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눈]데이터로 이루어진 너
[경향신문] 미래의 고객님께.
안녕하십니까. 미디어 시행령 7조 8항에 의거, 이 멀티미디어 메일이 광고임을 우선 알려드립니다. 하지만 동조 11항에 의거, 본 내용의 첫 항목까지 읽지 않으면 삭제되지 않음도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셀레스트 데이터’는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을 되살려드리는 업체입니다(여기까지 읽으셨으면 버튼을 눌러 바로 광고를 삭제하실 수 있습니다).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저희 셀레데이터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소개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한때 유행했던 빅데이터라는 용어를 알고 계실 겁니다. 당시 빅데이터를 내세웠던 업체들은 빅데이터가 인류의 난제를 여럿 해결하고 더 합리적인 정책 결정과 복지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고 홍보했습니다. 어느 정도 과장은 있었지만 빅데이터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긍정적으로는 경제활동을 활발히 만드는 효과가 있었고, 집단 정신질환이나 미디어 종속성에 따른 폐해를 막는 의학적 효과도 보여준 바 있습니다. 반면에 빅데이터의 결과를 교묘하게 왜곡해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려는 집단도 있었고,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짜 데이터를 조직적으로 생산하려는 조직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역사를 거치면서, 비록 빅데이터라는 용어는 사라졌지만 그 개념은 보이지 않는 삶의 배경에 완전히 녹아 있습니다.
이처럼 옛 용어를 다시 되새기는 것은, 저희 셀레데이터가 또 하나의 빅데이터 기업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함입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스몰데이터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더 이상 고객 여러분의 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되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별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수명을 다하거나 사고를 당해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사랑을 속삭이고 하나의 미래를 꿈꾸다가 사소한 문제가 불거져 끝내 헤어지고 만 연인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런 이별을 운명이라 불렀습니다. 삶이란 본래 그렇다며 체념하고 애써 아픔을 다독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시만요.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운명이라는 우상을 과학과 기술로 타파해가는 시대가 아니던가요? 저희 셀레데이터는 바로 그 점에 착안했고, 바야흐로 이별조차 기술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셀레데이터는 떠나간 분의 데이터를 전부 수집합니다.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제약이 있지 않냐고요? 저희는 전적으로 합법적인 활동만을 합니다. 저희가 개발한 간접자료연역 기법을 이용하면 떠나간 사람이 좋아하던 음악, 좋아하던 장소, 좋아하던 분위기, 좋아하던 향수, 선호하는 음식은 물론이고 그분의 소비 및 창작 활동의 패턴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셀레데이터에 근무하는 뇌과학과 인지행동과학의 전문가들은 그런 패턴과 다량의 데이터를 종합, 분석해서 떠나간 분의 ‘인격’을 만들어 내고, 두 가지 인격 제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떠나간 사람이 남겼던 향취와 추억만 간직하고 싶다면 ‘로즈메모리’ 상품을 추천합니다. 이 제품을 구입하시면 여러분이 들으시는 음악과 방송 목록에 떠난 이가 좋아하던 것들이 삽입되고, 기념일에는 그분이 사곤 했던 물건이 배달되고, 식당에 들르면 그분이 자주 주문하던 음식이 서비스로 제공될 것입니다.
더 직접적인 복구는 불가능하냐고요? ‘그린오토마타’는 그런 분들을 위한 제품입니다. 저희 셀레데이터는 수집한 데이터와 패턴으로 시뮬레이션 인격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린오토마타는 떠나간 사람과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에 시뮬레이션 인격을 심은 제품입니다. 떠나간 사람이 되돌아와서 소비자 여러분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린오토마타는 사람뿐 아니라 반려동물 형태로도 제공됩니다.
이제 운명이라는 허깨비 때문에 괴로워하고 울 필요가 없습니다. 인구가 점점 줄고 만남보다 이별이 많은 세상에서 사랑하던 존재를 영원히 곁에 두는 건 여러분의 권리입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아래 링크를 눌러 더 상세한 상품 설명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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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해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레이싱 게임 속에 남겨놓은 기록을 뒤늦게 확인하며 눈물지은 사람의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회자된 적이 있다. 고인의 기록은 게임 속에서 경쟁하는 자동차의 형태로 남아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고, 아들은 아버지가 남겨둔 자동차의 기록을 차마 앞설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감동에 앞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어떤 사람이 남긴 데이터가 곧 그 사람의 일부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세상에 남기는 데이터는 그리 많지 않다. 외부 세계와 우리를 이어주는 인터페이스가 감각적이고 간접적이며 기록할 수단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적, 일기, 약력, 업적, 인터넷 서점 사이트나 기타 쇼핑몰 사이트에 남은 주문 기록뿐 아니라 지인이 기억하는 우리 모습, 우리가 남긴 말, 행동 등이 전부 기록되고 자료화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는 이제 점점 데이터베이스의 객체가 되어가고, 인간의 두뇌 활동은 분석과 재생의 대상이 되는 중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가 정보의 형태로 완성되는 순간 인간의 정의는 새로 쓰일 것이다. 그 정의 속에 어리석음과 나약함이 너무 많이 포함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우리 자신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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