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지금] 사학 스캔들에 가로막힌 아베.. '전후체제 탈피' 꿈 가물가물

우상규 입력 2017. 7. 17. 19:28 수정 2017. 7. 1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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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토모·가케학원' 의혹 잇달아/ 지지율 추락.. 마지노선 30% 뚫려/'내년 상반기 국회서 개헌안 발의/ 2020년 시행'.. 일정표 일방 발표/ 아베, 불성실한 해명 태도에 실망
‘전후 체제 탈피’라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사학 스캔들’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1강’ 구도가 무너지면서 자신의 임기 내 헌법 개정과 시행이라는 꿈도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국면 전환을 위해 개각뿐만 아니라 기습적으로 중의원 해산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지지율 뚝뚝… 멀어지는 전후 체제 탈피 꿈

2012년 말 재집권 이후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일본 역사상 최강’이라 불리던 아베 총리는 최근 급격한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이달 들어 일본 주요 언론사들의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대부분 30%대로 떨어졌다. 특히 지지통신 조사(7∼10일)에서는 한 달 만에 15.2%포인트나 하락하면서 29.9%를 기록했다.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30%가 처음 뚫린 것이다.


민심이 이탈하면서 아베 총리가 밀어붙여 온 전후 체제 탈피 행보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일본이 짊어지게 된 부담을 모두 떨쳐버리겠다는 것으로, 아베 총리가 1차 집권했을 때부터 내건 구호다.

일본 내부적으로는 군대 보유와 전쟁을 금지한 ‘헌법 9조’의 무력화를 통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올가을 열릴 임시국회에 자민당 개헌안을 제출하고 내년 상반기 정기국회에서 개헌안 발의한 뒤 국민투표를 거쳐 2020년 개정 헌법을 시행하겠다는 일정표를 일방적으로 제시한 상태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야당들뿐만 아니라 자민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의 테러대책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 지난 5월 16일 도쿄 국회 앞에서 ‘아베 개헌 중단하라’, ‘공모죄는 안 된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EPA연합뉴스

국제적으로는 일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이다. 일본은 아프리카 국가 등과 협력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수를 늘리는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의도대로 되면 유엔 안보리는 2차 세계대전 승전국 모임의 색깔이 사라지게 되고, 일본도 당당히 세계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중국이 거부감을 보이고 있고, 우군이 돼 줘야 할 미국과의 관계도 무역 불균형 문제로 최근 불편하다.
◆발목 잡은 사학 스캔들… 해소되지 않은 의혹들

아베 총리의 발목을 잡은 것은 사학 스캔들이다. 사학법인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입 문제에 아베 총리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내각 지지율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야당 의원이 이 문제와 관련해 국민 80%가 정부 설명에 납득하지 못한다고 지적하자 아베 총리는 “그(NHK) 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53%, 자민(38.1%)·민진(6.7%) 지지율은 잘 알지 않느냐”고 비꼴 정도로 당당했다.

하지만 이후 아베 총리의 친구가 이사장인 사학법인 ‘가케 학원’이 52년 만에 수의학부 신설 허가를 받는 과정에 아베 총리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추가되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아베 정권은 모리토모 학원 때와 마찬가지로 해명보다는 의혹을 덮는 데만 신경을 썼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실망감은 커져갔다. 교도통신의 15~16일 여론조사를 보면 가케 학원 논란과 관련해 ‘문제가 없었다’는 정부의 설명에 대해 응답자의 77.8%가 “납득할 수 없다”고 답했다. 지지통신의 최근 조사에서도 67.3%가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아베 총리의 불성실한 해명 태도와 각료들의 실언 등이 겹치면서 국민의 시선은 냉랭해졌다. 이는 지난 2일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역대 최소 의석을 얻는 데 그치는 역사적 참패로 이어졌다. 아베 총리는 이달 안에 국회에 출석해 ‘사학스캔들’에 대해 직접 해명하기로 했지만 신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면 전환용 개각… 중의원 해산 카드도 꺼낼까

아베 총리는 다음달 초 개각과 자민당 임원 인사를 통해 국면 전환을 시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성난 민심을 달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아베 총리는 정권의 기둥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을 유임시키고, 자민당 임원 인사에서도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을 계속 기용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남겨 안정감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경우 쇄신이나 새 출발과는 거리가 멀어 국민의 실망감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총리의 고유 권한인 중의원 해산·총선거라는 카드를 예상보다 일찍 꺼내 들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그동안 일본 정치권에서는 국회에서 개헌을 발의한 이후 중의원이 해산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현재 자민당과 공명당, 일본유신회 등 ‘개헌 세력’이 개헌 발의를 위해 필요한 의석(중·참의원 각각 3분의 2 이상)을 확보한 상황이어서 아베 총리가 이 기회를 반드시 활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구심력이 떨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자민당 내에서 사퇴 압력도 불거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내년 9월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도 치러야 하는데, 이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총리직도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임기 내 개헌은 물거품이 된다. 따라서 그 전에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중의원 해산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당장은 개헌 발의에 필요한 의석이 무너질 수도 있지만, 일단 정권 연장에 성공한 뒤 차츰 국민의 지지를 회복해 다시 개헌에 도전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물론 선거에서 패배하면 곧바로 권좌에서 내려와야 하는 위험 부담도 있다.

우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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