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개편 앞두고 교사들 꼽는 공공의 적 'EBS 연계'
'EBS 교재 수능 출제 연계' 도마에 올라
본지 조사서 교사 12명 중 9명 "EBS 연계 폐지해야"
"학업부담·사교육 경감 효과 없다" 의견 많아
고3은 EBS 교재가 교과서 대체..문제풀이식 수업 파행
교사들 "정답 맞추기식 교육으로 창의적 인재 못 키워"
수업은 50분 내내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학생들은 지문 전체를 분석하지 않은 채 ‘족집게처럼’ 정답을 찍는 방법을 익혔다. 이 학교는 2학년 때부터 수업과 시험에서 EBS 교재를 활용한다. 교과서 진도와 연계된 내용을 EBS에서 풀게 하고, 시험에도 출제한다. 김 교사는 본지에 “특목고·자사고 중에는 EBS 교재를 1학년 때부터 활용하는 곳도 있다. 수능에서 EBS 연계율이 높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EBS 수업’에 김 교사는 부정적 인식을 표했다. 그는 “학력고사 때도 이런 식으로 수업하지 않았다. 주입식·암기식 교육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쟁력 갖춘 인재를 키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EBS의 수능 연계는 2004년 도입됐다. 도입 당시엔 수능 문제 중 30% 안팎을 EBS 교재에서 냈다. 그러다 매해 이 비율이 높아져 2010년 이후론 70%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2017학년도 수능에서 주요 과목별로 보면 전체 문항 중 EBS 교재에 유사한 문항이 있는 비율이 ▶국어 71.1% ▶수학 70% ▶영어 73.3%였다.
학생들 사이에선 학교 수업을 소홀히 하는 경향도 생겼다. EBS 강의만 제대로 들으면 학교 수업을 굳이 듣지 않아도 수능을 대비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일반고 교사는 “수업 중 딴 짓 하는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면 ‘나중에 EBS 들으면 되지 않느냐’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EBS가 교사와 교과서보다도 우위에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당초 수능 연계 도입 목적이었던 ‘학습 부담 경감’의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EBS 연계 폐지를 주장하는 교사들은 “학습량이 이전보다 오히려 늘었다”고 주장했다. 국어·영어·수학·탐구 등 주요과목의 EBS 교재는 과목별로 2~4권 이상 된다. 학생이 수능 전에 풀어야 할 EBS 교재만도 최소 16~17권에 달한다. 안연근 서울 잠실여고 사회교사는 “학교 정규수업에서 1년간 EBS 교재만 다뤄도 1~2권을 소화하기가 빠듯하다. 여기에 더해 EBS가 연계되지 않는 나머지 30%에서도 학생들이 좋은 점수 받으러 따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습 부담이 줄어들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EBS 연계로 사교육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온다. 오히려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의견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고등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26만2000원. EBS 수능 연계율이 70%로 높아진 2010년(21만8000원)보다 오히려 4만4000원 증가했다. 통계청은 사교육비 통계에서 EBS 교재 구입비를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이를 포함시키면 사교육비 부담은 4만4000원보다 더 많이 늘어날 것이다. 전철 경기 양서고 수학교사는 “상위권은 EBS에 나오지 않는 고난도 문제에 대비해야 하고, 하위권은 EBS 교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에 사교육에 다시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민희·이태윤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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