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명품에서 부실무기로', 수리온의 추락은 예고된 것이었다

박수찬 입력 2017. 7. 22. 11:02 수정 2017. 7. 2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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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국산 명품무기’라며 대통령이 직접 둘러보는 등 뜨거운 관심과 칭송을 한몸에 받았던 무기가 있다. 커다란 구멍 때문에 돼지 아니냐는 비아냥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첨단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민들에게 또 한번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처럼 명품무기에서 부실덩어리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 헬기가 국내에서 처음 개발된 수리온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든 수리온은 맹금류를 의미하는 ‘수리’와 100을 의미하는 ‘온’의 합성어로 용맹한 헬기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수리온을 개발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 11번째 헬기 개발국의 지위를 얻게 됐지만 지금 수리온은 겉만 번지르르한 모래위의 성처럼 변해버렸다. 16일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수리온은 2015년 발생한 3차례의 추락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결빙에 대한 성능 검사에서 101개 항목 중 29개 항목이 기준에 미달했다는 결과에 따라 지난해 8월 생산을 중단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KAI가 후속 조치 계획을 제출하자 방위사업청은 전력화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육군본부 등 관련 기관의 전력화 재개 동의를 서둘러 유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검찰이 KAI의 일감 몰아주기 등 경영비리를 수사하면서 수리온은 방위사업 비리의 상징으로 낙인찍힐 위기에 처했다. 과연 수리온은 비리의 온상일까.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2017 국방과학기술대제전'에 참가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부스에 수리온 기반 헬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남제현 기자
◆ 속도전 방식이 화를 부른 수리온 개발

2005년 12월 개발에 착수한 수리온은 4여년만에 초도비행에 성공해 2012년 12월부터 60여대가 일선에 실전 배치됐다. 세계 항공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속도전이었다. ‘빨리 빨리’ 문화가 지배적인 우리나라에서는 찬사를 받을 일이지만 개발과정에서 수많은 기술적 문제들이 묻혀버렸다.

KAI가 수리온을 개발할 때, KAI는 T-50과 KT-1 훈련기를 개발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헬기 분야는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해외협력업체로 선정된 유로콥터(現 에어버스 헬리콥터)가 제시한 AS532 쿠거(Cougar) 헬기를 기반으로 개발을 진행했다. 시행착오 가능성을 줄이고 개발일정을 단축하기 위한 조치였고, 이에 따라 개발에 착수한지 6년만에 실전배치가 시작됐다. 

저온 실험중인 수리온헬기.
KAI 제공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헬기는 엔진이 프로펠러를 회전시켜 양력을 얻는 항공기다. 엔진의 특성은 헬기의 비행과 생존성, 안전성 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헬기의 비행특성과 개발과정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수리온의 원형인 AS532 헬기는 프랑스제 터보메카 엔진 2기를 사용한다. 반면 수리온은 미국제 GE T700 엔진을 쓴다. 헬기 엔진이라는 점만 같을 뿐, 두 엔진의 기술적 특성은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제 엔진을 쓰면서 엔진 진동이 기체 구조에 미치는 영향과 비행특성, 공기흡입구 구조 등 핵심 사안들이 AS532와 완전히 달라졌다. AS532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헬기가 되어버리니 결함이 발생할 때 에어버스 헬리콥터의 지원도 한계가 있고, 수리온 결함을 수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사례도 찾기 힘들게 됐다. 군 관계자는 “수리온에서 결함이 발생했을 때 에어버스측이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KAI와 국방기술품질원이 속을 태운 적이 종종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고온 실험중인 수리온 헬기.
KAI 제공
이같은 상황에서 잠재적인 기술 결함을 제거하려면 오랜 시간 시험을 통해 경험을 쌓고 매뉴얼을 만들면서 결함을 찾아내야 한다. 한 항공 엔지니어는 “항공기 개발에서 왕도(王道)는 없다. 시험하고 또 시험해서 결함을 찾고 해결책을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리온은 개발 착수에서 생산까지 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미국의 V-22 수직이착륙기는 첫 비행을 한 이후 20년 가까이 시험을 반복하며 보완작업을 했음에도 추락사고가 수차례 발생했다. 1960년대 개발된 F-5를 개량한 F-20 전투기도 1980년대 추락사고가 발생해 조종사가 숨지면서 개발이 중단됐다.

