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차 기술 속도 못따라가는 제도.. "규제 풀어야 상용화 속도"

박상길 2017. 7. 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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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법·보험 사람 운전 전제.. 자율차에 적용 어려워
전세계적 제도 걸음마 단계 속 국내 규제 틀 마련 주목
임시운행 데이터, 감시 아닌 기술고도화에 활용 지적도
"사고 책임 문제·법규 준수 등 수용성 명확한 규정 우선"
구글(왼쪽부터), 죽스 등 주요 IT 업체의 자율주행 시험 차량. 한국교통연구원 제공
우버(왼쪽부터), 바이두 등 주요 IT 업체의 자율주행 시험 차량. 한국교통연구원 제공

■안전한 자율주행시대 열어라 5. 뛰는 자율차 기술 기는 문화·제도

자율주행 기술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자율차를 이용하려는 일반인이나 전문가가 전체의 절반을 웃돌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문화나 제도·법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여기에다 정부는 규제를 풀어주는 네거티브 정책이 아닌 오히려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아가려 하고 있다. 자율차는 일반 차량과 형태와 기능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운전자의 역할도 완전히 바뀐다. 이에 대한 국민 인식과 수용성이 떨어지면 기술이나 인프라가 갖춰지더라도 상용화까지는 또다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제도·문화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국내 차량 법체계와 보험제도는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운전하는 것을 기본전제로 하고 있어 자율차와는 맞지 않다. 자율차 시스템 알고리듬을 개발할 때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교통법규 위반과 극단적 교통사고 딜레마 상황에서의 윤리적 선택을 위한 원칙과 가이드라인 또한 필요하다. 자율차가 일반도로를 달릴 경우 다른 차량이나 보행자와의 사고 위험, 차량 시제품의 손상 및 정보노출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테스트베드를 달릴 경우에는 다른 자동차·보행자 및 외부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테스트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19일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연구원이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전국 성인남녀 700명, 자동차 전문가 75명, 운수업 종사자 200명 등 975명을 대상으로 한 자율차 윤리 및 수용성 설문조사한 결과, 일반인과 전문가 절반 이상이 자율차 이용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서울대 스누버가 운전자가 탑승한 가운데 복잡한 서울 도심을 달린 것처럼 제한적 조건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레벨3 수준의 자율차 이용 의사는 운전자 53%, 비운전자 50%, 전문가 68%가 있다고 답했다. 레벨 4 수준의 완전 자율차는 일반인 운전자의 56%, 비운전자 51%, 전문가 67%가 이용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응답자들은 자율차에 대한 기대감과 이용 의사는 있지만 자율주행시스템 고장 등 안전에 대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일반인 운전자의 과반수(51%)와 비운전자 44%는 자율주행시스템 고장으로 인한 교통사고의 위험 증가를 가장 많이 우려했는데 지난 1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테슬라S'의 잇딴 사고 때문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일반인 운전자의 20%는 위치정보 및 자동차 운행 시 발생하는 개인정보 유출, 15%는 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의 구분이 모호한 것을 우려 사항으로 꼽았다. 자율차 상용화와 보급 시 이용자 기대수준이 실현 가능한 기술 수준과 조화될 수 있도록 수용성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자율차 문화·제도 준비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걸음마 단계다. 자율차 일반도로 주행을 세계 최초로 허용한 미국은 사고 책임소재 문제에 대해 아직 법제도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주에서는 자율차 전용면허를 두고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2015년 11월 자율차 전용면허를 가진 사람이 탑승해야 하며 위험상황 시 사람이 조작할 수 있도록 핸들과 페달을 장착하고 있어야 한다고 자율차 법령 초안을 발표했다. 이는 무인 자율차를 허용하려는 도로교통안전국의 방향과는 상반되는 입장이다. 이외에도 미국 정부는 완전 자율차 도입 시 법제도와 관련해 아직 완성도 있는 연구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럽은 지난해 1월부터 자동차 산업과 NGO 대표, 정책결정자 등으로 구성된 '기어2030'을 통해 자율차 관련 제도를 연구 중인데 특히 자율차가 야기한 충돌사고에 대한 보장을 위해 보험법 개정이 필요한지를 논의하고 있다.

자율주행 중 사고 발생 시 책임 및 관련 보험제도 등 문화나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어가는지 해외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지만 반드시 쫓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해외 동향을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는 제도를 나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자율차 보험 롤모델로는 영국이 꼽힌다. 영국은 2013년 정부가 자율차 시험운행을 승인함과 동시에 자율주행 관련 정책 마련에 착수했다. 교통부를 주축으로 자율차 연구개발(R&D)에 2000만 파운드의 예산을 투입하는 동시에 보험업계, 법률 전문가, 제조업체 등이 모여 시험운행 규정을 마련하고 도로교통 및 의무보험 관련 규정을 정비해 나가고 있다. 현재 영국 정부는 로드맵상 자율차 양산 시점을 내년, 사고책임과 의무보험 제도 등을 새로 규정한 법규 개정 완료 시점을 올해 하반기로 잡고 있다.

우리 정부는 올해부터 자율차 보험 관련 연구에 착수했는데 지난 4월 '자율차 도입을 위한 보험제도 및 법령 개선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운전자 개입이 없는 완전 자율주행 단계뿐만 아니라 자율차와 일반차가 혼재된 과도기적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보험제도를 연구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자율차 문화·제도에 대한 규제 틀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현재까지 자율주행 임시운행 허가 차량이 20대에 달하자 정부가 운행 데이터 기록 및 공유를 법으로 강제하겠다고 나섰으며 국토교통부 장관은 임의로 자율차 시정조치 및 시험운행 일시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률 개정안을 마련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올초 자율차 임시운행 및 교통사고 정보를 국토부 장관에게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규정을 어길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현재 국회 국토위 의결을 거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계류 중이다.

국토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도 지난 6일 유사한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국토부 장관이 필요한 경우 자율차 관리업무 보고·검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크고 작은 사고기록을 일일이 정부에 보고해야 하고 벌금규정을 둔 만큼 기업들은 자유로운 실험이 아니라 보다 엄격한 환경에서 테스트를 해야 한다.

이를 두고 임시운행 데이터는 정부 감시나 제재 수단이 아닌 기술 고도화와 도로 인프라 보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험운행 정지명령도 적용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교통 전문가들은 자율주행 단계별 특성을 반영한 제도와 사회적 안전장치가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영준 한국교통연구원 교통기술연구소장은 "완전 자율주행에 가까워질수록 운전자 수용성이 확립되지 않으면 일반차와 혼재된 상황에서 자율차가 보복 운전을 당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레벨 3단계의 부분 자율주행이나 레벨 4단계의 완전 자율주행으로 기술이 진화하고 도로에 디지털 인프라가 구축되면 사고 시 운전자보다는 차량이나 도로의 법적 책임이 커지므로 운전자 교육, 사고 시 법적 책임문제, 끼어들기나 급정거 등 교통상황 법규준수 등 수용성이 명확히 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중기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레벨3의 경우 운전자가 운전할 수 있고 자율주행 기능도 있어 운전자가 사고 책임을 질 수 있으며, 사고가 나더라도 보험 처리가 가능한 방향으로 제도를 구축하면 될 것"이라며 "다만 레벨 4부터는 자율차가 독립된 운전자로 규정될 수 있어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는 만큼 단계에 맞는 법·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상길기자 sweats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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