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용의 軍界一學]말도 힘들어 주저 앉는다는 육군 22사단

김관용 입력 2017. 7. 22. 09:29 수정 2017. 7. 2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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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엄마 미안해. 앞으로 살면서 무엇 하나 이겨낼 자신이 없어. 매 순간 모든 게 끝나길 바랄 뿐이야. 편히 쉬고 싶어”

구타 및 가혹행위를 못이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21살 된 한 장병의 유서입니다. 육군 제22보병사단 소속 K 일병은 지난 19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외진을 나갔다 병원에서 투신했습니다. 지난 4월 부대로 전입한 뒤 병장 1명과 상병 2명 등 선임병 3명에게 지속적으로 폭언과 욕설, 폭행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해당 내용을 공개한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K 일병은 업무 미숙을 이유로 욕설을 듣고 멱살을 잡히거나 훈련 중 부상으로 앞니가 빠졌는데 “강냉이 하나 더 뽑히고 싶으냐”는 등의 폭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불침번 근무 중 희롱과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K 일병은 피해 사실을 자신의 휴대용 수첩에 기록했으며 유족들이 유품 확인 과정에서 이를 발견했습니다.

부대의 대응도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괴롭힘을 참다 못한 K 일병은 지난 14일 부소대장과 면담을 통해 피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이에 부대는 K 일병을 ‘배려 병사’로 지정한 뒤 일반전초(GOP) 투입에서 배제했습니다. 하지만 면담 후 5일이 지나도록 K 일병과 가해 병사들을 분리시키지 않았습니다. 병영 부조리 대응의 기본 원칙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것인데 이마저 제대로 지키지 않아 K 일병을 죽음으로 내몬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부대는 K 일병을 ‘배려 병사’라고 지정해 놓고는 사망 당일 인솔 간부 없이 외진을 보냈습니다.

강원 고성군 일대 전방지역에서 육군 22사단 장병들이 경계 속에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부대 제공]
22사단은 군 내에서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은 부대로 꼽힙니다. 올해 1월에도 22사단 소속 장병이 휴가 복귀 후 자살한 사건이 있습니다. 2014년에는 GOP 소초에서 전역을 3개월 앞둔 임 모 병장이 동료 장병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K-2 소총을 난사해 장병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습니다. 탈영 후 교전 과정에서 1명이 더 부상당한바 있습니다. 그해 한 달 뒤에는 부대 안 화장실에서 이등병이 목을 메고 자살하기도 했습니다.

일명 ‘노크 귀순’ 사건이 발생한 곳도 22사단입니다. 지난 2012년 10월 북한군 병사 1명이 동부전선 철책과 경계를 넘어 주둔지에 들어와 자고 있는 소초장을 깨웠습니다. 귀순자였기에 망정이지 무장한 특수부대였다면 큰일 날뻔 했습니다.

2009년에는 민간인인 예비역 병장이 22사단 지역 철책을 자르고 월북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1988년에는 이등병이 내무반에 수류탄 2발을 투척해 2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1984년에도 조 모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M-16총기를 난사해 15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하는 최악의 총기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해당 병사는 월북했다고 합니다.

22사단은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8군단 예하 부대입니다. GP 및 GOP 경계와 해안 경계를 동시에 맡는 유일한 부대이기도 합니다. 22사단의 별칭은 원래 ‘뇌종부대’였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작명한 이름입니다. 번개와 같이 적진으로 공격해 통일의 종을 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뇌종이라는 단어가 ‘뇌와 관련된 종기‘, ’뇌에 종을 때린다‘는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케 해 사고와 관련된 나쁜 일이 계속 벌어진다는 속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3년 율곡부대로 개명했습니다. 22사단이라는 숫자 ‘22’가 이이(李珥)로 읽혀 이이 선생의 호인 ’율곡‘을 따 부대이름을 ‘율곡부대’로 변경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군 생활을 했던 곳도 22사단 지역입니다. 55연대 예하 맹호대대(건봉산대대)는 노 전 대통령이 근무할 당시에는 12사단이었지만 현재는 22사단 소속으로 바뀌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근무 발자취를 기려 전방관측소 OP에 ’노무현 벙커‘가 있다고 합니다.연기자 송중기 씨가 군 생활했던 곳도 22사단 수색대대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2년 제18대 대선 후보 시절 월책 귀순사건이 일어났던 22사단 GOP 부대를 방문해 철책선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DB]
22사단에는 마좌리(馬坐里)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말도 힘이 들어서 주저앉는다는 의미의 마좌리는 그 이름답게 험준한 지형을 자랑합니다. 일명 ’천국의 계단‘, ’V밸리‘, ’맥도날드‘를 다 만날 수 있습니다.

천국의 계단은 GOP가 산 속이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안개가 낄 때가 많은데 이때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보면 천국의 계단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V-밸리는 말그대로 V자형 계곡입니다. 천국의 계단 코스와는 달리 산 속에 순찰로만 닦아놓았습니다. 맥도날드는 해당 브랜드 로고 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는 GOP 지형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22사단은 이같은 동부전선의 험준한 산악과 해안의 철책 경계 지역이 총 100여㎞나 된다고 합니다.

22사단과 관련해선 해안을 포함한 넓은 작전지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 문제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바로 옆 21사단의 철책이 50여km 인 것을 감안하면 거의 2배 길이에 병력은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곳 장병들은 힘든 군 생활을 합니다. 특히 경계부대인 GOP, GP, 해안GOP는 간부라고 해봤자 소대장과 부소대장, 전투분대장 3명뿐이라 병사들끼리의 부조리나 이상한 규칙들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 군은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병영문화를 바꾸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갈길이 멀어 보입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취임 후 6대 국방개혁 과제의 하나로 병영문화 개선을 제시했습니다. 더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되지 않아야 합니다. 육군은 이번 K 일병 자살 사건에 대해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철저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관용 (kky144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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