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YS에 "권력 미련없다"…역대급 영수회담 기록 지난해 11월15일은 '영수회담'이 열릴 뻔 했던 날이다. 주인공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태블릿PC 파문으로 수세에 몰린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과 추 대표의 '담판'을 추진했다. 추 대표가 제안하고 청와대가 수용한 식이다. 임기중 야당 대표를 만나더라도 반드시 여당 대표나 관계장관들과 함께 했던 박 전 대통령이 당시엔 추 대표만 만나겠다고 했을 만큼 돌파구가 필요했다. 추 대표 또한 난국을 풀어보겠다는 승부수였다. 하지만 당내 극심한 반발에 부딪쳤고 격렬한 의원총회 끝에 이를 철회했다. 영수회담을 수락한지 12시간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여야 5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갖는다. 정상외교 성과를 설명하고 대북 접근법 등에 의견을 구한다. 전통적 영수회담은 대통령이 여당의 '제왕적 총재'를 겸하던 시절 야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들인 독대 성격이 강하다. 반면 요즘은 대통령의 여야 대표 초청오찬일 뿐 영수회담이라 부르긴 어렵다. 주요 영수회담 기록/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노규환 인턴기자 ◇ 文, 야당대표→대통령으로 자리 바꾼 회담 = '청와대 독대'로 제한하지 않으면 박 전 대통령도 야당 대표를 수차례 만난 걸로 기록된다. 가장 최근은 지난해 9월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긴급히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추미애 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를 초청해 만났다. 그러나 회담 결과에 대해 야당은 혹평했다. 문 대통령도 야당 대표 시절 영수회담 파트너였다. 문 대통령은 2015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자격으로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2012년 대선 라이벌의 재격돌로 관심을 모았다. 두 사람은 적어도 공무원 연금 개혁에 공감했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회동하자"는 데까지 나갔다. 그러나 정국이 쉬 풀리진 않았다. 물론 고전적 영수회담은 이미 사라진 뒤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함께한 회동이었다. 특히 박 대통령의 경우 늘 '의전'이 뒷말을 낳았다. 지난해 9월 장관들을 3당 대표들과 한 테이블(원탁)에 앉게 하면서 야당이 발끈했다. 대통령을 '원톱'으로 높이고 야당 대표를 참석자 중의 한 명으로 격하하는 모양새란 것이다. 2015년 문 대통령과 회담 땐 민주당이 대화를 기록, 브리핑해야 한다며 녹취를 요구하고 청와대가 이를 거부하는 신경전도 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시절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 회동을 앞두고 회의중인 모습/뉴스1 과거 영수회담은 대통령이 고비마다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는 정국의 전환점이 되곤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 총재는 아니었지만 야당 대표를 별도로 만나면서 영수회담을 했다. 2008년 손학규 당시 통합민주당 대표와 만나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조기 비준에 협조를 요청했다. 두 거물 정치인은 2011년에도 영수회담을 갖고 '대립각'보다는 민생 의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2010년, 2011년 청와대 회동도 주목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야당 대표는 아니었지만 새누리당 전 대표로, 여당 내 야당의 수장이자 가장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였다. 정권재창출에 합의한 두 사람이 손잡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동안의 갈등설을 잠재우고 보수 지지층을 결속시켰다. ◇ 盧 전 대통령, 박근혜 당시 대표에 대연정 담판 =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엔 2005년 9월7일 강력한 야당대표와 가졌던 대연정 담판이 유명하다. 그 상대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다. 노 전 대통령은 대연정 필요성을 타진하고 설득에 나섰다, 회담 시간도 2시간30분으로 비교적 길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아예 그런 말씀 꺼내지 말라"며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영수회담은 별 성과 없이 끝났다. 강력한 카리스마형 지도자인 김영삼(YS)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재임중 야당 대표를 불러 영수회담을 갖곤 했다. YS 집권땐 DJ가, DJ 정부땐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협상 상대였다. 야당 대표 시절 청와대서 대통령과 만나고 그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패턴도 흥미롭다. 문 대통령과 박근혜·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런 경우다. 반면 이명박·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수회담'의 야당석에 앉은 적이 없다. 민주화 이전엔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영수회담이 꽤 알려졌다. YS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은 권력에 미련이 없다, 곧 민주주의를 하겠다고 YS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1979년 YS는 의원직 제명을 당했고 이 정치적 고비는 부마항쟁, 10.26으로 이어졌다. YS 10차례 최다…DJ·朴은 8차례…盧 2차례·MB 3차례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9일 여야 5당 대표에 오찬 회동을 제안한 가운데 모임의 명칭을 두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번 회동을 권위주의의 산물인 '영수회담'이라고 비판하면서 불참 의사를 나타내자 청와대가 영수회담이 아닌 '여야대표 초청 회동'이라며 반박한 것이다. 영수(領袖)회담은 국가나 정치단체 또는 사회조직의 최고 우두머리가 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뜻한다. 정치권에서는 주로 대통령과 야당 당대표가 일대일로 만나는 회담을 의미했다. ‘대통령’(大統領)과 ‘당수’(黨首)의 회담이기 때문에 영수(領首) 회담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정국이 꼬이거나 대치 국면이 장기화될 때 대통령이 야당을 달래거나 담판을 짓는 최후의 수단으로 종종 영수회담 카드를 던지곤 했다. 여당을 대표해 대통령이 나서서 야당의 대표를 만나 정국을 풀어나가는 상황을 전제한 점이라는 면에서 삼권분립에 따른 입법부의 독립성이 강조되는 최근 정치권 현실과는 맞지 않는 개념이란 지적도 많다. 대통령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입법부를 종속적으로 거느리던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란 설명이다. 실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서는 영수회담이 1년에 한두차례 열릴 정도로 잦았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로는 현저히 주는 추세다. 김영산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각각 10차례와 8차례에 걸쳐 영수회담을 열었다. 이때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하던 터라 대통령이 정국 주도 수단으로 영수회담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청 분리를 천명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때에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등과의 영수회담을 단 2차례 가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등과의 영수회담이 3차례에 그쳤다.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는 국정 운영 스타일 상 영수회담을 돌파구로 삼는 것을 꺼려했던 탓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총 8차례 야당 대표를 만났다. 전 정권에 비해 정국을 풀어나가는 주체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가 다시 대폭 늘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야당 대표와 단독으로 만나는 대신 여당 대표도 같이 만나는 형식을 취해 권위주의 시대의 영수회담과는 성격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후 촛불정국에서 코너에 몰렸을 때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단독 회동을 추진했으나 더불어민주당 측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다당 체제로 출발한 문재인정부에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영수회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 권위를 내려놓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청와대로 여야 당대표를 부르는 대신 국회를 방문해 야당 원내대표를 만나는 것으로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청와대는 이번 대통령-여야 당대표 회동에 대해 "원내대표 회동에서는 법률이나 법안, 예산 문제를 다루겠지만 이번 회동은 순방외교 성과를 논의하고 안보 관련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이니 만큼 당 대표와 회동하는 게 맞다"며 "홍 대표는 물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과 바른정당 대표 등이 새로 선출됐으니 그런 (상견례) 의미를 겸해서도 당 대표를 뵙는 게 맞다"면서 회동 의미를 설명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공감 0% 비공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