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감금 악몽' 탈출해 경찰 찾았더니..부실대응 논란

권혜정 기자 입력 2017. 7. 23. 06: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찰 "어디 아픈거 아니냐..착하게 살아라" 막말
경찰 "진술 상반돼..명명백백 밝히겠다" 조사 착수
경찰 로고./뉴스1 © News1 신채린 기자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채팅앱으로 만난 남성에게 사촌지간인 20대 여성이 각각 40일, 20일 동안 감금돼 성매매와 사기 등 각종 피해를 입은 사건과 관련해 이들이 감금에서 벗어나 찾아갔던 경찰서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권경찰로 변화하겠다는 경찰의 다짐이 나오는 상황이라 파장이 예상된다.

<뉴스1>이 지난 15일 보도한 '채팅앱서 만난 남성에 40일간 납치·감금 악몽' 사건과 관련해 피해여성 A씨(22) 등과 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17일 40일간의 감금 끝에 도망쳐 부천 원미경찰서를 찾았다. 그 지역 한 모텔에 감금돼 있다 맨몸으로 찾아간 A씨의 피해 사실을 듣고는 이 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어디 아픈거 아니냐"라며 A씨에게 핀잔을 줬다고 한다.

감금에서 벗어나 당황한 A씨는 "남자친구와 두 달 동안 함께 있었고, 이 과정에서 남자친구가 내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해 돈을 챙기는 등 각종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피해사실을 진술하지는 못했지만 경찰을 향해 처음으로 도움을 청한 셈이다.

그러나 A씨를 담당한 경찰관은 "처음에 남성과 만난 곳이 수원이니 수원에 있는 경찰서를 찾아가라"고 말했다. 이에 A씨가 돈도 없고 핸드폰도 없어 갈 수가 없다고 하자 경찰은 "착하게 살아요. 좀"이라고 질책하듯 말하며 1만원을 쥐어줬다.

결국 A씨는 1만원을 들고 경찰이 말한대로 수원에 있는 한 지구대를 찾았으나 지구대 역시 A씨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A씨는 말했다. 당시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경찰관은 A씨의 이야기를 듣고 "주말이라 해 줄 수 있는게 없다"며 "(얘기를 들어 보니) 사기 범죄인지도 모르겠다"며 연신 눈물을 흘리는 A씨에게 눈치를 줬다고 했다.

갈 곳이 없는 A씨는 마지막 방법으로 지구대에 있는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해 메신저로 지인에게 연락을 하겠다고 부탁했지만 지구대 측은 "여기 있는 컴퓨터로 외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다"며 3시간가량 A씨를 방치했다고 한다. 경찰은 몇시간이고 울고 있는 A씨가 딱하게 느껴졌는지 그제서야 "빨리 인터넷을 쓰고 가라"며 외부 인터넷 접속이 안 된다던 컴퓨터를 사용하게 해줬다고 A씨는 말했다. 결국 A씨는 신고 접수조차 하지 못한 채 지구대를 떠나야 했다.

A씨의 사촌인 B씨(22·여) 역시 문전박대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어렵사리 20일 간의 감금에서 벗어나 부모님이 거주하는 세종으로 옮겨 지난달 초 세종경찰서를 찾아 사기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지만 B씨 담당 조사관은 "남성의 정확한 나이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찾아달라는 것은 '서울에서 김서방을 찾아달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에 사건이 발생한 곳이 수원이니 수원에 있는 경찰서로 가라"며 B씨가 접수한 고소장을 일방적으로 취하했다고 B씨는 주장했다.

경찰의 부실한 대응으로 수면 아래 가라앉을 뻔 한 이들의 피해는 서울 관악경찰서의 도움으로 해결됐다. 각자 감금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만난 A씨와 B씨는 관악구에 위치한 B씨의 자취방에서 재차 신고를 결심했고, 112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자취방이 지하에 있어 전화가 연결되자 마자 끊겼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관악경찰서는 즉시 현장에 경찰을 출동시켰다. 이 자리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관악경찰서는 "이제부터 당신들의 편이 되주겠다"며 사건을 접수, 지난달 이들이 그토록 찾던 이모씨(24)를 감금 등 혐의로 체포해 구속시켰다.

A씨는 "한편으로는 내가 당한 범죄가 보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은 경찰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곳이 경찰이라고 생각해 찾아간 것인데, 너무나 실망스러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경찰이 말로만 국민을 돕는다고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상담을 지원하고 있는 안민숙 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 상담국장은 "범죄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 중에 경찰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몇 군데의 경찰서를 전전했으나 경찰이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해 신고가 늦어졌으며 이로 인해 피해자가 경찰을 불신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에 대한 경찰의 무성의한 태도는 하루 빨리 시정돼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경찰은 A씨와 B씨의 이같은 주장에 감찰에 착수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이들이 찾았던 부천 원미경찰서와 수원의 한 지구대에 대해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 사건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밝혀 철저하게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세종경찰서의 부적절한 대응과 관련해서도 충남지방경찰청이 감찰에 나선 상황이다.

다만 경찰은 1차 조사를 진행한 결과 피해자들의 주장과 당시 근무 경찰의 주장에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부천원미경찰서의 대응과 관련해 "당시 A씨를 담당했던 경찰관은 A씨가 경찰서를 찾아 '남자친구를 채팅앱에서 만났는데, 좀 찾아달라'고 말을 했고, 핸드폰 불법 명의 대출과 관련해서도 '피해를 입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범죄 피해 가능성을 내비치지 않아 사건 접수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또 "당시 부천원미경찰서를 찾았을 때 여기서도 조사가 가능하고 수원으로 사건을 이송해줄 수 있다고 했는데 본인이 직접 수원으로 가겠다고 해서 1만원을 쥐어 준 것"이라고 말했다. "착하게 살아요"라고 말했던 것과 관련해서는 "채팅앱은 위험하니 앞으로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수원의 한 지구대 측 역시 "A씨가 남자친구가 내 명의 신용카드를 가져갔는데 돌려 주지를 않는다고 말했다"며 "강제성과 고의성이 없어 보여 상담이 필요해 보였으나 주말이라 상담이 불가능해 평일에 오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피해자의 주장과 당시 근무 경찰의 주장에 상반된 부분이 있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jung9079@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