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질곡 정면 응시 질문하고 천착하면서 근원적 사랑·구원 추구

조용호 2017. 7. 20. 20:5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청준 전집' 10년 만에 완간

한국 소설계의 거목 이청준(1939∼2008)이 생전에 남긴 모든 작품을 집대성한 ‘이청준 전집’이 첫 편집회의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완간됐다.

초기 중단편소설을 발표 순서대로 모은 ‘병신과 머저리’와 ‘매잡이’를 시작으로 장편 ‘당신들의 천국’과 ‘서편제’를 거쳐 중단편집 ‘거인의 마을’까지 모두 34권으로 구성됐다. 중단편집과 장편소설이 각 17권씩이고, 수록작품은 모두 173편에 이른다. 한국문학에서 지성적 사유로 소설의 한 진경을 일구고 간 이의 장관이 일목요연하게 담겨 있다. 이청준전집간행위원회(권오룡 우찬제 이윤옥 이인성 정과리 홍정선)가 추진했고 각 권의 표지는 이청준의 고향 후배인 김선두 화백이 맡았다.

(사)이청준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인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이청준 문학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착잡하고 까다로운 20세기 후반기의 시대적 질곡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며 “질문하고 천착하며 인식하고 발견하는 진지하고 반성하는 작업을 통해 그는 진실과 사실을 분간하며 의미와 의의를 발견하고 품위와 격조를 존중하며 마침내 가장 근원적인 사랑과 화합을 당부하고 구원과 영원으로 초월하는 고답적인 정신의 소요를 보여준다”고 ‘이청준 문학에 대한 그리움’에 썼다.

지성적 사유로 한국 소설의 한 진경을 일구고 간 소설가 이청준. 후학들은 그가 ‘한결같이’ 그리고 ‘참으로’ 소설가였다고 기린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집 발간의 실무자로 이청준의 원고를 세밀하게 교열하고 발굴한 문학평론가 이윤옥은 “선생의 소설은 문예지뿐 아니라 다양한 지면에 실렸는데 그 발표 지면을 찾기 위해 국립도서관은 물론 신문사, 지방행정기관, 농촌 연구소까지 두루 다녔다”면서 “결국 찾지 못한 몇몇 작품의 첫 모습은 다른 연구자들의 노력이 더해질 뒷날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는 생전에 이청준을 이렇게 썼다. “선생은 가장 존경하는 문인이셨다. 인간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신사셨다. 등단 직후 내 손에 들어온 것이 그의 빼어난 단편이 무려 스무 편이나 수록된 중후하고 품격 있는 책 ‘별을 보여드립니다’였다. ‘훌륭한 단편이라는 건 바로 이런 거로구나’, 이렇게 스스로 깨쳐가며, 감동도 하고 감탄도 해가며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가 초대해준 세계에 들어가서 배회하는 사이에, 개인적 욕망으로 인한 불안감은 그때까지 주부로서의 편안한 일상을 지켜준 담 밖의 세상에 대한 눈뜸과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거의 동시에 읽게 된 ‘소문의 벽’은 다 치유된 줄 안 나의 정신적인 상처까지 건드리면서 나를 소름돋게 했다.”

이청준의 고향 후배인 소설가 이승우는 “선생님의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가 알아졌다”면서 “읽는 것 자체를 즐기고 그것으로 만족하게 하는 소설이 아니라 쓰도록 충동하는 소설이었다”고 돌아보았다. 소설가 이인성은 “초기 소설들을 감싸는 팽팽한 지적 긴장감으로부터 후기 소설 속에 펼쳐지는 내면풍경의 유장함에 이르기까지, 언어의 기능과 효과에 대한 탐구는 당신의 소설쓰기의 맨 밑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싶다”며 “선생은 ‘애당초’ 소설가였고 ‘한결같이’ 소설가였으며 ‘참으로’ 소설가였다”고 상찬했다. 문학평론가인 우찬제 문학과지성사 공동대표는 “선생은 한국 현대소설사를 빛낸 장엄한 ‘비상학’이었다”며 “그만의 방식으로 비상학의 부화를 몽상하며 진정한 ‘인간인’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서사 도정 반세기였다”고 평했다.

이청준 전집.
김선두 화백은 이번 전집 완간의 큰 조력자 중 하나다. 그는 2004년 봄 동향의 소설가 이청준, 시인 김영남 등과 고향을 테마로 한 책을 출판하고 전시를 함께한 인연으로 이청준과 고향을 여러 차례 다녀오곤 했다. 이청준 전집 모든 책의 표지를 그가 새롭게 작업하게 된 배경이다.

김 화백은 “선생은 고향 언저리에서 미적거리고 있던 나의 그림세계를 밖으로 확장시켜 주었다”면서 “문학과 그림의 만남에서 그림이 글의 이해를 돕는 삽화 차원에 머무르는 것, 그림이 글에 종속되는 것을 늘 경계하면서 당신의 글에 내 그림이 들러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회고했다. 문학과지성사는 김 화백의 표지화를 모은 전시 ‘행복한 동행’을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다음달 8일까지 이어간다. 21일 오후 3시에는 전시회장에서 완간 보고회도 열린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