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자신감 솟게 만드는 은밀한 '히어로(hero)뽕'..보정 속옷 인기
“그냥 내의(內衣)가 아녜요. 입기만 해도 ‘똥배’가 쑥 들어가요.”
키 165㎝, 몸무게 93㎏. 가슴보다 배가 더 튀어나온 체형. 술과 야근으로 다져진 육중한 몸매를 소유한 직장인 박성호(56)씨의 옷장 속옷칸은 온통 ‘보정속옷’으로 채워져 있다. 수년 전부터 사내 헬스장을 끊어 매일 한 시간씩 뛰고 있지만, 세월이 만들어준 ‘나잇살’은 도통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보정 속옷은 딸 민지(27)씨가 선물했다. “맵시 달라보일거라며 사주더군요. 쫀쫀한 면이 몸에 찰싹 달라붙어 날씬해 보여요. 답답하긴 하지만 겉보기에 좋아서 지금은 매일 착용하지요. ‘부장님 살 빠지셨다’는 얘기 들을 땐 속으로 웃어요.”
‘히어로(hero)뽕’ 인기
뜨거운 계절. 너도나도 벗으려는 때에 오히려 껴입는 아이템이 있다. 흔히 ‘뽕’이라고 불리는 몸매 보정용 패드다. 보정(補正)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넘치는 부분은 덜어주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준다. 이 ‘보완재’는 더 이상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름철을 맞아 ‘남성용 보정옷’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군살 가려주는 ‘보정속옷’부터 가슴·어깨·배 등 특정 신체부위에 근육 모양 ‘뽕’을 넣어 몸매가 다부져보이도록 만든 티셔츠도 인기다. 하루종일 앉아 업무 보는 사무직 직장인을 겨냥한 ‘남성용 코르셋’도 등장했다. 여성 고객이 대부분이던 보정옷 시장에 남성이 핵심 구매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입사 4개월차 신입사원 문정호(27·가명)씨도 잦은 회식과 야근으로 급격히 불어난 살을 ‘보정옷’으로 가린다. “턱선 사라지고, 배가 나오니 직장상사부터 주변 친구들까지 ‘왜 이렇게 살이 쪘느냐’ ‘일이 편하냐’ 묻더라고요. 스트레스 피하려고 보정속옷을 입기 시작했죠. 다시 살 뺄때까지 ‘가림막’이 돼주는 셈이에요.” 그는 “남자 동기들만 모인 단체카톡방에서 ‘보정속옷’ 이야기가 자주 회자된다”고 했다.
온라인쇼핑몰 11번가에 따르면 2012년 대비 올해 7월까지 남성용 보정속옷 판매량은 415.4% 늘어났다. 월별 판매추이를 보면 옷이 얇아지기 시작하는 5~6월에 연간 판매량의 37%가 집중돼 있다. 어깨 넓어보이는 ‘어깨뽕’, ‘뒷태 미남’ 만들어주는 ‘엉덩이뽕’ 등 보정용 패드만 별도로 구입하는 남성 소비자도 늘어났다. 인스타그램에 ‘#보정속옷’ 등 해시태그(hash tag·검색이 용이하도록 단어 앞에 #을 붙이는 방식)를 검색하면 1만 여건 넘는 구매후기가 쏟아진다. 11번가 관계자는 “3~4년 전 처음 등장한 남성용 보정속옷·보정패드가 이제는 완전히 대중화 됐다”고 했다.
‘외모 평가’ 좋아하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
보정의 기본 속성은 ‘현실회피’다. 직장인 신재현(28·가명)씨는 자신의 왜소한 몸매가 불만이다. “먹어도, 운동해도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라는 그는 ‘가슴뽕’ ‘어깨뽕’ 달린 티셔츠를 자주 입는다. 입기만 해도 어깨가 넓어지고, 이두근·삼두근이 생긴다. 그의 자취방 건조대엔 검정 티셔츠와 이 옷에서 분리된 ‘뽕’이 나란히 걸려 있다. “타고난 골격이 작아요. 대학교 때 ‘아동용 옷 입어도 되겠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으니. ‘뽕’ 달린 옷 입으면 더 건강해보이고, 남들 앞에 나설 때 자신감도 생겨요. 제가 더 당당해지는 수단인 거죠.”
남성용 보정옷 열풍에 대해 전문가들은 남 외모 평가하기 좋아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주로 여성을 향하던 ‘시선’이 이제는 남성에게까지 넓어졌다는 것. 윤석진 문화평론가는 “남녀 불문하고 외모나 몸매로 상대방을 쉽게 평가내리는 한국 사회에선 ‘몸’에 대한 민감성이 다른 사회보다 심한 편”이라며 “보정속옷·보정의상 열풍은 이 현상의 연장선”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의 영향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현준 문화평론가는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로 현재를 쉽게 인증하고 공유하는 시대에 남녀의 몸은 언제나 준비된 ‘피사체’여야 한다”며 “‘준비된 몸’에 대한 갈망이 보정옷에 대한 수요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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