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학비리, 사학이 사유재산이라는 허구를 걷어내야 해결"

김재중 기자 입력 2017.07.1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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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상지대 민주화 투쟁 40년’ 낸 정대화 상지대 교수

비리 재단과 벌인 지난한 투쟁의 역사를 기록한 <상지대 민주화 투쟁 40년>을 출간한 정대화 상지대 교수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 교수는 “사학개혁이야말로 정치개혁, 사회개혁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정대화 상지대 교수(61)는 2000년대 초 정치개혁에 대한 시민사회의 열망이 제도 정치권을 압박할 때 항상 앞자리에 있었다. 그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의 퇴출을 외치며 낙천낙선 운동을 벌이면서 파장을 일으켰던 2000년 ‘총선시민연대’에서 대변인을 맡았다.

2004년엔 유능한 정치인의 국회 진출을 돕기 위한 ‘총선물갈이연대’를 만들어 공동집행위원장을 했다. 2007년 대선정국에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만든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오충일 대표를 보좌하는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정 교수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 단골 출연자였으며, 각종 신문에 칼럼을 기고했다. 한국 정치의 특징, 정치개혁과 민주화 등을 분석하는 논문과 책을 활발하게 내는 등 학자로서의 전도도 밝았다.

그러나 정 교수는 사명으로 여겨온 정치개혁, 사회개혁에 관한 발언이나 연구활동을 지난 10년간 거의 하지 못했다. 상지대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로서 사학비리의 상징적 인물인 김문기 전 총장에 반대하는 활동을 주도하느라 일체의 대외적인 활동을 스스로 끊었다.

매년 2편가량 학술논문을 발표해온 그였지만 2010년부터 올해 사이에 발표한 학술논문은 겨우 1편이라고 한다. 학교 측으로부터 40건이 넘는 고소·고발을 당했고, 해임되기도 했다. 기나긴 ‘투쟁’ 끝에 김문기 전 총장은 해임됐고, 지난해 말 상지대에 임시이사가 선임되면서 ‘김문기 체제’가 일소됐다. 정 교수는 해임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을 받고 학교로 돌아왔다.

정 교수는 최근 <상지대 민주화투쟁 40년>(한울)을 출간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경향신문을 방문한 그의 얼굴에서는 긴 싸움에서 이겼다는 후련함이 읽혔다. 환갑이 넘은 정 교수는 “얼마전에 내 페이스북에 ‘내 인생은 어쩌다의 연속이었다’라고 쓴 적이 있다”면서 “이제 교수 생활도 얼마 안 남았는데 돌이킬 방법은 없고 남은 시간 사학비리라도 끝을 봐야겠다”고 말했다.

“상지대에 몸담으며 우리 사회에서 변화와 개혁을 가장 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사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사학을 바꾸는 것은 정치개혁을 말하지 않고도 정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뿌리가 바뀌지 않는데 꽃이 달라지길 기대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내가 오랫동안 꽃을 바꾸려고 했는데 사학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이 바로 뿌리를 바꾸는 것이라고 믿게 됐습니다.”

학교 측으로부터 수없이 고소를 당하고, 파면을 당하고, 심지어 형사고발까지 당하는 과정에서 그와 가족이 감당해야 했던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경찰과 검찰, 법원이 집으로 등기우편으로 보낸 소환장, 출석통지서만 해도 300~400통에 달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나는 별다른 충격을 못 느꼈는데 내가 못 느낀 충격을 가족들이 다 받았더라”라고 말했다. “한번은 아내와 말다툼을 했는데 아내가 그래요. ‘당신은 잘려도 헬렐레, 연구년을 못 가도 헬렐레, 징역 10월이 구형돼도 헬렐레 하고 다녔지만, 그 얘기를 전해들은 내 심정은 어땠겠느냐’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나중에 잘해줄게’라는 것밖에 없더라고요.” 시원시원하게 말하던 정 교수의 목소리에서 잠시 물기가 배어나왔다.

사학비리 문제의 근본 해결 방안은 뭘까. 그는 “사학이 사유재산이라는 허구 또는 신화를 걷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학 문제에서 가장 본질적인 논점은 재산권”이라면서 “이미 학교라는 공공기관과 교육이라는 공공사업에 바쳐진 재산이 사유재산이라고 하는 것은 빈약하고 공허한 논리이지만 잘 먹혀온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학의 재산권’ 문제는 상지대 사태의 촉발 원인이기도 하다. 상지대 정이사 체제를 무너뜨리고 김문기씨 복귀의 길을 터준 200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본질이 사학의 재산권 인정이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그 판결로 정부에 사학분쟁조정위원회라는 게 생겼고 상지대뿐 아니라 퇴출됐던 여러 비리사학이 복귀했다”면서 “하지만 학교는 어느 누구의 사유재산으로 봐선 안된다는 법원 판결이 이어지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도 비슷한 취지의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사학비리 문제의 구조적인 해결로 가는 길을 절반쯤은 지나왔다면서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등록금 인상이 제약되고 신입생이 줄면서 사립대에 국고 지원이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국고 지원에는 정부의 감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재산권에 관한 문제가 정리되고 정부가 사학을 지원한 다음 감독하면 사학비리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그리고 과거 사학이 민주화됐다가 비리재단 복귀라는 반동을 경험했고, 이제 다시 비리재단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됐다고 봅니다.”

“어쩌다 보니 상지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 버렸다”고 말하는 정 교수는 이제 4년 뒤면 정년을 맞는다. <상지대 민주화투쟁 40년> 출간으로 지난 투쟁을 종합 정리한 그의 시선은 이제 미래로 향하고 있다.

정 교수는 “그간 이 문제에 헌신해왔던 교수들, 학생들이 ‘이제 김문기와의 싸움은 끝났다, 이제는 학교를 살려보자’면서 방향을 전환하고 있고 준비도 하고 있다”면서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도 사학비리로 고생하고 있는 다른 학교들에게도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