개발에서 실전배치까지 6년만에 속전속결로 진행된 수리온에서 결함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기대였다. 촉박한 개발 및 시험 일정 속에서 UH-1H, 500MD 헬기의 노후화가 심각해지다보니 ‘일단 납품하고 계속 시험해서 고치자’는 방식이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 개발자들도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군인들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결함이 숨겨진 수리온 헬기를 인수받은 베테랑 육군 항공대 조종사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수리온헬기를 타고 이동한 육군 특공대원들이 강하해 목표지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육군 제공
◆ 수리온 결함 논란, 군 전체가 책임져야

감사원은 수리온 관련 결함이 시정되지 않았는데도 지난해 12월 수리온의 전력화 재개를 결정한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 판단, 장명진 방위사업청장과 이상명 한국형헬기사업단장 등 3명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서는 또다른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무성하다.

검찰에 수사 의뢰된 사람들이 정말로 큰 잘못을 저질렀을까. 얼핏 보면 수리온 결함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지만 그들은 수리온 개발 및 실전배치 과정의 가장 마지막 부분만 맡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수리온 프로젝트의 모든 문제점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2006년 1월 방사청이 개청한 이래 수리온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방사청 관계자들과 역대 청장들, 육군 관계자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이들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뜻은 아니다. 무지(無知)로 인해 너무나 큰 문제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세계 헬기 개발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개발 일정을 부여하고 잇달아 발생한 기술적 결함을 제대로 개선하지 못한 원인은 헬기 개발에 대한 전문성 부족과 그로 인해 발생한 잘못된 정책적 판단이라는 지적이 많다. 예를 들어 육군 항공대에서 근무했다고 헬기의 기술적 특성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니다. 헬기 정비사나 민간 기관 연구원, 방산업체 관계자들이 더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방사청에 관련 기술을 잘 알거나, 하다못해 관련 경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중용됐는지는 미지수다. 지금까지 거쳐 간 방사청장들의 경우 기획재정부 관료나 예비역 장군 등 군사기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주로 맡았다. 장명전 전 청장은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근무했지만 항공기 개발에 대해 얼마나 깊게 알고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기관총을 탑재한 채 시험비행중인 수리온 헬기.
KAI 제공
방사청의 수장이 이렇게 임명됐으니 하부 조직 구성원의 신규 유입이나 배치 등이 어떻게 진행됐을지는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개발 일정을 짜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비하는 프로젝트 관리 능력과 국방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함께 갖췄다면 100년이 넘는 엔진 개발 역사를 지닌 독일도 13년만에 개발에 성공한 1500마력 전차 파워팩(엔진+변속기)을 5년만에 개발하겠다고 계획해 숱한 논란을 자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고 양성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했던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도 수리온 결함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유다.

육군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수리온이 완벽하게 제 성능을 발휘할 있도록 전력화 시기를 뒤로 조정해 개발자들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고 UH-1H나 500MD를 개량해 수명을 연장하거나 외국에서 헬기를 싸게 임대하는 등의 대안을 강구해야 했다. 인도 공군의 경우 최근 프랑스제 라팔 전투기 도입을 결정했는데도 라팔이 완전히 전력화될 때까지 구형 재규어 공격기를 계속 운용할 방법을 찾기 위해 제작국인 프랑스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육군도 인도처럼 전력지수를 유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했지만 수리온 이륙 시 엔진 출력 제한 등 땜질 처방에 그쳤다.

수리온헬기 편대가 목표 지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리온의 결함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한국형전투기(KF-X) 개발 사업에도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헬기 개발 과정에서도 결함이 발생하는데 헬기보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전투기의 개발이 순조로울 것인가에 대한 우려다. 방사청은 최근 KF-X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하드웨어 시제품 일부를 공개하면서 “개발 과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수리온 결함 논란으로 빛이 바랬다.

무지는 잘못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 깨달았으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다. 수리온 헬기에서 겪은 시행착오가 KF-X와 소형무장헬기(LAH)를 비롯한 다른 국산 무기개발 사업에서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행위는 업무상 배임이나 비리보다 중대한 ‘돈 낭비, 시간 낭비, 국민 신뢰 상실죄’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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