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유지 받들겠다"..아프리카 사망 PD 맞으러 가던 날
아프리카 촬영중 사망한 고 박환성·김광일 PD 수습 및 시신 운구
유족·동료 PD "고인 유지 받들겠다"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호우 경보까지 발령된 7월 23일 오전 11시 30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앞에는 떠나는 이를 환송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영상물 기획과 촬영 편집에 있어 국내 최고수를 다투는 이들이다. 프리랜서 PD로도 불리는 독립PD들. 복장은 검은색과 회색 계통 옷이었다.
이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현지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중 사망한 박환성 PD와 김광일 PD를 기리기 위해 모였다. 현지 수습과 시신 운구를 위해 조직된 장례위원회의 환송도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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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출국장 앞에는 EBS 관계자도 있었다. 독립PD들이 있는 곳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대외협력국 국장을 비롯해 EBS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검은색 양복에 하얀색 와이셔츠를 갖춰 입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기자들과 PD들의 질문에 답했다. EBS 관계자는 “고인의 노고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추혜선 정의당 의원도 자리했다. 비서진 없이 홀로 온 모습이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정치인 주변 사진 기사도 없었다. 그는 한국독립PD협회 관계자들과 면담했고, 아프리카 현지로 출국키로 한 박환성PD의 유족을 위로했다.
추 의원은 “출국 전 박PD와 만나 1시간여를 얘기 나눴다”며 “그와의 얘기가 이제 남아있는 우리들의 유지가 됐다”고 말했다. 독립PD협회 관계자는 “추 의원 공약사항 중 하나가 외주제작 PD들의 제작 환경 개선이었다”고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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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을’이다.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발주하면, 이들이 수주한다. 방송사는 주로 다큐멘터리, 어린이 프로그램처럼 비용 대비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을 독립PD나 외주제작사에 맡긴다.
방송사는 이들에게 ‘갑’이다. 특히 EBS나 KBS 같은 공영방송은 자연·야생 다큐멘터리를 납품받는 최대 수요처다. 전문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며 해외 수상한 이들도 국내 방송사와 작업할 때는 갑을 구조 관행은 각오해야 한다. 아프리카 등 오지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PD들은 신변상 위험도 감수해야했다. 제작비가 넉넉치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추 의원은 갑을 구조에 기반해 제작비 절감을 강요하는 구조가 현장에서 일하는 PD들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진단했다. 야생 환경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하는 PD들은 생명에 위협도 받는다. 부족한 제작비 벌충을 위해 PD들은 협찬 유치에 직접 나설 때가 많다. 정부 지원금도 때로는 협찬의 하나로 인식되기도 한다.
지난달 박 PD는 방송사의 이 같은 행태를 폭로했다. 일방적으로 제작비를 삭감하고 정부지원금이나 기업 협찬으로 이를 벌충하는 구조다. 박 PD는 후배들에 이 같은 불합리가 되물림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자신이 받을 불이익까지 감수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빠듯한 시간이었지만, 박 PD는 국내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다. 정부 관계자는 물론 국회의원, 기자들도 만났다. 그의 지인에 따르면 박 PD는 출국 전까지 기자 인터뷰에 응했다.
박 PD의 동생으로 형의 사고 수습과 시신 운구를 위해 떠나는 박경준 씨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형의 죽음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박 씨는 박 PD를 추모하며 “생전에 야구선수 최동원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동원 선수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가 선수 인권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앞장선 데 있다”며 “형도 마찬가지로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독립PD를 대변하기 위해 열심히 싸웠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형의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도와 주길 바란다”며 흐느꼈다.
환송식이 끝날 때 즈음, 고 박환성 PD의 페이스북에 접속해 봤다. 박 PD의 시간은 7월 5일에 멈춰 있었다. 그의 아프리카 출국 전날 동료들과의 저녁 모임 사진이었다. 그가 생전에 했던 ‘7월 31일 돌아오겠다’라는 약속은 영원히 지킬 수 없게 됐다.
행사가 끝나자 한 여성 PD가 울음을 터뜨렸다. 주변 다른 PD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인천공항 출국장 창 밖 위로 오전내 내린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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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성 (kys4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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