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속도를 줄이자, 도시가 이렇게나 달라졌다
[오마이뉴스 글·사진:윤찬영, 편집:이주영]
지난 6월 5일부터 11일까지 오스트리아 빈(Wien)에 다녀왔다. 유럽의 사회혁신가들이 모이는 Eu-SPRI Annual Conference Vienna 2017에서 서울시(서울혁신파크)의 사회혁신 리빙랩 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회의장 밖 거리에서 마주친 몇 가지 혁신적 풍경들을 두 번에 걸쳐 전하고자 한다. 첫 번째 글은 자전거와 사람 그리고 자동차가 공존하는 아주 멋진 길에 대한 이야기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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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빈에서 마주치게 되는 흔한 풍경. 고풍스런 건물들 사이로 트램이 지나다닌다. |
ⓒ 윤찬영 |
('도시 삶의 질 순위'는 정치·사회 환경, 경제 환경, 사회·문화 환경, 의료와 건강에 대한 배려, 학교와 교육, 공공 서비스와 교통, 여가, 소비재, 주거, 자연 환경 등 10개 범주 39개 요소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폴이 25위로 첫 손에 꼽혔고, 나머지 2~5위는 도쿄(47), 코베(50), 요코하마(51), 오사카(60) 등 모두 일본 도시들이 꼽혔다. 서울은 76위에 이름을 올렸다.)
세상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 빈
빈은 너비가 서울의 2/3에 달하지만 인구는 약 180만 명으로 서울의 1/5에도 못 미친다. 어디를 가도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길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어, 마치 17세기 바로크시대의 유럽을 거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거리 어디로 눈을 돌려도 눈에 띄는 게 또 있다. 바로 자전거와 자전거길이다. 빈은 '자전거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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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들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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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어디를 둘러봐도 고풍스럽고 웅장한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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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의 자전거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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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의 길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보행자와 자전거 탑승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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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의 공공자전거 'Citybike Wi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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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의 자전거신호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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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전거 그리고 자동차의 공존
빈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곳이 있다. '마리아힐퍼 길(Mariahilfer Straße)'이라 불리는 곳이다. '마리아힐퍼'란 이름이 붙은 길은 '빈 서역(Wien Westbahnhof)'을 중심으로 한쪽은 박물관들이 모여있는 '무제움스크바르티어(MuseumsQuartier)', 다른 쪽은 쇤부른(Schonbrunn) 궁전으로 이어진 약 4km가량의 제법 넓은 길이다. 이 가운데 '빈 서역'에서부터 '무제움스크바르티어' 쪽으로 난 1.6km의 길에 온갖 옷가게와 식당, 카페들이 모여 있어 날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보통 '마리아힐퍼 길'이라고 하면 이곳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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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힐퍼 길의 초입. 자전거를 탄 한 무리가 길을 오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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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전용 도로'는 1.6km 가량 길게 이어진 길 한 가운데에 자리한 450m 구간뿐이다. 그 양쪽 옆으로 난 나머지 약 1.15km엔 차가 다닌다. 단, 시속 20km 이하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차가 속도를 줄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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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가 시속 20km 이하로 움직이면서 자전거와 사람도 마음 놓고 같은 길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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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선 주차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만 할 수 있고, 짐을 내리려는 차들도 정해진 곳에 잠시 차를 댈 수 있을 뿐이다. 길을 지나는 데도 오래 걸리고 주차도 할 수 없으니 굳이 차를 타고 이 곳을 찾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그러니 길을 지나는 차의 수도 자연스레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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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와 자전거가 공존하는 마리아힐퍼 길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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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을 가다 '교회 골목(Kirchengasse)'이란 표지판이 나오자 버스도 차도 모두 오른 쪽으로 빠져나갔다. 여기서부터 '차 없는 거리'가 펼쳐진다(골목길로 빠져나간 차들도 30km 이하로 다녀야 한다. 오스트리아의 골목길은 대부분 제한속도가 30km/h다). 차들이 모두 빠져나간 널찍한 거리를 비로소 사람과 자전거, 유모차들이 한가로이 거닐었다. 5년간이라는 긴 준비와 주민투표를 거쳐 2015년에야 '차 없는 거리'로 새롭게 태어난 이 길을 찾는 이들은 많게는 하루 약 7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빈의 선택은 옳았던 셈이다.
삶의 질 1위 도시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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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행자 전용도로' 앞에서 옆으로 빠져나가는 버스. 여기서부터 차 없는 거리가 약 450m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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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힐퍼 길 중 '보행자 전용 도로'의 여유로운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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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명이 모여 사는 거대 도시가 하루아침에 빈이나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84만 명), 덴마크 코펜하겐(59만 명)처럼 바뀌길 기대하는 건 무리다. 서울엔 서울에 어울리는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빈으로부터 배워야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존의 지혜'와 '몸에 밴 배려'가 아닐까. 속도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공존이 가능할 수 있다는 '다른 생각' 그리고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 조금 더 살피면서 더디 가려는 태도 말이다.
적어도 내겐 하나를 몰아낸 풍경보다 그렇게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제 길을 가는 풍경이 더 아름다웠다. 오스트리아 빈이 그랬듯, 우리도 시와 시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마음가짐을 바꿔간다면 세계에서 일흔여섯 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에서 조금은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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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추후 서울혁신파크 블로그(http://s_innopark.blog.me)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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