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 NASA는 왜 달의 토양 '월면토'를 복제할까

원호섭 2017. 7. 2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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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인공 월면토 관심 '쑥'
"달의 토양(월면토)을 다스리는 자, 달을 지배한다."

올해 3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개발 업체인 '딥스페이스인더스트리'가 개발한 달 인공 월면토 512㎏을 사들였다. 3개월 만인 지난 6월에는 532㎏을 추가 주문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NASA는 지난달 과학자 8명으로 구성된 새로운 팀을 만들었는데 이들의 목표는 인공 월면토의 특성을 분석하는 일이다. 또한 NASA의 존슨우주센터는 인공 월면토 'JSC-1A'의 생산을 중단했다가 최근 돌연 재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인류 우주개발의 최전선을 달리고 있는 NASA. 월면토를 이용해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2009년 10월 NASA는 달에 '달크레이터 관찰 및 탐지위성(LCROSS)'을 충돌시켰다. 1.5t의 TNT 폭탄이 터지는 것과 맞먹는 충격과 함께 깊이 4m, 너비 20m의 분화구가 생성됐다. 우주 공간으로 뿜어져나온 파편을 상공 80㎞에 떠 있던 '달궤도탐사선(LRO)'이 관찰했다. NASA는 이듬해 LRO 분석 결과를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는데 핵심은 '물'이었다. LCROSS가 충돌한 곳은 햇빛이 들지 않는 달의 남반구. 이곳을 중심으로 반경 5㎞ 표토층 안에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 1500개를 채울 수 있는 38억ℓ 물이 얼음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확인됐다.

이후 달 연구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났다. 이장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극한건설연구단 연구위원은 "LCROSS 실험 이후 달에 탐사선을 보내고, 궁극적으로 기지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연구개발(R&D)의 흐름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얼음을 녹이면 물이 되고, 분해하면 산소와 수소가 나온다. 수소는 연료로 사용되는 만큼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한 달에 기지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클라이브 닐 NASA 달탐사분석그룹(LEAG) 위원장(노터데임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은 "지구에서 우주로 보내는 발사체 에너지의 90%가 지구 중력을 뚫기 위한 추진체로 사용된다"며 "달로 발사체를 보낸 뒤 그곳에서 연료를 채워 다시 발사하면 더 먼 우주로 더 많은 장비와 사람을 실어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핵융합 발전의 원료로 활용할 수 있는 헬륨-3(He-3)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을 만들 때 활용되는 희귀금속인 희토류도 풍부한 것이 거듭 확인되고 있다. 가만히 놔두기에는 달이 갖고 있는 매력이 상당히 크다.

달에 물이 있는 것이 확인됐고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기반 기술이 조금씩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월면토로 향했다. 달에 있는 월면토를 재료로 사용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건물을 짓는다면 운송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며 건설할 수 있다. 장병철 한양대 연구원은 "달 기지 건설을 위해 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하는 것이 월면토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월면토를 잘 활용한다면 우주개발국 사이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NASA가 최근 월면토에 부쩍 관심을 갖는 이유다.

월면토는 지구에 380㎏ 존재한다. 1969년 NASA가 달에 보낸 아폴로 11호가 귀환하면서 싣고 온 것들이다. 이 중 약 190㎏은 실험을 위해 사용되고 있고 나머지는 NASA가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로버(달 탐사 차) 탐사나 기지 건설 예행연습을 하기에 190㎏은 턱없이 부족하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너도나도 연구를 위해 손을 내밀고 있는 상황. 그래서 과학자들은 월면토를 모방한 복제토인 인공 월면토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폴로 11호가 갖고 온 월면토 성분을 분석해보면 이산화규소가 약 47.3%, 이산화티타늄이 약 1.6%, 산화알루미늄이 약 15.3%, 그 밖에 산화칼슘과 산화철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성분들을 조합하면 월면토와 똑같은 인공 월면토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유병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지반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구와 달은 지각의 화학적 구성물은 상당 부분 일치하지만, 대기가 없고 물이 희박한 조건에서 달 표면은 지난 40억년 동안 지구와 다른 형태로 형성돼왔다"고 말했다.

달은 약 45억년 전 지구에 화성 크기의 외부 천체가 부딪치면서 떨어져나가 만들어졌다. 충돌 과정에서 엄청난 열이 발생했고 암석들은 열에 녹았다가 굳는 과정을 거쳤다. 원시 달은 화산활동도 요란하게 일어났다. 용암이 굳어 현무암 계열의 암석이 만들어진 달. 이후 소행성과 같은 작은 천체들이 끊임없이 떨어졌다. 달 표면 암석이 부서지면서 모래처럼 작은 알갱이가 됐다. 천체와의 충돌 과정에서 월면토는 증발과 재결정화 과정을 반복하면서 물리적 특성이 변했다.

