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와치] "흩어지면 죽는다" 카톡방으로 막걸리 파티로 뭉치는 스타트업

양사록 기자 2017. 7. 2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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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생태계 확 바꾸는 '네트워킹 문화'
창업 동아리 형태의 느슨한 네트워크 벗어나
모바일메신저·플랫폼 통해 촘촘한 관계 형성
시간·공간 제약 부담되는 대학생 창업자들은
카톡 대화창으로 정보공유·마케팅서 구인까지
롯데액셀러레이터 등 스타트업 보육기관
정기모임 열어 얼굴 익히고 사업 성과 공유
예비창업자에 투자연결·콘텐츠 지원 네트워킹
바이오·주택 등 공통주제 다루는 커뮤니티도
롯데액셀러레이터 입주 스타트업들이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롯데액셀러레이터에서 열린 ‘전 파티’에 참석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롯데액셀러레이터
[서울경제] 창업을 꿈꾸는 김준환(26)씨는 친구 초대로 들어가게 된 카카오톡 대화창에서 신세계를 경험했다. 자신처럼 창업에 관심이 많은 예비 창업가 100여명이 가입해 있는 대화창에서는 스타트업과 관련된 강연과 지원 프로그램 정보 공유는 물론 제품 출시 전 마케팅을 위한 설문조사, 각종 구인·구직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템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김씨는 최근 이곳을 통해 자신과 뜻이 맞는 예비 창업가를 만나 스타트업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나 에번 스피걸처럼 ‘데카콘(10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신생벤처기업)’을 설립하기를 꿈꾸는 창업가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이들이 자연스럽게 촘촘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내고 있다. ‘단군 이래 창업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창업 지원 정책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네트워크가 없으면 정보 부족 등으로 이 같은 지원에서 소외되기 십상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창업 세계에서 탁월한 기술력과 사업성뿐만 아니라 긴밀한 네트워크가 필수라는 사실을 절감한 창업자들이 창업 동아리 형태의 느슨한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모바일메신저나 보육기관 입주는 물론 스타트업 지원 플랫폼을 직접 만들며 촘촘한 네트워크를 무기로 창업 생태계를 바꿔나가고 있다.

◇부담스런 동아리는 NO, 학생 창업자 위한 ‘모바일메신저’가 뜬다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메신저의 단체 대화창은 가장 간단한 네트워크 형태다. 서울대 인근의 식당과 카페·미용실·노래방 등에 대한 가격과 위치정보를 모아 놓은 플랫폼 ‘서울프라이스’를 설립한 김상엽 대표는 지난 3월 서울대 졸업생과 재학생만 참여할 수 있는 카카오톡 대화창 ‘서울대 창업 대통합방’을 개설했다. 현재 14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멘토의 강연과 각종 지원 프로그램 공유는 물론 출시를 앞둔 제품에 대한 설문조사까지 다양한 활동이 진행된다. 우주 속에서 별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거울과 무드등이 합쳐진 제품 ‘코스모블랑’을 개발한 ‘태그솔루션’은 제품 출시를 앞두고 이 대화창을 통해 설문을 실시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스타트업으로 일하는 동문들의 의견을 듣고 개선 사항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박승환 태그솔루션 대표는 “직접 스타트업을 하거나 벤처캐피털(VC) 등 관련 업계에 있는 분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 관심을 갖고 진정성 있는 조언을 해줄 것으로 생각했다”며 “이 방을 비롯해 다양한 카카오톡 창으로 500명 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설문에 응해줘서 제품 개선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인력 채용까지 진행된다. 교육 스타트업 ‘에듀캐스트’는 5월 대화창에 올린 구인 공지를 통해 필요한 마케팅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오프라인 만남에 비중을 두는 기존 창업 세대의 시각으로는 다소 낯선 문화지만 이런저런 제약이 많은 학생 창업자들에게는 일상이 됐다.

김 대표는 “카카오톡 대화창을 이용한 네트워크가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오프라인 행사를 쫓아다니기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느끼는 학생 창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대화창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한 관리만 이뤄지면 출시 전 실시하는 설문 조사도 진지하게 응해주고 대화창을 통해 채용하는 인력도 신뢰할 만하다”고 말했다. 실제 김 대표도 마케팅 인력을 카카오톡 대화창을 통해 구했다.

