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0년 전 오존층 뚫린 남극 탐험하다 눈동자 색깔 바뀌어

조진형 2017. 7. 22.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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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남극탐험대 그린 영화 보고
'그곳에서 생존하겠다' 도전 결심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 피부도 손상
자연 붕괴 땐 인간도 못 산다 느껴
매년 아들과 남극 찾아 환경 캠페인
내년엔 남·북한 젊은이 참여시킬 것
━ 인류 최초 남·북극점 도달한 로버트 스원
인류 최초로 남극·북극점 도달에 성공한 로버트 스원(왼쪽)과 아들 버니 스원은 현재 환경보호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1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난 스원 부자가 활짝 웃고 있다. [김춘식 기자]
한반도 면적(22만㎢)의 60배가 넘는 북극과 남극(각 1400만㎢)의 평균 기온은 영하 30도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이는 ‘동식물의 자생(自生)이 어렵고, 모든 액체가 얼어붙는 온도’라고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선 가늠키 어려운 날씨다.

30년 전 맹추위를 뚫고 인류 최초로 남극·북극점(點)에 도달한 영국인이 있다. 1m82㎝·90㎏의 체격으로 올해 61세인 로버트 스원. 1986년 1월 남극점, 89년 5월 북극점에 도달한 그는 91년 ‘2041’이란 환경재단을 세운 이래 환경보호운동을 펼치고 있다. 재단명은 미국·중국·러시아 등 50개국이 남극에서 채굴 활동을 못하도록 한 남극조약의 만료 시기(2041년)를 따 작명했다.

최근 방한한 스원을 19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이 운영위원으로 있는 비영리 공익재단 ‘W재단’의 남극·북극 보전 캠페인 론칭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아버지의 ‘탐험 메이트’가 된 외아들 버니(23)도 함께했다. 이날 론칭 행사를 앞둔 부자(父子)는 단정한 옷차림이었다.

로버트 스원은 ‘2041’ 재단을 통해 세계 각국 젊은이 80명을 모집한다. 이들과 남극을 둘러보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깨닫는 ‘뜻을 세우는 남극 탐험대’를 매년 운영하고 있다. [사진 로버트 스원]

Q : 방한 계기는.

A : “영국·미국에 이어 (중국·일본·한국 등) 아시아권은 머지않아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글로벌 리더가 될 한국 젊은이에게 (빙하와 관련한) 해양 환경과 지속 가능한 대체에너지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한다. 이 일환으로 오는 11월부터 두 달간 아들과 함께하는 600마일(1100㎞) 남극 탐험 일정을 밝혔다. 친환경 에너지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태양열 썰매로 남극을 횡단한다는 계획이다.”

Q : 환경보호운동가로서 주요 업적은.

A : “96~97년 30여 명의 젊은 탐험가와 추진한 ‘남극의 도전’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남극에 버려진 1500t의 쓰레기를 회수하는 작업이었다. 쓰레기를 거둔 자리에는 해양 과학자를 위한 교육시설인 ‘이베이스’를 세웠다. 2003년부터는 ‘뜻을 세우는 남극 탐험대’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매년 3월 세계 각지에서 모집한 젊은이 80명과 남극을 2주간 둘러보며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하는 취지다.”

Q : 탐험가에서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이유는.

A : “내가 남극 탐험에 성공한 86년은 프레온가스(CFC가스)가 오존층 파괴의 요인이란 점이 밝혀진 해였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로 남극 탐험을 하다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됐고 신체 변화가 생겼다. 짙은 파란색이던 눈동자가 옅은 색으로 바뀌었고, 피부에도 여러 증상이 나타났다. ‘자연의 붕괴가 인간 생존을 위협하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북극 탐험(89년) 땐 대원을 모집한 뒤 현지에서 교육 목적 영상도 촬영했다.”
1986년 북극점 도달 당시 로버트 스원의 모습. [사진 로버트 스원]
스원은 91년 유엔 청년친선대사, 이듬해 유네스코(UNESCO) 특사로 환경보호운동을 펼쳤다. 95년엔 리즈대 환경대 방문교수를 했다. 2014년 ‘마지막 남은 자연 그대로의 남극을 살리자’란 주제의 TED 강연은 수백만 명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인류 최초로 북극·남극을 횡단한 30년 전 대기록은 그가 환경운동가·강연가로 활동하는 데 발판이 됐다. 그때 기억을 물었다.

