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이란 말

2017. 7. 2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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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그냥, 동네 아줌마들, 그냥 돈 좀 주고 시키면 되는, 조리사라는 게 아무것도 아니거든. 간호조무사보다도 더 못한, 그냥 요양사, 따는 진입장벽 정도가, 미친 ×들, 나라가 아니다.”

정규직화를 포함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학교급식노동자(조리원)들의 이틀에 걸친 파업이 있었다. 이 파업에 대해 요즘 다른 일로도 ‘핫한’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경기 광명을)이 기자와 ‘사적인 대화’ 과정에서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것을 기자가 녹취 공개해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이 의원은 학교 비정규직 급식노동자, 즉 조리원을 일컬어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라 했고, 간호조무사보다도 못한 요양사 정도의, 자격증 따는 진입장벽이 낮은 직종으로 간주했다. 그것이 왜 문제일까.

‘하찮은’ 노동에 대한 천한 생각

우선 급식조리원이란 직업(과 ‘조리’라는 노동)을 천시했다는 것. 그것은 동네 아줌마들에게 돈 몇 푼 쥐어주면 다 할 수 있는 전문성이 부족한 노동이자 직업이라는 거다. 밥이나 반찬을 만들고 배식하고 설거지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쉽고 하찮은 일이라는 생각 자체가 문제다. 굳이 ‘밥을 해서 누군가에게 먹이는 일의 엄숙함’을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 어떤 일이든 임금을 받고 파는 노동의 형태를 띠면 그 일은 주어진 시간 안에 전력투구해야 하는 강도와 밀도를 가지게 된다. 이언주 의원 자신은 과연 돈 몇 푼 받고 그 일을 매일 하루 종일 해낼 수 있을까.

다음, 급식조리원과 그들의 노동을 비하하면서 덩달아 간호조무사, 요양사 등 다른 직업군도 비하했다는 것. 그 이유는 이 직업들 모두 진입장벽이 낮아 자격증을 쉽게 딴다는 것이다. 충분한 교육을 못 받은 여성이나 경력단절 여성이 주로 선택하는 직업군이다. 경력사항을 보니 이 의원은 서울대 불문과를 나와 사시합격을 한 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로스쿨도 졸업했다. 자기는 그래도 진입장벽이 높은 직업 출신이라는 ‘계급의식’의 발로다. 노스웨스턴대학, 돈 엄청 드는 이른바 명문 사립대다. 노동강도가 강하고 임금이 박하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차별받는 사람들이 집안 넉넉해 좋은 교육 받은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2차, 3차의 차별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동네 아줌마들’이란 말로 파업에 동참한 조리원은 물론 주로 30~60대의 ‘유한층’에 속하지 않은 절대다수의 한국 여성을 도매금으로 비하했다는 것. 이 의원은 자신도 여성이면서 이 대규모 여성인구층이 ‘아줌마’라는 그리 아름답지 못한 비칭으로 불리는, 가부장제와 고용구조를 포함한 성차별적 제도와 관습 등의 기원을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증명해 보였다. 아마 조리원, 조무사, 요양사 등 그가 매우 하찮게 본 직업군이 공통적으로 가진 ‘돌봄노동’의 중요성과 그에 반비례하는 낮은 대가를 생각해본 적 없을 것이다.

그가 남성 의원이었다면

편견과 차별과 몰인식에 의해 저질러진 그의 ‘잘못들’을 고려한다면, 노동자가 파업한다고 ‘미친 ×’이라고 나라 망친다고 하는 발언이 그래도 법률가 출신인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논리적 필연으로 오히려 이해된다. 다만 한 가지, 나를 포함한 이 의원에 대한 ‘비난’들이 혹시 그가 남성이 아닌 여성 의원이라서, 또 대선 과정에서 ‘재빨리’ 당적을 옮겼다는 사실 때문에 일종의 ‘조리돌림’으로 증폭되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 걸린다.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적어도 나는 그건 아닌 듯하다. 사실 나는 무엇보다 이 의원이 몇 차례나 반복한 ‘그냥’이란 말을 더 참을 수 없었다. 인간은 누구든 절대로 ‘그냥’ 인간으로 태어나지는 않았다.

김명인 인하대 교수·계간 <황해문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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