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하피첩·조선후기 미인도.. 버려질뻔 했던 보물들

권구성 2017. 7. 2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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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미국 애리조나대의 인류학자 윌리엄 랏제(William L Rathje)는 쓰레기 매립지를 발굴했다.

그는 발굴한 쓰레기를 토대로 사람들의 시대상과 소비행태를 연구했다.

버려진 쓰레기는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입고, 버렸는지에 대한 시대상을 보여준다.

2010년 보물로 지정된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霞?帖)은 한때 쓰레기로 폐기될 처지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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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사용설명서' 특별전

1971년 미국 애리조나대의 인류학자 윌리엄 랏제(William L Rathje)는 쓰레기 매립지를 발굴했다. 그는 발굴한 쓰레기를 토대로 사람들의 시대상과 소비행태를 연구했다. 이른바 ‘쓰레기의 고고학’(Garbage Archaeology)이다.

흔히 ‘못 쓰게 되어 내다 버릴(버린) 물건’을 ‘쓰레기’라 부른다. 그러나 생활 속의 쓰레기는 그리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버려진 쓰레기는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입고, 버렸는지에 대한 시대상을 보여준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일상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를 주제로 ‘쓰레기×사용설명서’ 특별전을 10월31일까지 개최한다. 프랑스 국립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과 공동기획한 이번 전시는 쉽게 쓰고 버리는 현대인의 소비풍조 속에서 쓰레기가 지니는 의미를 조명한다. 
버려진 쓰레기 중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한 보물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사진은 한때 쓰레기로 폐기될 처지에 놓였던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버려진 쓰레기 속에서 발견한 ‘보물’

“누군가는 열심히 새것을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는 누군가는/ 어느 시점엔가는 쓰레기 따위로나 버릴 것이고/ 그것을 누군가는 어쩌다 주워가기도 할 것이다/ (중략)/ 쓰레기/ 아무렇게나 내팽개치지 마라”

안재동 시인의 시 ‘쓰레기’의 일부 구절이다. 시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쉽게 버려지는 쓰레기의 운명을 표현하고 있다.

종종 이런 쓰레기 중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한 ‘보물’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2010년 보물로 지정된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霞?帖)은 한때 쓰레기로 폐기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정약용이 자신의 두 아들에게 전하는 당부를 담은 하피첩은 부인의 빛바랜 옷을 재활용하여 글을 적은 서첩이다. 그러나 하피첩은 2004년 경기도 수원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 하피첩은 다른 폐지들과 함께 폐기될 위기에 놓였지만, 이를 알아본 사람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조선 영조의 태실 돌난간을 조성하는 과정과 절차 등을 필사한 ‘영조대왕 태실 석난간 조배의궤’(英祖大王胎室石欄干造排儀軌)도 태실 봉지기의 자손 살림집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발견됐다. 의궤는 발견된 이후에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지난해 보물로 지정됐다. 조선 후기 문인 윤두서의 손자 윤용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미인도’ 역시 쓰레기로 버려져 가까스로 발견됐다. 
윤용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미인도’.
우리 민족은 낡은 물건도 재활용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은 땜질도구(위)와 재활용한 등잔.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쓰레기로 엿보는 우리 민족의 시대상

버려진 쓰레기는 우리 민족의 시대상을 엿보게 한다. 가정에서 어머니들이 손수 바느질해가며 만들었던 ‘조각보’는 우리 전통문화의 상징이자 재활용의 산물이다. 자칫 쓸모없어 보이는 천조각이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품으로 재탄생했다. 기량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장은 “이제는 우리가 쓰레기에 대해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쓰레기의 종류와 양을 보여준다. 오늘날 쓰레기로 쉽게 버려지는 라면봉지가 1960∼1970년대에는 보자기로 재활용됐다. 당시에는 아무리 낡은 물건이라도 재활용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기 전시과장은 “시대를 거칠수록 쓰레기의 종류와 양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불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폐품을 재활용했지만 지금은 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시는 궁극적으로 ‘쓰레기를 줄이자’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활용을 활성화하고 물건을 오래 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전시는 우리 이웃이 오래 사용한 물건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네 명의 자녀가 물려 입은 ‘아동복’을 비롯해 어머니의 ‘경대’, 시어머니의 ‘손재봉틀’, 손에 익은 ‘다리미’ 등 우리 이웃이 소중하게 여기며 오래 사용한 물건들과 이야기가 전시장에 펼쳐진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물건이 지닌 가치’로서 쓰레기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기 전시과장은 “쓰레기를 사회학, 민속학의 관점에서 살펴본 국내 최초의 전시”라며 “전시를 통해 우리가 대면한 쓰레기 문제를 돌아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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