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건, 소울푸드] '운수 좋은 날' 생각나는 한 그릇, 설렁탕

구성 및 편집/뉴스큐레이션팀 정영민 2017. 7. 2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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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울푸드(Soul food)'는 본래 미국 흑인들의 전통 음식을 뜻하는 말이지만, 우리에겐 '영혼을 위로하는 음식'이란 의미가 강하다. <아마도 그건, 소울푸드>에서는 문학이나 영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울푸드'를 찾아 그 기원과 매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설렁탕'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소설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다. 배경이 1920년대 일제강점기인 것으로 보아, 한창 설렁탕이 대유행하던 때다. 가난한 인력거꾼 김첨지의 병든 아내는 그런 설렁탕이 먹고 싶다. 당시 서민, 양반 할 것 없이 즐겨 먹던 것이 설렁탕이었지만, 김첨지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에겐 그조차도 큰맘 먹고 사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소설의 절정인 마지막 김첨지의 절규를 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설렁탕이 뭐길래, 돈이 뭐길래.

90년대부터 TV와 영화 등에서 범죄·수사물이 많아지면서 설렁탕에게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유치장·취조실에서 먹는 음식'. 경찰서에 조사 받으러 끌려온 범죄자들이 배달 온 설렁탕을 허겁지겁 먹는 장면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뇌리에 박혀 있다. 실제 현실에서도 그럴까? 많은 반찬이 필요 없이 간단히 먹어치울 수 있는 설렁탕은 짜장면과 더불어 여전히 사랑받는 메뉴인 듯하다. 참고로, 지난해 한국을 뒤흔들었던 최순실도 첫 검찰 조사 때 '설렁탕의 친척' 곰탕을 먹었다.

설렁탕과 로맨스. 설렁탕은 '아재'스럽고 로맨스는 '소녀'스러운데, 어떻게 이 두 단어가 병렬적으로 나열될 수 있을까. 정끝별의 이 시는 비 오는 날 북적거리는 설렁탕집에서 우연히 마주 앉게 된 낯선 남자와 낯선 여자를 그리고 있다. 여자는 느릿느릿, 남자는 후다닥 설렁탕을 먹고 자리를 뜬다. 혼자 한 테이블을 차지할 여유도 없이 모르는 사람과 마주 보고 밥을 먹어야 하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복작복작한 설렁탕집이 절로 그려진다.

설렁탕의 기원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그중 가장 지배적인 게 '선농단(先農壇)' 설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농사의 신인 '신농(神農)씨'를 중국에서 모셔와 제사를 올렸다. 이 제사가 이뤄지는 곳을 '선농단'이라 했다. '선농단'은 지금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었다고 하는데, 농사가 시작하는 봄이 되면 임금이 직접 이곳으로 행차하여 쌀과 소·돼지를 제물로 놓고 제사를 지냈다. 모든 의식이 끝난 뒤 조정 대신들과 백성들에게 제물로 쓰인 소를 이용해 국을 끓여 나눠주었는데, 이것이 '선농탕', '설농탕' 등으로 불리다 지금의 '설렁탕'이 되었다는 게 '선농단 설'이다. 국물이 눈처럼 뽀얗다고 하여 '설롱탕(雪濃湯)'이라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서울 동대문구 선농단에서 열리는 선농대제. 설렁탕의 기원이 됐다고 알려진 이 행사는 매년 열리고 있다. 제사가 끝난 뒤 커다란 솥에 끓여진 설렁탕을 나눠 먹는다. /조선DB.

이 '선농단 설'에 따르면 설렁탕은 서울에서 기인한, 서울의 전통 음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설렁탕이 몽골의 음식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설렁탕의 기원에 대한 두 번째 의견이다. 육당 최남선은 일제강점기 시절 책 '조선상식문답'에서 "몽골에는 맹물에 소를 삶아 먹는 '슐루'라는 음식이 있는데, 이것이 조선으로 넘어와 설렁탕이 됐다"고 썼다. 특히 '슐루'는 한자어로 '공탕(空湯)'이라고 표기해 '곰탕'과도 어감이 비슷하다.

