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에선 채소와 교배 번식..우릴 만만하게 보지 마"

윤희일 선임기자 2017. 7. 1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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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나, 유전자변형 유채를 소개해 드리죠
ㆍ일본에선 이미 유채 꽃가루와 개갓겨자가 교잡 생태교란 현실화
ㆍ제대로 대응 못하면 내년 유채철 유전자변형생물체 천지 될 수도

최근 국내에서 미승인 ‘유전자변형생물체(LMO·living modified organism)’ 유채가 대거 재배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정부가 대대적인 제거작업을 벌였다고 했지만, 재배 지역에서는 씨앗이 다시 발아한 사례가 잇따라 확인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유전자변형 유채가 다른 식물과 교배된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에서도 유전자변형생물체에 의한 생태계 교란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이 땅에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유전자변형 유채의 시각’에서 드러난 현실과 앞날을 내다봤다.

“제 꿈은 대한민국 들판을 모두 지배하는 것이랍니다.”

먼저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미국에서는 저를 ‘LMO 유채’라고 부르는데, 한국분들은 그냥 ‘유전자변형 유채’라고 부르는 게 낫겠네요. 눈치를 이미 채셨겠지만, 저의 고향, 아니 본적은 미국이에요. 제 조상이 이곳 한국까지 흘러들어오는 과정에 중국도 거쳤으니까, ‘글로벌 감각’도 충분히 갖췄다고 자부해도 큰 무리는 없겠네요. 저의 특기요? 그걸 안 물어보시면 섭섭하죠. 전 지구상에 있는 유채 가운데 나와 내 친척들만 갖고 있는 엄청난 특기, 아니 ‘무기’가 있거든요.

제 고향 미국에는 몬산토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가 유전자 변형을 통해 제초제에도 잘 죽지 않는 유채를 개발했는데, 그중에 제 조상이 섞여 있었거든요. 제초제에 강한 내성을 갖는 유채, 바로 저에게는 ‘GT73 유채’라는 암호 같은 이름도 붙어있죠. 제초제에 잘 안 죽으니까 ‘불사초’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까요?

저는 얼마 전 아름다운 한국의 들판에서 빛을 보게 되었죠. 장마가 절정을 이루던 지난 6월이었던가요? 충남 홍성군에 있는 밭에서 저의 싹을 틔웠고, 얼마 뒤 한국인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아니 유전자변형 유채가 또 생겨났네요. 이거 큰일이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합니까. 뽑아내면 되죠.”

제가 서 있는 밭에 온 사람들이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더군요. 아직 이 땅에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저를 뽑아서 죽여버리겠다고 난리를 치셨습니다. 제초제에도 버틸 수 있는 제가 ‘최강의 힘’을 한번 써보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얼마 전 경향신문이 ‘모두 제거됐다던 LMO 유채, 곳곳에서 재발아 확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기도 했던데, 우린 그런 거 신경도 안 써요. 저희들은 일단 큰 걱정을 안 해요. 저희들은 이미 대한민국 전국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까요. 지난 5월인가요? 강원도 태백에서 저와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LMO 유채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당국이 생난리를 친 거 다들 아시죠. 밭을 갈아엎고, 뿌리째 뽑힌 이들을 불로 태우기까지 하고….

하지만 저희들이 누굽니까? 최강 유전자변형생물 아닙니까? 발빠른 저희 어머니·아버지. 단속반이 나오기 전에 저(씨앗)를 만들어 땅속에 묻어놨더군요. 성격이 지긋한 어떤 친척은 발아 시기를 늦췄다가 단속반이 지나간 뒤에 여유 있게 싹을 틔웠다고 하더군요. 인간이 저희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요? 하긴 저희들 자체가 인간에 의해 태어난 것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때맞춰 내린 장맛비를 보고 저희들이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아, 당국이 2차, 3차 단속에 나선다고요? 또 땅을 갈아엎고, 소각하고 난리를 치겠네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세요. 그게 생각만큼 잘될까요? 2016년 1월 이후 한국으로 수입된 중국산 유채종자 79.6t 가운데 32.5t에 유전자변형 유채가 섞여 있었고, 전국 56곳에서 재배된 것이 확인됐다고 정부가 발표했잖아요. 전국 곳곳에 저희들이 퍼졌고, 이미 맺은 씨는 바람에 날리고, 비에 휩쓸려 다른 곳으로 갔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거 초등학생들도 다 알겠네요. 그리고 저희들이 숨겨놓은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뭐냐고요? 바로 ‘결혼’이에요. 그렇습니다. 역사드라마에 나오는 ‘정략결혼’이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고요. 앞으로 단속반이 수시로 들이닥칠 텐데 저희들이 손놓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저희들의 강력한 유전자(DNA)를 더욱 확산시켜야지요. 저희들도 다 알아봤죠. 상추·무·배추 등 십자화과의 다른 작물은 저희들과 결혼(교배)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제초제에 강한 상추,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무·배추 등…. 저희들이 기대하는 2세들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과장이 좀 지나치다고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저희들도 알아볼 것은 다 알아봤습니다. 일본에서는 저희들의 사촌쯤 되는 GMO 유채가 정말로 드라마 같은 국제결혼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2010년 일본 미에(三重)현의 한 국도변에서 있었던 얘긴데요. 유채 기름을 생산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주로 수입하는 GMO 유채 씨앗을 실은 트럭이 수입항에서 제유공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이 벌어졌던 모양입니다. 일부 씨앗이 떨어져 도로변에서 발아해 자라났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다음부터가 극적입니다. 발아한 GMO 유채가 꽃을 피웠고, 이 꽃가루가 유채와 교잡이 가능한 식물인 개갓겨자와 결혼(교잡)을 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건 일본 언론에 보도된 내용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기립해서 ‘물개박수’라도 보내고 싶은 장면입니다. 이 훌륭한 나의 친척, GMO 유채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제초제에 강한 내성을 갖고 있지요.

참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네요. 저희와 같은 LMO 생물은 번식능력을 갖고 있지만,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생물은 원래 번식 능력이 없도록 처리됩니다. 일본으로 들어간 GMO 유채 중 일부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서 발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여하튼 그 생명력이 놀라울 뿐입니다. 그게 저희 집안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LMO 유채는 원래 종자용이 아니라 식용이나 사료용으로만 들여올 수 있는데, 그게 종자에 섞이면서 한국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잘들 아시죠?

지난 5월 사람들의 눈에 띄어 단속이라는 철퇴를 맞은 강원도 태백의 제 친척들은 사실 호강을 했다고 할 수 있지요. 화사한 봄날, 유채축제의 주인공으로 맹활약하는 데 성공했으니까요. 그러나 그 뒤에 태어난 저의 경우는 그런 호강은 구경도 못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전에 갈아엎어지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계속되는 단속을 피해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내년 봄 유채꽃 축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니까요.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잘 모르겠는데, 사실 제 꿈은 그냥 내년 유채축제나 한번 보는 게 아니거든요. 한국의 산하, 한국의 유채밭, 한국의 유채축제를 지배하는 것, 그렇게 해서 제초제에 강한, 그동안 이 땅에 없던 새로운 유채, 처음 보는 식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랍니다.

“긴장 좀 하셔야겠어요, 여러분.”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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