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무궁화 10만 그루.. 일본도 감동해"
재일교포 아버지가 30년 전 시작.. 父 사후, 가족이 공원 가꿔
"일본인도 무궁화 참 예뻐해요"
19일 오후, 햇빛 쏟아지는 양지바른 산비탈 30만평에 무궁화 10만 그루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이곳은 일본 사이타마현 지치부시 미나노 마을(皆野町)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 '무궁화자연공원'이다. 2010년 80세로 별세한 재일동포 윤병도씨와 그의 가족들이 대를 이어 30년 걸려 가꾼 곳이다.
막내딸 하세가와 노부에(長谷川信枝·54)씨는 공원 곳곳을 안내하면서도 수시로 허리를 굽혀 잡풀을 뽑았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는 분이셨어요. 바깥 일은 집에 와서 좀처럼 얘기 안 하셨지요. (무궁화가 만발한 산비탈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10년 넘게 여기 무궁화를 심고 계신 줄 가족 모두 까맣게 모르다가, 2002년 공원을 개장하기 직전에야 알았어요."
고인은 경남 거제도에서 태어나 18세 때 혼자 일본에 건너왔다. 일본인 아내 이토 하쓰에(伊藤初枝·80)씨와 3남매를 낳아 기르며 건설회사 오너로 성공했다. 만년에 고향에 느티나무도 3000그루 기증하고, 장학사업도 했다. 하지만 가장 정성을 기울인 건 무궁화 공원 조성이었다. 산비탈 한쪽에 은색 우주선처럼 생긴 원두막 크기 오두막집을 한 채 지어놓고, 틈날 때마다 와서 쉬며 무궁화를 심었다.
그는 자신이 이역만리 타향에 무궁화를 왜 심는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자식들에게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무궁화가 참 강한 꽃"이라고만 했다. 나무 한 줄기 꺾어 땅에 꽂아 놓으면 거기서 다시 뿌리가 난다는 얘기, 태평양전쟁 때 일본 정부가 무궁화를 없애려고 무던히 뽑았는데 소용없었단 얘기, 잠깐 피었다 지는 꽃이 아니라 여름 한 철 석 달 동안 끈질기게 피고 또 피는 꽃이란 얘기만 했다.
그가 별세한 뒤 가족들은 고민 끝에 무궁화 공원을 계속 가꿔나가기로 했다. 무궁화 10만 그루를 가꾸는 데 드는 돈이 인건비를 포함해 연간 1000만엔(약 1억원)쯤 된다. 무궁화가 제철인 7~9월과 이른 봄 2~3월엔 1인당 500엔씩 입장료를 받고 나머지 기간은 무료인데, 한 해 방문객 1만명 중 입장료 받는 철에 오는 사람이 5000~6000명, 무료일 때 오는 사람이 4000~5000명이라고 한다. 모자라는 돈은 아내와 자식들이 사비를 털어 메우고 있다. 가족들이 휴일·평일 가리지 않고 틈날 때마다 공원에 와서 잡초도 뽑고 산책로도 만들고, 지역 사람들과 의논해 천연 염색이나 밀랍공예 체험교실 같은 문화 행사도 하고 있다. 막내딸 하세가와씨가 "힘들고 어려운데, 그래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아직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했다.
"일본 사람들이 공원을 보고 나서 '무궁화가 이렇게 예쁜 꽃인 줄 몰랐다'고 감탄해요. 한국 사람들이 와서 보고 느끼는 감회는 그보다 조금 복잡한 것 같고요. 아버지는 자신처럼 고국을 떠나 일본에 사는 동포들이 한번씩 와서 꽃도 보고 고향 생각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저희는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며 무궁화를 가꾸고 있어요."
사연을 접한 한국 산림조합중앙회가 작년부터 무궁화 자연공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 중이다. 함평군수 시절 '나비축제'를 성공시킨 이석형 산림조합 중앙회장이 직접 직원들 데리고 1년에 한 번씩 출장 와서 조경을 돕고 있다. 작년에는 한국식 팔각정도 한 채 만들어 공수했다.
유족들과 산림조합은 앞으로도 무궁화 공원을 유지하되, 벚꽃이나 작약처럼 다른 철에 피는 꽃도 곳곳에 조화롭게 심어서 봄·여름·가을 꽃을 볼 수 있는 공원으로 가꿔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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