Q : 남극과 북극 탐험의 첫 계기는.

A : “어릴 적이던 60~70년대는 미국·소련의 냉전 시기였다. ‘전쟁이 없는 유일한 곳’은 남극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우연히 본 영화 ‘남극의 스콧’(48년)도 계기였다. 영국 해군 장교인 로버트 스콧(1868~1912)이 인류 첫 남극 도달에 도전하다 숨진 실화를 그려낸 영화다. 말미에 주인공들이 숨지는 장면을 본 뒤 ‘난 남극에서 생존하겠다’는 도전의식이 생겼다.”

Q : 탐험을 어떻게 준비했나.

A : “영국 더햄대(고대역사 전공)를 졸업한 뒤 택시 운전사로 일했다. 7년간 남극 탐험에 필요한 돈을 벌었다. 내 남극 탐험 계획을 들은 지인들은 ‘심리 치료나 받으라’며 비아냥거렸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탐험 보트 마련을 위한 기업 후원까지 얻어냈다. 후원금 500만 달러(약 56억원)로 ‘남쪽 탐험대’(Southern Quest)란 명칭의 배를 마련했다.”
지난해 남극을 횡단하던 스원 부자. [사진 로버트 스원]

Q : 남극 탐험 중 고비는.

A : “베이스 캠프와 한동안 연락이 끊겼었다. 70일 동안 손목시계와 나침반에 의존했다. 식량이 떨어졌을 땐 몸무게가 30㎏이나 빠졌다. 그때 나를 버티게 해 준 게 꿈과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끈기였다.”

Q : 아들도 탐험가의 길을 걷는 이유는.

A : “(버니 스원) 어릴 적 역사 서적을 읽던 내게 아버지는 ‘탐험에 도전해 보라’(Come off the map)며 권했다. 일곱 살 때 아버지와 보트를 타고 남극의 조그마한 섬들을 둘러보며 남극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성인이 된 후엔 매년 아버지와 남극에 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체감한다. 장시간 걸을 땐 리드미컬한 K팝 ‘강남스타일’을 들으며 심심함을 달랜다.” 이번이 첫 방한이라는 스원 부자는 2박3일간의 짧은 한국 일정을 마친 뒤 ‘2041’ 재단이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내년 탐험 일정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분쟁 국가 출신 젊은이를 매년 남극 탐험에 모집한다는 그는 “내년엔 한국과 북한 학생을 참여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스원은 “지구의 소중함을 알리려는 우리의 노력이 더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 BOX] 한국은 1991년 최종열 대원이 첫 북극점 도달 「인류의 북극과 남극 탐험 역사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극에 최초로 도달한 건 미 해군 출신 탐험가인 로버트 피어리(1856~1920)다. 1909년 인류 최초로 북극 극지 부근에 성조기를 꽂았다. 훗날 그는 북위도인 북극점에 40㎞ 채 못 미친 지점에 도달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북극이 대륙이 아닌, 얼음이 떠 있는 ‘북극해(海)’란 사실을 밝혀내는 데 기여했다.

피어리의 북극 선점에 자존심을 구긴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1872~1928)은 2년 뒤인 1911년 남극에 최초로 도달했다. 영국 해군 장교 출신 로버트 스콧과 남극 도달 경쟁을 벌인 끝에 한 달 일찍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오로라 탐험대’ 최종열 대원이 91년 처음으로 북극점에 도달했다. 그의 북극점 도달 전후로 한국은 남극·북극 탐사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88년 남극에 연구기관인 세종기지를, 2002년엔 북극다산과학기지를 세웠다. 초기 목적은 오존층 관측, 해양 자원 탐사 등이었다. 2012년께부터는 북극항로 개척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국제 공동 빙하 시추 등에도 나섰다. 2014년엔 남극에 장보고과학기지를 세웠다.

두 지역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원유·가스, 금·은·동 등 광물자원이 다량 매장됐기 때문이다. 허승도 극지연구소 극지고환경연구부장은 “남극보호조약 때문에 남극의 자원 개발은 원천적으로 금지됐다”며 “반면 북극은 지구 온난화로 해빙이 녹으며 항해 영역이 늘었다. 자원 탐사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

조진형 기자 eni 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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