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 행복한 비극을 위해 (인터뷰)

김하진 2017. 7. 1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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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공연 중인 배우 진경 / 사진제공=(주)스타더스트

진경은 다양한 얼굴을 지닌 배우다. 입는 옷에 따라 수시로 모습이 바뀐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작품 속 인물을 살아 숨쉬게 한다. KBS2 ‘함부로 애틋하게'(2016)에서는 처연한 엄마, SBS ‘낭만닥터 김사부'(2016)를 통해서는 냉철한 간호사로 살았다. 그가 4년 만에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연출 황재헌)로 관객 앞에 섰다. 늘 그랬듯 극중 연옥으로 옷을 갖춰 입었지만 다른 점은 연옥의 눈에서는 인간 진경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끼가 넘쳐서 연기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진경은 고통의 터널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그 누구도 연기에 대해 흠 잡지 않지만 갈증을 느꼈고, 그 아쉬움을 연옥이 채워주고 있다. 덕분에 죽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돼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우선 배우로서는 이번처럼 좋은 작품으로 깨닫고 치유받으며 목마름을 해소할 참이다.

10. 2013년 이후 4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기분은 어떤가요?
진경 :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사람들은 “대사가 많고 감정 소모도 큰데 힘들지 않느냐”고 하는데 정작 저는 치유받는 느낌이에요. 감사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영화나 드라마 일정도 연극이 끝난 이후로 잡혀있어서 더 즐길 수 있고요.

10.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선택한 이유는요?
진경 : 올봄에 출연 제안을 받았어요. 황재헌 연출가와 친분이 있었는데, 대본을 보자마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한 박자 쉬어가고 싶은 때였죠.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은 열망이 강했는데 딱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을 만난 거예요.

10. 어떤 부분에서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요?
진경 : 연출이 남자인데도 여성의 심리에 대해서 어쩜 이렇게 잘 알고 있을까 싶더라고요. 파리에서 어떤 조각상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쓴 작품이래요. 한 공간 안에서 떨어져 있는 남자와 여자를 보고요. 남녀의 심리나 본질을 세련되게 담아냈더라고요. 서로 다른 감정선을 잘 잡아내서 감탄했고, 연출에게도 “너 정말 훌륭한 연출이구나”라고 했죠.(웃음) 작품이 주는 매력이 가장 컸고, 다음은 배우로서의 욕구였어요. 몇몇 드라마에서 센 캐릭터를 맡았더니 실제로 제가 센 줄 아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게 강하게 살면 부러지죠.(웃음) 그런 이미지를 좀 털어버리고 진솔하게 연기하고 싶었어요. 그런 저의 욕구와 잘 맞아떨어졌죠.

10. 극중 연옥을 통해 배우 진경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군요.
진경 :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들이 외적인 이미지가 중요했다면 연옥은 달라요. 내면이 조명되는 극이기 때문에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폭도 넓죠. 마냥 ‘멋있다’는 게 아니라 연옥의 삶을 통해 보는 이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공감하게 하는 계기를 만드는 캐릭터예요. 아무리 강하게 하려고 해도 결국 왜 그런지 속을 아니까 연민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입체적인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10. 가장 공감한 장면이 있나요?
진경 : 리허설 때부터 눈물에 콧물에, 펑펑 울었어요.(웃음) 공연을 하면서도 매번 그렇게 우는 것 같아요. 할 때마다 와닿는 장면과 대사가 다 달라요. 그래서 좋은 대본이란 생각이 들죠. 지겨울 법도 한데, 지겨워지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고 매번 새롭게 느껴져요. 소진되는 에너지가 아니라 치유되는 힘이라고 해야 할까요? 공연이 끝나고 나면 정화되는 느낌이에요. 예전에도 공연을 많이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요. 관객들과 직접 대화하는 방백 장면들이 있는데 그때 눈을 쳐다보면서 이어가는 게 정말 좋아요. 우리가 울 때 같이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을 보면 힘이 나죠. 그들도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고 있는게 눈에 보여요. 그것도 저에게는 연기를 하는 재미입니다. 연극에는 제4의 벽이 있어서 관객이 없다고 생각하고 연기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작품은 그 벽을 깨고 관객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줘요. 그런 재미가 쏠쏠하죠.

배우 진경 / 사진제공=(주)스타더스트

10. 연기하는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는 건 배우로서 여유가 생긴 것이라고 봐도 될까요?
진경 : 실은 나이가 드니까 어쩔 수 없이 그래요. 특히 최근에 우리 회사 소속이었던 김영애 선생님, 윤소정 선생님도 세상을 떠났잖아요. 그리고 친하게 지낸 연출가도 갑자기 하늘로 갔어요. 하여간 갑자기 가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죠. 어렸을 때 죽음은 삶과 달리 추상적인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다가오는 비율이라고 할까,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김영애 선생님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서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죽는 건 아쉬운 게 없는데 연기는 조금 아쉽다는 말이 숭고하게 느껴졌어요. 연옥이를 통해 죽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있죠. 드라마에서 죽음은 흔한 소재이고 자극적으로 쓰이지만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좀 달라요.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갖고 있죠. 살면서 충분히 사색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이 작품을 하면서 마음껏 즐기고 푹 빠져있습니다.