일제시대 한 신문기사는 '거리에 설렁탕 배달부가 넘쳐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EBS 방송 화면 캡처

1920년까지만 해도 서울에 25곳 정도이던 설렁탕집은(1920년 10월 8일 자 매일신보) 4년 만에 폭발적으로 증가해 100여 곳(1924년 6월 28일 자 동아일보)에 이르게 된다. 당시 서울의 청계천 변과 종로에는 설렁탕 집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고 기록되는데, 매일신보는 이를 보고 '설렁탕이 조선 음식계의 패왕'이라고 보도했다. 일제강점기 때 설렁탕 집이 급증하게 된 건, 일본군의 고기 섭취량을 충당하기 위해 조선으로 소고기가 대량 유입됐기 때문이다. 일본군들은 주로 살코기를 먹었고, 조선인들은 소머리와 내장, 뼈, 꼬리 등 남은 부속물들을 재료로 설렁탕을 끓였다.

설렁탕 한 상 차림. /그림=이은경

설렁탕의 짝꿍

설탕 가득, 달콤새콤 깍두기 설렁탕 한 그릇엔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깍두기 한 접시면 충분한데, 이 '설렁탕 깍두기'는 일반적인 밥 반찬, 즉 정사각형 모양의 한입에 쏙 들어가는 깍두기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우선 크다. 설렁탕 깍두기는 한두 입 정도 베어먹을 크기의 것이 정석인데, 설렁탕에 만 밥과 번갈아 먹거나 국물 속에 넣어 먹는 방법이 있다. 혹은 설렁탕에 깍두기 국물을 넣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느끼함이 줄고 새콤달콤한 맛이 더해진다. '설렁탕 깍두기'의 두 번째 특징은 달다는 것이다. 이에 얽힌 이야기도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설렁탕집이 급증하면서 각 가게에서 손님몰이를 위해 당시 귀한 재료였던 '설탕'을 깍두기에 많이 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름기 쏙 빠진, 담백한 수육 지금이야 설렁탕집에서 여러 가지 메뉴를 팔고 있지만, 과거에는 대부분 설렁탕과 수육만을 팔았다. 소고기의 여러 부위를 끓여 만드는 설렁탕의 특성상, 수육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음식이었다. 때문에 초기의 설렁탕집에선 수육의 값이 지금처럼 설렁탕의 몇 배씩 차이가 나진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설렁탕이 대중화되면서 분유 등을 이용해 '가짜 설렁탕 국물'을 만드는 식당도 종종 적발됐는데, 이 때문에 '수육이 없는 집은 진짜 설렁탕 국물이 아니다'는 우스갯소리도 생겨났다.

쫄깃쫄깃, 애피타이저 소면 본래는 설렁탕에 소면이 없었다.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혼분식 장려운동'이 시행되면서 설렁탕에 소면이 들어가게 됐다. 혼분식 장려 기간에는 모든 음식점에서 밥에 보리쌀과 면류를 25% 이상 혼합하는 것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현재 설렁탕집에서 소면이 나오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다. 처음부터 탕에 넣어 나오거나, 손님이 직접 넣어 먹을 수 있도록 따로 나오는 경우다. 어찌 됐건 두 경우 모두, 소면이 불기 전 쫄깃할 때 빨리 먹는 것이 좋다.

설렁탕의 영양

고깃국물에 공깃밥, 소면까지. 설렁탕은 푸짐하면서도 영양가 많은 보양식이다. 사골을 오랜 시간동안 우린 설렁탕은 콜라겐과 아미노산, 칼슘, 마그네슘 등이 풍부하다. 콜라겐은 뼈와 피부, 연골 등을 이루는 단백질의 하나로, 충분히 섭취하면 노화 방지에 좋다. 소뼈 중에서 콜라겐이 특히 많은 부위인 '도가니'를 따로 떼어 '도가니탕'으로 파는 설렁탕집도 있다. 다른 국밥 종류의 식사도 그렇지만, 설렁탕 역시 '염분'을 생각하며 먹는 게 좋다. 소금으로 간을 할뿐더러, 이미 간이 되어 있는 깍두기, 소면 등을 곁들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염분을 많이 섭취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탕(湯)을 먹을 때 건더기 위주로 먹으라고 조언하지만, 설렁탕은 그야말로 국물이 핵심이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다. 따라서 본인이 스스로 염분의 농도를 조절하는 게 필수다.

설렁탕과 곰탕, 뭐가 다를까?