롯데액셀러레이터 입주 스타트업들이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롯데액셀러레이터에서 열린 ‘전 파티’에 참석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위 사진) /사진제공=롯데액셀러레이터 2 최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마루 180에서 진행된 네트워킹 파티에 참가한 입주 기업 관계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래) /사진제공=마루180
◇사업 구상에 바쁜 3040세대는 보육기관 통해 네트워크 쌓기도

10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스타트업 전문보육기관 롯데액셀러레이터. 15층에 마련된 네트워킹 전용 공간에 들어가니 전을 부치는 냄새가 진동했다. 탁자에는 막 부쳐 나온 전들과 막걸리병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롯데액셀러레이터가 이날 입주기업 모임인 ‘L-CAMP’ 3기를 대상으로 막걸리 파티를 열었던 것. 5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몰려 막걸리에 전을 즐기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한 달에 1~2번 네트워킹 행사를 통해 이들이 고민을 공유하고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비용은 물론 롯데액셀러레이터가 부담한다.

또 다른 스타트업 보육기관 ‘마루180’은 두 달에 한 번 ‘타운홀미팅’을 연다. 10여개의 입주사가 모여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그간의 성과에 대해 공유하는 행사다.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다지는 타운홀미팅에서 얼굴을 익힌 스타트업들은 같은 층에 입주한 3~4개 기업이 수시로 모여 치킨과 맥주를 즐기며 야구를 보는 ‘플로어게더링’을 통해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학생 창업자들보다 절박하기 마련인 30~40대 초반의 생계형 창업자들은 네트워크를 형성할 시간도, 학생들이 가진 붙임성을 보일 여유도 없다. 그렇다고 네트워킹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은 주로 최근 늘어나고 있는 스타트업 전문 보육기관을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해가고 있다. 붙임성 좋은 대학생들만큼 빨리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자신이 창업한 분야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전문지식을 교류하며 누구보다 든든한 동지를 만난다.

같은 분야 스타트업 대표들과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도 돋보인다. 4월 스타트업 보육기관 디캠프에서 진행된 ‘집 관련 비즈니스’ 세미나를 통해 만난 스타트업 대표들은 의기투합해 ‘공간연합포럼’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스타트업이라는 점에 더해 ‘집’을 주제로 창업을 했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협력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함으로써 사업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지난해 5월 바이오벤처들이 밀집한 성남 판교와 대전에서 각각 문을 연 ‘혁신신약살롱’도 네트워킹에 목마른 바이오 연구자와 기업가들이 자발적으로 뭉친 모임이다. 대학교수와 연구원부터 기업의 연구개발(R&D) 인력은 물론 VC와 대형 제약사 연구소장, 신생 바이오벤처 대표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바이오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를 기울이며 교류한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열리던 모임이 벌써 일 년이 됐다. 6월에는 바이오 업계 최대 행사 중 하나로 꼽히는 ‘바이오 USA’가 열린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모임을 진행할 정도로 스타트 업계의 대표적인 네트워크로 자리를 잡았다.

◇가진 거 없어도 스타트업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누구든 환영

모바일메신저와 보육기관을 통한 네트워킹도 일정 정도 사업성을 인정받거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이 아니면 혜택을 누리기가 어렵다. 아직 스타트업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단계지만 열정만은 넘치는 예비창업자 지원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네트워크가 바로 ‘프리즘’이다. 프리즘은 별도의 자격이 필요없는 회원사를 위한 자체 교육과 네트워킹 행사를 주기적으로 개최하며 투자연결과 콘텐츠 지원 등을 비영리로 진행한다.

전창열 프리즘 대표는 본인이 스타트업 ‘비브’를 운영하는 창업가이기도 하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겪은 정보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과 서울대 학생회장을 하며 쌓은 넓은 인맥을 활용하면 스타트업에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11월 프리즘을 설립했다. 전국대학의 창업·개발 동아리와 예비창업자들,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지원 정보를 제공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취지로 만든 프리즘에는 모집 한 달 만에 전국에서 5,000명이 가입했으며 현재는 회원이 7,000명을 넘어섰다.

전 대표는 “많은 스타트업 보육기관들에서 네트워킹을 진행하지만 정작 가장 지원이 필요한 예비 창업가를 위한 네트워킹은 없었다”며 “예비창업 단계의 창업가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리즘이 개최하는 네트워킹 행사와 교육행사에는 매번 300명 이상 참석하고 최근 열린 글로벌 데모데이에는 1,000명 이상이 참석했다.

스타트업 대표들은 건전한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도 네트워킹 문화가 자리 잡는 일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한 관계자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주변의 도움을 얻어 큰 성공을 이루고 그렇게 일군 성공의 노하우를 또 다른 스타트업에 전수함으로써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이른바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록·김경미기자 sa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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