10. 죽음을 생각하면 서글퍼지기도 할텐데요.
진경 : 그렇다고 어두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더 잘 살까 고민하게 돼요. 오늘 하루가 감사하고, 잘 살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바로 정화되는 느낌이에요.

10. 연옥과 정민이 끌어가는 2인극이나 다름없는데, 러닝타임 내내 무대를 떠나지 않고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 버겁지는 않나요?
진경 : 연극을 4년 쉬어서 다시 하려고 할 때 고민했어요. ‘잘 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와 그녀의 목요일’로 성장하고 있어요. 초반에 연습하다가 한방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든 적이 있는데, 같은 역을 맡은 윤유선의 연기를 보는데 정말 편안하게 하는 거예요. 반면 저는 리허설 때부터 힘을 주고 분석한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더라고요. 평온한 윤유선의 연기를 보고 ‘맞아. 저렇게 해야 하는 거지’란 생각이 들었죠. 그때 한 번 도약했어요. 연기에 정답은 없지만 조금의 차이가 큰 변화를 주거든요. 내려놓는 순간 연옥과 내가 하나 되고, 관객도 그렇게 느끼는 거죠. 그걸 깨달았어요.

10. 20년째 연기자로 살며 주춤했던 순간은 없었나요?
진경 : 이 작품을 하기 전까지 그런 순간이었어요. 잘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양한 역할을 해왔지만 늘 모자라는 느낌이었거든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로 서브 캐릭터였기 때문에 인물의 인생을 극에 다 옮겨올 수 있는 분량의 연기를 할 수 없었죠. 그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고, ‘나’와 캐릭터가 솔직하게 만나는 지점에 대한 갈증도 있었어요. 연이어 작품을 하면서 소진되는 느낌마저 들면서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다시 드라마를 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는데, 행운처럼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만난 거예요. 이 작품으로 다시 힘이 생겼어요.

진경 / 사진제공=(주)스타더스트

10. 연습부터 공연까지 약 5개월을 한 공간에서 보내는 만큼 호흡을 맞추는 배우와 스태프들도 굉장히 중요하죠?
진경 : 특히 윤유선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어요. 정말 선한 사람이에요. 아역부터 연기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고집이 있을 법도 한데 전혀 없어요. 존경심이 들 정도로 선한 사람이에요. 원래 좋아했지만 이 작품을 같이 하면서 더 따르게 됐어요. 배우를 떠나 인간으로서 저 사람같이 살아야겠다는 인생의 목적이 생겼어요.(웃음)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배우와 제작진까지 모난 사람이 없어요.

10. 드라마와 영화로 대중들에게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상에 생긴 변화는 없나요?
진경 : 대단한 슈퍼스타는 아니니까요.(웃음) 간혹 거리를 다니다보면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도 하는데 불편할 정도는 아니에요. 집 앞에 나갈 때도 워낙 소탈하게 해서 스타일리스트가 속상해 할 정도죠. 옷이나 헤어스타일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취미로 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그 외엔 바깥 활동을 별로 하지 않아요. ‘집순이’입니다.

10. 우연히 연극을 본 뒤 연기자의 꿈을 꿨다고 들었어요. 만약 그때 그 연극을 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진경 : 음…그건 잘 모르겠는데 지금 연기자로 할 수 있는 걸 충분히 하고, 다시 태어나면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요. 연기자는 경험해봤으니까 사업을 하면 어떨까, 음악을 하는 사람은 어떨까란 생각은 해요. 이번 생은 그때 연극을 보지 않았더라도 연기자가 됐을 것 같아요.(웃음)

10. 시간이 흐를수록 연기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달라지나요?
진경 : 그렇진 않아요. 끼가 많아서 연기를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처음 연극 무대에 올랐을 때 고통스러웠어요. 맡은 인물에 접근하고 또 표현하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지금은 20년 정도 배우로 살았기 때문에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죠. 데뷔 초의 힘듦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예요. 그 과정을 거쳐 배우로서의 기술을 확보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요. 80%를 채웠고 앞으로는 20%를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죠. 물론 그 20%가 훨씬 어렵겠지만요. 20%는 ‘그와 그녀의 목요일’처럼 좋은 작품을 만나 조금씩 깨닫고 즐기면서 나아가고 싶습니다.

10. 끝으로 ‘그와 그녀의 목요일’의 관객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진경 : 최근 배우 박희순이 이 작품을 보러 왔어요. “연극이 끝난 뒤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는 건 좋은 작품이라는 거야”라는 말을 하더군요.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남녀의 본질과 사람과의 관계, 죽음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내는 작품이에요. 관객들은 극중 인물을 자신의 삶에 투영할 수 있죠. 누구의 인생이든,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언가와 끊임없이 싸우잖아요. 모두가 연옥처럼 투쟁하면서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투쟁의 역사죠. 조지 버나드 쇼가 묘비명에 ‘내 이럴 줄 알았지’란 말을 남겼잖아요. 삶은 결국 비극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 비극을 어떻게 잘, 행복하게 맞이하느냐를 위해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우리 모두의 인생이 그래요. 그걸 위해 싸우는 거죠. 연옥의 투쟁을 보며 관객들도 자신의 삶과 엮어서 공감하면 좋을 것 같아요. 관객들의 눈빛 하나하나가 저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주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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