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컴에 기상위성까지 도입했는데..기상청 못믿는 이유가
과거 통계 벗어나 기상정보 다듬어야
요즘 날씨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극심한 가뭄과 폭염에 이어 뒤늦게 시작된 게릴라성 장마가 결국은 사단을 내고 말았다. 장마가 늦어진 것은 몽골과 시베리아에서 대류권 상층부까지 비정상적으로 발달했던 거대한 기단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남부 지역에 폭염을 몰고 온 뜨거운 북태평양 고기압 때문에 청주 지역에 물폭탄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래저래 일기예보에 대한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기상청의 예보에 대한 불만은 고질적인 것이다. 매년 4000억의 예산을 쏟아 붓는 기상청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은 매우 안타까운 것이다. 오보를 줄이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도 설치했고, 기상위성 천리안도 올려놓았다. 선진국 기상학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기상청에 대한 불만은 여전하다.
기상청의 예보가 정말 엉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통계적으로는 그렇다. 강수예보의 정확도는 92% 수준이고, 최저·최고 기온의 예보도 1.3도 이상 벗어나지 않는다.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일본 기상청의 정확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우리 기상청에 대한 불만이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일기예보에 대한 불만은 대부분 대도시의 강수 예보 때문이다. 특히 서울과 같은 번잡한 대도시 주민들의 강수 예보에 대한 관심은 유별나다. 대도시의 주민들은 비와 눈을 좋아하지 않는다. 유용하지도 않고, 낭만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염된 흙탕물도 싫고, 미끄러운 눈도 피하고 싶다. 특히 주말에는 더욱 그렇다. 대도시 주민들이 예보 오류를 쉽게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론이 전달해주는 단정적이고 확정적인 예보가 주민들의 심기를 건드린다. 그런데 요즘의 예보는 놀라울 정도로 화려하다. 연예인 수준의 캐스터, 위성사진, 레이더 영상, 첨단 그래픽까지 총동원하는 텔레비전의 예보가 특히 그렇다. 화려하고 단정적인 예보가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인 것이 사실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그런 예보를 굳이 의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강수 예보가 빗나가는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실망도 크기 마련이다.
기상청도 단정적 예보의 부작용을 인식하고 있다. 강수 예보에 확률을 동원하고, 전국을 사방 5㎞의 3만7697개 구역으로 나눈 동네예보를 시행한 것도 단정적 예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한 전달 과정에서 확률은 사라져 버리고, 동네예보는 정보의 과잉으로 효용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받았던 김동완 통보관 시절의 경험을 되살리는 것이다. 김동완 통보관의 매력은 손으로 어설프게 그린 기상도였다. 단순히 기상청에서 생산한 단정적인 정보를 일방적으로 제공해주는 대신 한반도 주변의 기상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최대한 단순화시켜 알려주었다. 그런 노력을 통해 소비자들이 예보 생성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을 제공해준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
첨단 그래픽 기술을 활용하면 손으로 어설프게 그린 기상도보다 훨씬 다양한 기상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기압의 배치와 전선의 특성·규모·위치는 물론이고 시간에 따른 변화까지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기상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편서풍(제트기류)의 동향을 알려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기상청이 제공하는 정보도 다듬을 필요가 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평균을 뜻하는 '예년'은 통계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날씨 패턴이 규칙적인 것도 아니었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과거의 통계에 의존한 정보도 무의미한 것이다. 의미와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수십 종류의 어설픈 '지수'도 대폭 정리할 필요가 있다.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특이 기상에 대한 특보의 발령 기준도 분명히 해야 한다. 기상청이 양치기 소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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