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에 '8세 사이즈' 입어라.. 숨쉬기 힘든 S라인 교복

손호영 기자 2017. 7. 1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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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림해 몸이 갇힌 느낌".. 보통 체형도 꽉 죄는 브랜드 교복]
"배꼽티 수준.. 스트레칭도 못해" "두 치수 큰 옷도 식후엔 불편"
일부 학생은 남자 교복 입기도..
업체들, 사람마다 체형 고려않고 디자인에 치중해 교복 만들어

서울 양천구의 한 여고에선 교복 블라우스를 '배꼽티'라고 부른다. 길이가 너무 짧고 몸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팔을 어깨 위로 들면 옆구리가 보일 정도다. 이 학교 정모(17)양은 "교복에 몸이 갇힌 느낌"이라고 했다.

서울 종로의 한 여고에 다니는 박모(17)양은 "교복을 입으면 팔을 움직이기 어렵다. 꼿꼿이 앉아 있다 보면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교복 블라우스를 입고 엎드리면 허리와 등 부근까지 옷이 올라간다는 얘기도 했다. 여중·여고생들의 여름 교복이 천덕꾸러기 신세다. 상당수 학교가 맵시를 강조하면서 허리선을 잘록하게, 길이는 짧게 디자인한 교복을 채택하고 있다. 보통 몸매인 학생들도 조금만 움직이면 속옷과 맨살이 훤히 드러나 제대로 활동하기 어렵다. 체형이 통통한 학생은 꽉 끼는 교복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교복 때문에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받는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한 여고 학생들이 몸에 달라붙는 교복 블라우스 차림으로 하교하고 있다. 과거 여고생 교복은 품이 넉넉했지만 요즘 교복은 성장기 청소년들이 입기에 너무 작아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태경 기자

예전 교복은 활동성을 고려해 펑퍼짐한 스타일이 많았다. 학생 일부가 멋을 내느라 치마 길이를 줄이고, 허리선을 강조하는 식으로 수선했다. 요즘은 처음부터 교복이 몸에 달라붙게 나온다. 늘이기는 어려운 디자인이다. 자신의 실제 몸 치수보다 큰 것을 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서울 종로구의 한 여고생은 "겨울 교복보다 두 치수나 큰 여름 교복을 샀는데도 허리의 'S라인'이 지나치게 들어가 밥을 먹고 나면 옷이 끼어 거북하다"고 했다.

날씬한 맵시만 강조하다 보니 여고생 교복 치수가 8세 아동복 수준이 되기도 한다. 서울 강북구의 한 인문계 여고 교복 상의(키 160㎝·88 사이즈)와 시중에 판매 중인 7~8세 여아용 티셔츠(130 사이즈)를 비교했더니 크기 차이가 거의 없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여고생의 평균 키는 160.6㎝, 8세인 초등학교 1학년 여아 평균 키는 120.5㎝이다.

교복은 기성복과도 차이가 있다. 한국산업표준(KS)에 따르면 키 160㎝인 여성 청소년의 '보통 체형'용 기성복 상의(블라우스 기준)는 가슴둘레 88㎝, 허리둘레 72.8㎝이다. 본지가 구한 여고 교복 상의의 가슴둘레는 78㎝, 허리둘레는 68㎝였다. 교복이 기성복 가이드라인보다 가슴둘레 10㎝, 허리둘레는 5㎝가량 작다.

일부 여학생은 교사의 단속을 피해 남학생용 교복을 사서 입기도 한다. 대전 서구의 한 남녀공학 고교에 다니는 이모(16)양은 "남학생용 교복은 라인이 없어 편하다. 학생주임 선생님이 남자 교복을 입지 못하게 수시로 단속하지만 몰래 입는 친구가 많다"고 했다.

교복 브랜드의 '슬림 라인' 전쟁은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멋을 위해 교복을 줄이는 학생들이 늘면서 교복 제조업체들이 허리가 쏙 들어가고 길이가 짧은 디자인의 교복을 내놓기 시작했다. '재킷으로 조여라, 코르셋 재킷' 같은 광고 문구를 내세웠다.

꼭 끼는 교복은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서울 강북의 한 고등학교 보건 교사는 "학생들이 심하게 다이어트를 하면서 생리불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며 "제대로 먹어야 할 나이에 교복 때문에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교복 업체가 사람마다 다른 체형을 고려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한 업체는 체형 데이터를 바탕으로 청소년 '대표 체형'을 뽑아내 이를 기준으로 교복을 만든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이는 '보기 좋은 체형'일 뿐 해마다 몸이 변하는 청소년들에게 일률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무리다. 교복 업체 관계자는 "교복 디자인은 학교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학교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서 만들 수는 없다"며 "아이들이 맵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편하면서도 예뻐 보일 수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상당수 학교는 학생들이 교복 외에 '옵션'으로 생활복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생활복은 활동하기 편한 티셔츠 형태의 학교 단체복이다. 하지만 많은 학교가 등하굣길엔 생활복 착용을 금지한다. 여름에 입기에 더운 소재로 만들어진 제품도 있다고 한다. "여름 교복과 체육복 구입에 20만원 가까이 쓰는데, 생활복을 사려고 5만원쯤을 더 부담해야 하는가"라며 불만을 드러내는 학부모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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