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말이 나를 지배한다

입력 2017. 7. 21.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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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너는 인간적이야 해. 착해야 해. 웃어야 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해.’ 이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너무 강박적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오히려 자신감이 떨어져 사람 만나기가 두려워졌다는 사연을 접했다. 다른 사람 또는 자기 자신과 언어적 소통을 하다 보면 우리 마음 안에는 자신의 감정 반응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틀이 형성된다고 한다.

‘관계의 틀’을 영어로 릴레이셔널 프레임(relational frame)이라 부른다. 이런 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동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앞에 언급한 ‘착해야 해’, ‘웃어야 해’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남자는 울면 안 돼’도 하나의 틀이라 볼 수 있다. 남자라면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런 단순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언어의 틀이 마음에 남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자가 여자보다 덜 운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보다 꼭 덜 울어야 하는 생리학적 이유는 딱히 없다. 무의식에 존재하는 ‘남자는 울면 안 돼’라는 언어로 만들어진 어떤 틀이 자신을 울지 못하도록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50세 들어 눈물이 많아져 우울증이 아닌지 고민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우울증이 온 것은 아니다. 조정 능력이 약해지다 보니 원래 울고 싶은 마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간 참았던 울음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행복이란 단어가 세상에 가득한 것은 누구에게나 행복은 삶의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행복과 관련된 관계 틀도 우리 무의식에 깊이 내재돼 있다. 예를 들면 ‘행복은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감정 상태다. 따라서 행복하지 않다면 결여돼 있는 것이다’ 또는 ‘더 나은 삶을 살려면 부정적인 감정을 제거해야 한다. 내 생각과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와 같은 형태로 언어화된 행복에 대한 관념이 자신의 뇌에 틀, 즉 프레임을 만들고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프레임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만 있다면 상관이 없겠는데 실제로 행복하냐고 물으면 시원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왜 그럴까. 혹 자신의 감정 반응과 행동을 조정하는 행복과 관련된 생각의 틀들, 즉 행복에 대한 자신의 관념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정적 감정도 정상 반응이다. 행복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틀로 굳어 버리면 오히려 우리 마음에 행복감이 찾아오기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면 ‘행복은 정상이고 불행은 비정상이다’라는 틀이 거기에 해당한다. ‘행복감, 즉 긍정적인 감정이나 사고는 인간이 느끼는 아주 자연스러운, 당연한, 일반적인 감정이고 우울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사고는 비정상적인 것이다’라고 판단하는 생각의 틀을 갖고 있는 것인데, 이런 경우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오면 자신의 삶은 평균 이하의 비정상적인 삶이 돼 버리고 삶도 불행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 버리기 위해 노력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조정하기 위해 마음을 통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부정적 마음을 없애기 위해 하는 통제 전략엔 어떤 것이 있을까. 도망치는 도피 전략이 있다.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는 행동 상황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불편을 느껴 아예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기분 전환도 도피 전략이다. 담배 한 대, 쇼핑, 멍하게 TV 보기 등이 그 예다. 술이나 잠, 약까지 이용해서 불안을 의식에서 지우려는 것도 도피를 통한 통제 전략이다. 투쟁 전략도 있다. 불편한 마음과 싸우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마음을 강제로 찍어 누르는 억압이 있다. 또 ‘힘내’, ‘꾹 참자’ 하며 책임감을 더 키우는 것도 있다. 자기 학대를 통해 불안을 없애기도 한다. ‘왜 이렇게 불안해. 넌 바보야. 눈 끄고 못 봐주겠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스스로 논쟁을 하기도 한다. ‘넌 실패자야. 아니야. 내가 이루어 놓은 것을 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쁜 감정을 없애고 행복하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한 것인데, 지나치다 보면 감정을 통제하는 데 자신의 감성에너지를 다 쓰게 돼 막상 행복을 느낄 힘과 여유마저 없어져 버리는 황당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감정과 사고는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은 무조건 비정상적이고 없애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틀을 잡고 있지는 않은지를 먼저 확인해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부정적 감정이 마음에서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통제 행동을 하게 된다. 우선,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비정상적인 감정 상태가 아닌 정상 반응이다. 이렇게 생각의 틀을 교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인간의 평균적인 기본 감성 상태가 ‘약간 우울함’이란 이야기도 있다. 우울감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별일이 없는 평화롭게 쉬고 있을 때 찾아오기도 한다. 왜 우울감이 기본 감정일까. 인생의 본질이 우울하고 그것을 감성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뇌 안의 감성 시스템은 삶의 지혜가 농축돼 있기에 인생에 젖어 들어 있는 허무와 슬픔을 잘 알고 있다. 아이언맨처럼 강한 남자도 시들게 되고 언젠가는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기에 우리 감성엔 촉촉한 우울의 감성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분노, 불안 같은 감정도 불편하고 과도하면 자신을 힘들게는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제든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다.

그래서 ‘긍정적인 감정만이 행복이다’ 같은 생각의 틀이 자신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희로애락이란 감정 모두가 우리 인생의 소중한 감정이고 그 느낌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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