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한국문학 번역가들, 장강명·윤고은과 만나다

2017. 7. 2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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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원 초청 연수 학생 10명 서울문학기행 참가
두 작가의 '소설 무대' 설명 듣고 질의응답도 벌여

[한겨레]

한국문학번역원 주최 예비번역가 초청 연수에 참가한 학생들이 한강 밤섬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소설가 장강명(왼쪽 셋째)이 준비해 온 영상을 보고 있다. 오른쪽 끝은 소설가 윤고은.

미래의 한국문학 번역가를 꿈꾸는 외국 대학·대학원생 10명이 한겨레문학상 수상 작가인 소설가 윤고은·장강명과 만났다.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성곤)이 주관하는 ‘예비번역가 초청 연수’에 참가한 학생들은 20일 장강명 단편소설 ‘되살아나는 섬’의 배경인 한강 밤섬, 그리고 이상 단편 ‘날개’의 마지막 장면 무대인 신세계백화점 옥상 등을 답사하며 두 작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윤고은의 단편소설 ‘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에 관해서도 작가와 질의응답을 벌였다.

폭염경보가 내린 이날 오전 학생들은 남산 한옥마을을 둘러본 뒤 을지로의 한 찻집에서 윤고은 소설에 관해 작가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었다. ‘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은 주인공이 하와이 여행 중 값싼 민박집에 묵는 과정에서 국적을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라고 속였던 일화, 그리고 여자친구와 함께 개성과 평양에 들어서는 아파트 입주 상담을 받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한 학생이 “이렇게 독특한 작품을 쓰기 위한 영감은 어디서 받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제가 실제로 하와이 여행을 가려고 에어비앤비를 알아본 적이 있어요. 값도 싸고 평도 좋은 곳을 찾아서 예약하려고 메일과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어느 날 ‘북이냐 남이냐’ 하는 질문에 당연히 남이라고 답했더니 갑자기 예약을 취소시키더라구요. 그때 문득 ‘혹시 북쪽이라고 했으면 예약 취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됐어요.”

이 대답을 받아서 다른 학생이 “외국인이 보기에 북한은 민감한 소재일 수 있다”며 “북한의 아파트 분양이라는 소재를 택한 까닭이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소설을 쓸 때 저는 자주 저를 홀리는 상상에 의지해요. 이 소설에 나오는 ‘평양 2차 분양’ 같은 말이 주는 느낌이 그런 거죠. 소설을 통해 저는 ‘가 보지 않은 길’을 가기를 즐깁니다.”

언제 어떤 계기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지, 이 소설 주인공을 작가와 같은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삼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주차나 결혼이나 인연이나 결국 타이밍의 문제’라는 소설 속 구절에 작가도 동의하는지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점심 장소인 프린스 호텔은 윤고은과 특별한 인연을 지닌 곳이다. 그가 대학 시절 신춘문예를 준비하고자 투숙했던 이야기를 쓴 산문이 계기가 되어 4년 전부터 소설가들에게 집필실을 빌려주고 있는 것. 학생들은 이어 신세계백화점 옥상을 답사했다. 이상 소설 ‘날개’ 마지막 장면의 무대인 미쓰코시백화점 옥상이 바로 이곳이다. 윤고은이 “이 백화점은 이상 소설 ‘날개’에도 나오지만 박완서 선생 소설 <나목>의 무대이기도 하다”고 소개하자 해당 작품을 읽은 학생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한국문학번역원 주최 예비번역가 초청 연수에 참가한 학생들이 서울 을지로의 한 찻집에서 소설가 윤고은(왼쪽 셋째)의 설명을 듣고 있다. 탁자 맞은편 끄트머리에 소설가 장강명의 모습도 보인다.

학생들은 밤섬이 내려다보이는 강변 카페로 자리를 옮겨 장강명 소설 ‘되살아나는 섬’에 관한 질의응답을 벌였다. ‘되살아나는 섬’은 1967년 폭파돼서 없어졌다가 자연적으로 되살아난 밤섬의 안녕을 지키는 당주(堂主)의 은밀한 세습을 다룬 소설이다. 질의응답에 앞서 장강명은 밤섬의 내력을 소개한 영상물과 밤섬을 무대로 한 영화 <김씨 표류기>의 예고편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학생들은 “소설이 순전한 픽션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눈앞에 실제로 있는 걸 보니 놀랍고 반갑다”며 ‘이름이 왜 밤섬인지’, ‘폭파할 때 반대는 없었는지’, ‘지금은 왜 사람 출입을 막고 있는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장강명이 일간지 기자를 하다가 작가로 변신한 까닭, 사회적 문제를 많이 다루는 배경 등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프랑스 국립동양대 3학년생 클레어 트라츠는 최근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된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들고 와 작가의 사인을 받기도 했다.

“저는 사회적 문제를 많이 다루는 작가로 분류됩니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표백>은 자살을 다룬 것이고, 국정원의 인터넷 여론조작이 큰 문제가 되자 <댓글부대>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어요. <한국이 싫어서>는 이 땅을 떠나고 싶어하는 젊은층의 심리를 그렸죠. 아무래도 제가 기자 출신이라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지요.”

10일부터 21일까지 2주간 열린 한국문학번역원의 예비번역가 초청 연수에는 영국, 러시아, 중국 등 10개 나라 학생 10명이 참가했다. 학생들은 첫주에는 한국 문학과 문화에 관한 강의를 듣고 17~19일에는 경북 안동 국학진흥원과 청송 객주문학관으로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연수에 참가한 일본 도쿄외국어대 4학년생 오노 모토에는 “일본 작가들과 달리 한국 작가들이 특히 사회를 바꾸려는 의식이 강해 보여서 좋았다”며 “번역가가 되어 한국 문학의 좋은 작품들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터키 에르지예스대 졸업생 부켓 첼레비도 “작품을 혼자 읽을 때는 모르는 말도 있어서 힘들었는데 작가님들의 친절한 설명 덕에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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