방 사업·예산 등 기조 바뀌지 않을 듯

‘13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사상 최초로 OECD 자살률 1위(2003년·28.1명)를 기록한 것도 벌써 14년 전 일이다. 우리나라는 당시 2위인 헝가리(27.1명)를 가까스로(?) 누른 후 쭉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동안 강산이 바뀌고 정권이 3차례나 바뀌었지만, 이 타이틀만큼은 요지부동이다.

올해 발표에서도 ‘역시는 역시’였다.(OECD Health Data 2017) 하나 재밌는 것은 2003년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1위에 오를 때 2위였던 헝가리가 공교롭게도 올해 다시 2위에 올랐단 점이다. 하지만 당시와 비교해 우리나라가 28.7명으로 자살자 수가 되레 늘은 반면, 헝가리는 19.4명으로 대폭 내려갔다.

‘1명’에 불과했던 2위와의 차이는 세 번의 정부를 거치며, ‘9명’이 넘게 벌어졌다. 전문가들이 늘 “직무유기”, “국가비상사태” 등 표현을 써가며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9명이란 숫자는 역대 정부들이 자살예방에 얼마나 ‘무신경’ 했는지를 보여준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자살예방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내 담당 공무원은 4급, 6급 ‘2명’에 불과하고, 관련 예산은 99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0.002%’에 불과하다. 한 해 1만40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대의 그 어떤 전쟁보다 잔혹한 비극이 매년 되풀이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번 정부는 다를 줄 알았는데…”

국민들의 생명에 무신경해 보였던 과거 정부에 대한 실망감 때문인지 최근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각계의 자살예방 관련 종사자들은 기대감에 부푼 기색이 역력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생활 내내 국민의 인권과 복지를 강조하고 안전과 생명을 강조해왔던 터. 때문에 자살예방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앞에서 “정부가 ‘자살률 절반 줄이기’를 100대 국정과제로 채택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100대 국정과제’에 자살예방과 관련한 사업이 포함되지 않아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0여페이지에 달하는 국정계획서 안에 ‘자살’과 관련한 문구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확산’이라는 한 줄이 전부다. 그나마도 44번째 과제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예방 중심 건강관리 지원’의 하위 과제 중 하나로 포함됐다. 문구의 모호함이나 비중 등을 볼 때 과거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의 인식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란 평가다.

이명박정부 시절 ‘자살예방법’(2012)을 시행하면서 당시까지 임의로 만들던 자살예방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도록 강제했다. 하지만 2차 계획(2009∼13년) 이후 박근혜정부를 거치며 아직까지 자살에 관한 국가차원의 종합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014∼15년 2년 동안은 아예 ‘공백’ 상태였고, 지난해에 정신질환, 중독 등 까지 포괄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의 하위 부분으로 자살을 포함시킨 게 전부다.


◆“정부, 자살 해결할 정부 의지 안 보여”

이같은 정부의 안이한 대처는 최근 자살률을 대폭 줄인 일본과 크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자살자가 속출한 일본은 2000년 후생성이 ‘21세기 국민건강 만들기 운동’에 자살예방책을 포함시켜 2010년까지 자살자를 2만2000명 이하로 줄이려 했으나,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전 분야에 걸친 ‘자살종합대책대강’(2007)을 수립했다.

2009년에는 특임장관 등 고위각료들이 참여한 ‘자살대책 긴급전략팀’(내각부)이 만들어졌고, 이후 매년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었다. 최근 5년 동안 쏟은 예산만 2조2281억원(2200억엔)에 달한다. 최근에는 정부 주도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지역 맞춤형 자살예방 대책 마련에 고심인 상황이다.

이번에 선정된 ‘100대 과제’가 정부에서 ‘우선순위를 두고 진행할 사업’이라는 일종의 의지표현이라고 본다면, 자살예방과 관련한 사업이나 연구, 예산확보 등은 계속해 어려움이 있을 전망이다. 다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매년 복지부는 자살예방 관련 인력이나 부서 규모 탓에 관련 예산을 따내는 데 적지 않은 진통을 겪고 있다.

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은 “‘생명존중 문화 확산’은 사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며 “각계에서 자살예방사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대략적으로나마 목표나 비젼을 제시한다든지, 과제 중 하나로만 언급해주었더라도 우리나라 자살예방 여건이 크게 바뀌었을텐데 무척 아쉽다”라고 말했다.

자살예방협회 한 관계자는 “물론 일자리 등도 정부가 해결할 과제이지만, ‘자살률 1위’가 십수년 째 이어지고 있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딨겠느냐”면서 “정부에서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해결할 의지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허탈함이 크다”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그나마 (전 정부와 달리) 조그맣게 한 줄이라도 들어간 부분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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