비슷한 듯 다른 두 음식의 차이는 국물을 우려내는 재료에 있다. 기본적으로 설렁탕은 뼈를, 곰탕은 뼈와 고기를 함께 넣어 끓인 음식을 뜻한다. 곰탕이 '고다'라는 말에서 온 것을 감안해, 설렁탕이 곰탕에 속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국물 색의 차이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설렁탕의 국물은 뽀얗고 곰탕의 국물은 그보다 맑은 편이다. 설렁탕은 많은 양의 뼈가 오랜 시간 끓으며 골수가 녹아 나오기 때문에 국물이 탁한 색이 된다. ▷관련기사 설렁탕과 곰탕, 비슷한 듯 다른 두 음식 어떻게 구별할까?

서울에서 대중화된 설렁탕답게, 서울 곳곳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설렁탕집이 많다. 전통있는 설렁탕집을 고르는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상호를 눈여겨보는 것. 전국서 가장 오래된 설렁탕집인 '이문설농탕'은 '설농탕'이라는 과거 명칭(현재는 표준어가 아님)을 그대로 쓰고 있으며, '옥(屋)' 자가 들어간 식당들은 못해도 50~60년 전 개업한 곳이 많다. 서울 시내 유명한 설렁탕집 몇 군데를 소개한다.

(왼쪽) 이문설농탕의 외관. (오른쪽) 이문설농탕의 설렁탕과 메뉴판. /이문설농탕 공식 사이트, tvN '수요미식회' 캡처.

이문설농탕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설렁탕 전문점으로,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에 있다. 개업 연도는 1902년, 1904년, 1907년 등으로 정확지 않으나 100년이 훌쩍 넘은 것만은 분명하다. 초기에는 한옥 형태였지만 도시 재개발 등에 따라 현재는 그 모습이 아니다. 최근 미쉐린 가이드에도 이름을 올렸는데, 특징으로 '17시간 동안 사골을 고아 기름을 걷어낸 뽀얀 국물'이 표현되어 있다. 조미료는 일절 넣지 않고 오로지 소뼈와 고기만 넣고 국물을 내어, '설렁탕의 신세계'를 맛볼 수 있다는 평을 받는다.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유명한 단골이었으며, '장군의 아들' 김두한은 청년 시절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후 그가 종로를 휘젓고 다닐 때는 자신의 측근들과 함께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과거 김일성이 한국에 오면 한번 맛보고 싶다고 했던 집이기도 하다.

/다음 로드뷰 캡처, 네이버 플레이스 업체 등록 사진.

무수옥: 도봉구에 위치한 70년 된 설렁탕집이다. 식당에 들어서면 1대 창업주 할머니의 사진이 걸려 있으며, 현재 3대째 운영 중이다. 국물은 3일 동안 12시간씩 끓였다 식히기를 반복해 맛을 낸다고 알려진다. 정육식당과 함께 운영돼 다른 설렁탕집에는 없는 육회비빔밥, 생등심 등도 맛볼 수 있다.

잼배옥: 1933년 문 연 뒤 100년 가까이 운영되고 있는 설렁탕집이다. 서울역 인근의 잠바위골에서 장사를 시작했다고 해 '잼배옥'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었다. 이곳은 24시간 가마솥의 불을 끄지 않고 설렁탕을 끓인다. 끓이는 도중에 국물을 계속 추가하는데, 기존의 '씨 육수'가 남아있어 더욱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는 설명이다. 문화옥: 전쟁 중인 1952년 개업해 60여 년의 역사를 지녔다. 가게는 을지로에 위치하며, 을지로 토박이인 현재의 사장이 시어머니께 직접 비법을 전수받았다. 27년째 독거노인들에게 설렁탕을 무료로 대접하고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조선DB

우리의 설렁탕은 커다란 솥에 팔팔 끓여 바가지로 대충 퍼 먹는 것이 원조다. 이렇게 그릇에 담겨진 설렁탕은, 평소 고기 구경 하기 힘든 서민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고마운 음식이었다. 깊은 국물 맛 속에는, 아무도 먹지 않는 고기의 버려진 뼈를 이용해 요리를 만든 우리 민족의 애환도 담겨 있었다. 오늘날에도 거리 곳곳에는 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있는 설렁탕집이 많다. 24시간 영업하는 곳도 적지 않다. 현대의 서민들도 과거의 그들처럼, 그 속에서 허겁지겁 배를 채우거나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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