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호의 사서삼매경] (23) '차도' 꽉 막힌 남북 관계.. 박지원 특사는 어떤가

southcross 2017. 7. 2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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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무제 사마염이 깊은 병에 들었다. 장인인 양준과 황족 원로 사마량에게 태자를 부탁하고 5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바보 태자 충이 황제가 됐다. 훗날 백치황제라 불렸다. 황후인 추녀 가남풍은 멍청한 남편을 이용해 권세를 잡을 야욕을 품었다. 그녀의 꾐에 빠진 초왕 사마위가 권력자인 양준과 양씨 일당을 몰살했다. 황후는 또 직접 명령을 내려 시어머니인 양태후를 서인으로 강등시키고 그녀의 친정 어머니까지 사형시켰다. 천하의 어른으로 칭송 받던 위관, 사마량과 초왕 사마위가 마지막 정적이라 여긴 가남풍은 또 남의 칼을 빌릴 꾀를 낸다. 위관과 사마량을 동시에 대사마로 임명하고 사마위에게 밀조를 내려 둘을 처치하라 했다. 선망하던 노신 둘을 하룻밤 사이에 잃자 백성들이 분개했다. 가남풍은 이를 핑계로 사마위 마저 죽이고 조정을 휘어잡았다. <진서 등에서>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이 21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남북 군사당국회담 성사 불발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한 뒤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북을 두드려도 北은 응답하지 않았다. 도발 일변도의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려 했던 우리 정부의 노력이 잠시 더 시간이 필요해졌다. 10년의 격조를 생각하면 성급한 제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햇볕'이 가려지고 먹구름이 끼었다.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고 천안함이 침몰했다. 개성공단의 불이 꺼지고 대북 확성기가 볼륨을 높였다. 그 사이 이산가족들은 10년 더 나이를 먹었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며 관계 회복의 희망가가 들려왔다.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을 연속으로 제안했지만 짝사랑은 아직 짝사랑이었다. 우리를 대화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그들의 태도는 여전했다. 미국과의 담판으로 제재의 틈바구니를 벗어나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핵미사일이 태평양을 건널 수 있다며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당분간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햄버거를 먹을 일은 없어 보인다. 북한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도 우리 정부를 향해 근본문제 해결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외세 배격, 합동군사연습 중지, 비방 중단, 군사적 충돌 위험 해소, 핵을 배제한 남북대화, 제재와 대화의 병행론 철회, 보수정권의 대북정책 청산 조치, 집단탈출 여종업원 송환, 민족대회합 등 9개 항의 조치를 요구했다. 쉽게 해결될 조항은 하나도 없다. 당분간 남북의 평행선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조선중앙TV는 14일 방영한 ''화성-14'' 미사일 시험발사 성공 기념공연 영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 시절의 김정은과 함께 미사일 개발현장을 시찰하는 모습의 사진을 십여 장 공개했다.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미사일 개발현장 시찰 사진이 이번처럼 많이 공개된 것은 이례적이다.
