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만원에 b.l.o.g 파세요"..블로그 떴다방 기승

성호철 기자 입력 2017. 7. 2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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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에 사는 대학생 최모씨(25)는 최근 3년간 운영해온 블로그를 300만원에 팔았다. 자신의 신변잡기를 써온 블로그로 하루 방문자 수는 1000명 안팎이었다. 최씨는 "대학등록금 걱정을 하던 차에 블로그 매매업체에서 연락이 왔다"며 "일기장을 파는 것 같아 마음 아팠다"고 말했다. 이 블로그는 서울에 있는 한 치과의 홍보 블로그로 바뀌었다.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 매매가 활개를 치고 있다. 블로그는 개인의 소소한 일상을 주로 올리는 인터넷 공간이지만, 수백만원씩 돈을 주고 사고파는 거래가 연간 1만건 이상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엔 돈을 받고 6개월씩 블로그 운영권을 빌려주는 '블로그 임대'나 블로그 매매를 전문적으로 중개해주는 '블로그 중개업'까지 등장했다.

블로그 매매는 아이러니하게도 네이버 등 포털들이 2년 전쯤 광고글이 범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광고성 블로그의 노출 순서를 뒤로 돌리면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새로운 블로그를 만들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광고성 글을 올리는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자 전문업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오래된 블로그를 구매해 광고성 글을 올리고 있다는 것. 블로그 매매업체의 관계자는 "오래 활동한 블로그에 광고글을 올려야 포털의 검색 화면 위쪽에 뜰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250만원에 블로그 파세요'…하루에 수만건씩 블로그 매매 유혹 쪽지

서울 인천에 사는 직장인 이모씨(26)는 이달 초 '250만원에 블로그를 팔라'는 인터넷 쪽지를 받았다. 이씨는 "대학 졸업 후 바빠서 새 글을 잘 안 올렸지만 혹시 악용될까 싶어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런 판매 권유 쪽지는 매일 수만 건씩 블로거들에게 뿌려질 정도로 만연한 상황이다. 국내 블로그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네이버의 경우, 이런 매매 권유 쪽지를 신고하는 건수만 하루 평균 8000여 건에 달한다.

국내에는 이른바 '블로그 마케팅 회사'가 수백 곳이 넘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한다. 이들은 성형외과 같은 자영업 광고주의 홍보글을 블로그에 대신 올려주고 광고료를 받는다.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블로그 마케팅 업체 S사(社)의 관계자는 "한 달에 60~80개의 블로그를 꾸준히 구매해 광고주들의 홍보글을 계속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E사의 관계자는 "이달 들어 총 79개의 블로그를 샀다"며 "매일 거르지 않고 서너 개씩이라도 사둬야 광고주들이 요구하는 클릭 수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블로그 홍보의 주(主) 고객은 성형외과, 한의원, 피부과 등 개인 병원이다. 식당, 자동차 딜러, 전자제품 인터넷 판매자 등도 큰손으로 등장하면서 블로그 마케팅은 활황이다. 예컨대 E사의 경우 고객 광고주가 작년 하반기 49곳에서 올 상반기 124곳으로 급증했다.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D업체는 "인터넷에서 '종로 맛집'으로 검색해 블로그 사이트를 보는 네티즌만 하루 10만명"이라며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블로그 홍보글이 저렴하고 효과적인 광고 수단"이라고 말했다.

◇블로그 임대·중개업자도 등장

블로그 구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블로그 가격도 오르고 있다. 작년만 해도 일반인의 블로그는 통상 100만원대에 거래됐는데 요즘에는 200만~300만원으로 올랐다는 것이다.

블로그 마케팅 업체들은 "같은 조건의 블로그라면 1년 전보다 50만원 정도 가격을 더 쳐준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6개월 정도 월 20만~50만원 정도를 받고 블로그 운영권만 일시적으로 빌려주는 '블로그 대여'도 등장하고 있다. 개인 정보 유출을 우려해 블로그 판매를 꺼리는 블로거들이 매매보다 대여하는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다. 블로그를 구매해 광고주에 되파는 전문 중개 업체까지 나타났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블로그 판매 중개업체 P사 관계자는 "블로그를 200만원대에 매집한 뒤 자영업자들에게 350만~450만원 정도로 되판다"며 "요즘 블로그를 사겠다는 개인 병원들이 많아 블로그 매입 대기자까지 생길 정도"라고 했다.

포털들은 "블로그 매매를 막기 위해 매일 모니터링하지만 개인 간 거래를 막을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입장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갑자기 병원 이용 후기와 같은 광고글만 잔뜩 올라오면 매매로 의심되지만, 쪽지로 '본인 맞느냐'고 물어보면 '맞는다'는 답이 돌아온다"며 "모니터링만으로는 블로그 매매의 원천봉쇄는 불가능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블로그를 팔기 위해 비밀번호를 업체에 넘겼다가 돈은 못 받고 운영권만 뺏기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던 최모(34)씨는 지난달 계정 정보를 넘겼다가 블로그 매매업체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고려대 이동훈 정보대학원 교수(한국정보보호학회장)는 "개인 정보가 입력된 계정 거래는 주민번호를 사고파는 것과 유사한 행위"라며 "정부가 명확한 처벌 규정을 만들어 유행하는 블로그 매매를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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