월면토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또 있다. 태양과 우주에서 날아오는 '태양풍'과 '우주 방사선'이다. 태양은 우주 공간으로 전하와 같은 에너지 입자를 쉬지 않고 방출한다. 우주에서는 에너지가 높은 방사선이 끊임없이 날아온다. 대기가 있는 지구는 이 입자들이 지표까지 내려올 수 없지만 달은 다르다. 유병현 수석연구원은 "월면토는 수십억 년 동안 에너지에 노출돼 반복적으로 풍화와 생성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고에너지에 노출되면 월면토 입자 내부의 원자나 전자가 영향을 받아 물리적 성질이 변하게 된다. NASA는 이를 모방하기 위해 흙에 높은 에너지를 갖고 있는 '플라스마'를 쏘아 인공 월면토를 만들고 있지만 물리적 성질을 재현할 수 없다. 이장근 연구위원은 "40억년 동안 달은 지구와 전혀 다른 공간에 놓여 있었다"며 "화학적 조성을 맞춘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성질까지 똑같이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인공 월면토를 자체 개발해 활용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과 일본, 중국, 캐나다에 불과하다. 존슨우주센터가 만든 것이 실제 달 토양과 가장 유사하다고 인정받는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도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인공 월면토를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 현무암을 이용해 분쇄 과정을 거쳐 개발된 인공 월면토는 실제 달 월면토와 화학적 조성이 비슷하다. 이장근 연구위원은 "우주개발을 위해서는 달 환경에 최적화된 건설 기술과 현지 자원 개발에 사용될 새로운 인공 월면토 개발이 필요하다"며 "인공 월면토를 개발하는 것은 우주 강국 자립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우주 탐험' 로드맵 함께 만드는 지구촌

지난 17일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한 실험실. 원통형의 커다란 실린더에 인공 월면토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진공펌프를 이용해 실린더 내부에 있는 공기를 빼내기 시작했다. 달처럼 '완벽한' 진공상태를 만들기 위한 실험이다. 30여 초가 지나가 인공 월면토가 마치 끓는 것처럼 위로 하나둘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장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공 월면토 속에 있던 가스 성분들이 위로 튀어나오는 것"이라며 "월면토와 성분이 같은 흙을 지구에서 만들어도 표면에는 여러 가스나 불순물이 묻어 있어 달 환경을 재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건설기술연구원은 인공 월면토가 포함된 50㎥ 크기 진공체임버를 개발하고 있다. 달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달 탐사 로버와 3D프린터를 활용한 연구개발(R&D)을 위해서다.

달 탐사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우주개발 협력 때문이다. 과거 우주개발은 미국과 옛 소련(러시아)에서 시작해 일본, 인도, 중국 등이 경쟁적으로 달려드는 형태를 보였다. 하지만 많은 돈이 필요하고 실패할 경우 큰 손해를 보는 만큼 각 나라에서는 국제공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미 영국 미국 일본 한국 등의 우주개발 기관들이 모여 '국제우주탐사협력그룹(ISECG)'을 만들고 우주탐사 로드맵을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다. ISECG는 우주 탐험과 인간 거주지를 확대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2030년께 인간을 화성에 보낸다는 계획을 세웠다.

달 탐사를 위한 국제공조는 이미 시작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산하 달탐사분석그룹(LEAG)은 2020년까지 달에 로버를 착륙시키려는 각 국가들의 계획을 임무에 따라 조정하고 있다. 두 국가가 달의 비슷한 곳을 탐사하는 것보다 서로 다른 지역을 연구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2020년 달의 궤도를 도는 위성을 발사하는데, NASA의 탑재체를 위성에 탑재하는 대신 우리나라는 심우주통신, 항법 기술 등을 지원받기로 했다.

과학자들은 우주개발 역사에서 지금처럼 많은 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지금이 위기이자 기회라고 이야기한다. 2000년 국제우주정거장(ISS) 건설 시 한국은 예산 부족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향후 ISS 역시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되는데 한국은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다.

이태식 건설기술연구원 원장은 "전 세계 우주개발 역사에서 지금처럼 많은 협력이 이뤄지는 것은 기회이자 위기"라며 "한국이 달에 대한 R&D를 멈춘다면 미국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의 우주개발 선진국으로 도약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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