연합뉴스
北은 건제했다. 북한의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015년보다 3.9%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성장률로는 17년 만에 최고치다. 이쯤이면 유엔 제재는 비웃음을 당할 처지다. 북한이 버티는 건 뒷문이 든든하기 때문이다. 대외 교역량의 상당수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서 왔다. 제재의 강도를 더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의 접근이 필요한 대목이다. 중국은 왜 북한을 포기 못하는가. 혈맹보다는 지정학적 가치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북한은 만리장성의 끝에 있는 험난한 요새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난공불락의 요충지다. 방벽이 높아질수록 든든해지는 건 대륙인들이다. 반도인들은 두 강자 사이에 껴 민족과 국토가 쪼개지고 서로 총부리만 겨눠야 하는 처지다. 미국과 중국 두 강자 사이에서의 고단함이다. 춘추전국시대 정나라와 같은 형편이다. 진과 초, 두 강대국 사이에서 정을 우뚝 세운 건 재상 자산의 덕이 컸다. 자산은 국가질서를 정돈하는 일을 우선으로 했다. 형정을 만들어 법을 새기고 반포했다. 중국 최초의 성문법으로 추정된다. 모순을 이용해 귀족세력을 하나하나 제압했다. 너그러움과 엄격함으로 각종 제도를 시행해 정을 강소국으로 만들었다. 민첩한 외교로 나라의 명예와 지위를 지켰다. 일부러 접견을 미룬 진의 국군을 끌어낼 요량으로 귀빈관의 담을 허물었다. 회맹에서 소국에 회비 부담이 과중함을 따져 맹주 진나라의 양보를 받아냈다. 자산이 정을 지켜낸 것은 네 가지를 중점으로 뒀기 때문이었다. 작은 나라는 생존을 우선으로 한다. 그 다음은 덜 잃는 것이다. 품위는 지킬 수 있으면 좋다. 마지막이 자력자강이다. 지금의 우리 현실에도 본보기가 되는 지혜다.
정부가 군사분계선 일대의 적대행위 중지를 위한 남북 군사당국회담을 북측에 공식 제의한 17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남북한 초소가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연합뉴스
北을 흔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에 하나만 이루면 되겠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든지, 미국과 중국이 동맹을 맺든지 해야 한다. 어려운 과제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설 여지가 없다. 사드를 안고서 중국의 눈치를 계속 봐야 하는 신세다. 북한이 대화 창구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국내 사정이 녹록하지 않다. 북한에 적대적인 여론은 정부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혈안이다. 북한 문제를 포함해 해결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적폐 청산, 일자리 창출 등 큰 덩어리만 헤아려봐도 버겁다. 대화보다 우선은 남북 관계에 대한 패러다임의 재설정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정책을 단순히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정부 만의 새 정책틀을 만들어야 한다. 대화와 제재, 화해, 무시 등 여러 갈래가 있겠다. 다음은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지난 정권에서 행해진 과오가 있다면 꺼내고 사죄해야 한다. 안보를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했고 무엇인가 오고갔다면 그것부터 양심고백을 해야 한다. 북한도 떳떳하지 못하게 받은게 있다면 스스로 밝혀야 한다. 애국과 비애국을 구분해 비애국 세력들의 전횡을 철저히 응징해야겠다. 깨끗한 정치로 정나라를 강소국으로 만들었던 그 옛날의 자산처럼 말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가 20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평화통일이라는 큰 그림을 함께 그릴 사람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 북한을 다뤄봤던 박지원 의원 같은 사람이다. 회담을 제안하기 앞서 박 의원을 대북 특사로 파견해 의중을 미리 떠봤다면 회담 작업이 더욱 수월했을 수도 있다. 박 의원 본인도 문재인정부의 행보에 상당한 호의를 가지고 있다. 박 의원이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을 열심히 돕는다면 차후 과거에 말했던 것처럼 초대 평양대사가 될 수도 있겠다. 조국 통일에 대한 헌신은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제보 조작 의혹으로 수세에 몰린 국민의당으로서도 돌파구가 된다. 김대중정신의 계승이라는 큰 뜻으로 화해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합당을 하면 좋겠지만 최소 연정만 해도 문재인정부의 국정 수행에 큰 힘이 된다. 국회의원 의석수 160석이 넘어가면서 본회의 개의는 물론 의결도 가능하다. 중국의 북한 포기나 미중 동맹은 당장은 어려운 과제다. 이를 풀어감에 있어 부수적으로 행할 수 있는 전략들은 문재인정부의 앞길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北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진군의 북소리를 더욱 크게 울려퍼지게 하는 것이다. 남의 칼을 잘 쓰면 유용하겠다. 중국을 이용하든 미국을 이용하든 그 역시도 남의 칼을 쓰는 일이다.

하정호 기자 southcros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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