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니발 장군은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을까?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2017. 7. 17. 1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진아의 지구 위 인류사(유럽사 편)] 카르타고와 로마의 힘겨루기, 기후는 로마의 손을 들어주었다

수많은 코끼리들이 알프스를 건너간다. 얇은 옷차림을 한, 훨씬 더 많은 수의 병사들이 그들과 함께 뚜벅뚜벅 걸어 산을 넘는다. 딱 보기에도 이 산에 익숙한 행렬이 아니다. 현지인의 안내를 받아 그 중 쉬운 길로 간다 해도 알프스는 알프스다. 높은 산, 쌀쌀한 날씨 속에서 계속되는 행군, 대열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난다. 견디다 못해 쓰러지는 코끼리도 늘어간다.

 

이 진풍경은 기원전 219년 실제로 있었던 역사의 한 장면이다. 당시 지중해역의 최강자였던 카르타고와, 급부상하고 있던 신흥 세력 로마와의 역사적 대결,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제2막 정도 된다. 코끼리를 앞세우고 진군하는 부대의 총사령관은, 인류의 전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중 하나인 카르타고의 한니발(Hannibal) 장군이다.

 

도대체 한니발 장군은 왜 열대 동물인 코끼리를 타고 눈발까지 휘날리는 알프스를 넘게 된 것일까? ​

 

포에니 전쟁 발발 전 카르타고는 지중해역의 최강자였고, 로마와의 사이에 위치한 시칠리아 섬도 대부분 지배하고 있었다. ⓒ 사진=위키미디어

 

포에니 전쟁이란 당시 서부 지중해역의 최강국이었던 카르타고에, 새롭게 부상하는 로마가 도전장을 던짐으로써 시작된 전쟁이다. 기존 질서를 무시하고 닥치는 대로 카르타고의 영토를 침범하고 착취하는 로마는 오랫동안 이 지역의 강자로 군림하던 카르타고에게 정말 짜증나는 존재였을 것이다. 

 

기원전 219년, 로마는 이베리아 반도의 사군툼Saguntum을 점령, 친(親)카르타고였던 구정권을 몰아내고 자기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카르타고 총사령관 한니발은 로마에게 보복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때 전략이 특이하다.

 

당시 카르타고의 영토였던 시칠리아 북부를 기준으로 보면, 바닷길로는 로마가 불과 10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한니발은 육로로 엄청나게 우회해서 가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먼저 사군툼을 공격, 거기서부터 다시 육로로 1000킬로를 행군해서 알프스를 넘어, 아펜니노 산기슭을 따라 또 1000킬로 더 내려가 로마를 등 뒤로부터 치려는 것이다.

 

이 전략에서 그가 생각한 신의 한 수는 코끼리였다. 아프리카 대륙 사람들인 카르타고 인들은 코끼리를 전투에 많이 활용했으며, 당시 카르타고의 영토였던 이베리아 반도 남서부에서도 꽤 코끼릐를 키웠다. 사군툼 공격전에서 코끼리를 앞세운 카르타고 군 앞에서 혼비백산하는 로마인들을 본 한니발은 코끼리를 끌고 육로로 로마를 치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알프스를 앞두고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 모든 걸 끌고 넘기엔 너무 높고 험한 길이었다. 그는 공성장비를 버리고 코끼리는 끌고 산을 넘는다. 알프스를 넘는 코끼리 부대라는 역사적 진풍경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웹사이트 'ancient.eu/hannibal'에 게재된 지도를 기초로 재구성 ⓒ 사진=이진아 제공

 

고생고생해서 알프스를 넘어 거기서 또 약 1000킬로미터를 행군, 로마에 가까이 갔지만 한니발은 로마를 공격할 수 없었다. 높고 튼튼한 로마 성을 공격하려면 성을 공격하는 전용 장비가 꼭 필요했다.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들면 큰 바위덩이를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 멀리 날려 성벽을 부수는 장비 같은 것들이다. 한니발은 카르타고에 공성장비를 요청하지만, (로마 역사가들에 따르면) 부패하고 이기적인 카르타고 귀족들은 이를 묵살한다.

승승장구하던 카르타고, 로마에 함락

한니발은 로마의 주변 및 훨씬 더 남쪽에 있는 로마의 연맹국까지 돌며 그들을 포섭하면서 지원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느라 또 약 1000킬로미터를 돌아다녔다. 그러는 사이 로마의 용장 스키피오가 카르타고 본토를 공략했다. 카르타고에서는 한니발에게 빨리 돌아와 공격을 막아달라고 했고, 한니발도 소식을 들은 즉시 귀향했지만, 지칠 대로 지친 그의 군사는 크게 패한다. 이후에도 우여곡절이 있었고, 결국 한니발은 조국의 미래에 대한 절망 속에서 자살하는 길을 택하고 만다.

이 슬픈 얘기는 로마 역사가들의 붓끝에서 살아남아 아직까지도 세계사 이야기 중 인기 있는 소재가 되고 있다. 필자에게도 어린 시절 역사 이야기책에서 이 스토리를 읽으면서 몰입하고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궁금하다. 왜 한니발은 바다만 건너면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던 로마를, 그 먼 길을 돌아 육로로 공격했을까? 왜 카르타고 사람들은 최고 지도자였던 그를 그렇게도 지원해주지 않았을까?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는 오래 된 역사 속에서 의문으로 풀리지 않는 부분을 당시의 기후변화 및 그 지역의 생태적 특성과 함께 보면 이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지금까지 이 연재를 통해 봐 왔다. 이번에도 기후변화 그래프부터 보자.

 

 

클리프 해리스&랜디 맨, 'Global Temperature' 게재 그래프로부터 재구성 ⓒ 사진=이진아 제공

 

오른쪽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포에니 전쟁은 로마 기후 최적 바로 이전의 한랭기가 최저점을 쳤을 무렵 일어났다. 나중에 오는 소빙하기 정도는 아니더라도 홀로세 기후 최적으로 지구기온이 안정된 이래 가장 빨리, 가장 낮은 기온점까지 내려갔던 한랭기다. 

 

이렇게 되면 일단 배를 만들 목재 구하기가 힘들어져 해양족들이 대체로 쇠퇴한다. 카르타고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카르타고가 있었던 지금의 튀니스 자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간의 정주가 먼저 일어났던 비옥한 땅 중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조건이 악화되면 빠른 속도로 쇠약해질 수 있는 특성도 가졌다. 다음 지도를 보자.​

 

 

카르타고에선 높은 아틀라스 산맥이 서쪽으로 있다. 그 기슭에 자리 잡은 카르타고는 비옥한 땅을 베이스캠프로 하고, 이 산지의 목재를 이용, 지중해 전역으로 활동하기 좋은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서쪽에 위치한 산지는 대서양 쪽에서 불어오는 습기를 머금은 바람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또한 바로 그 밑에 엄청난 면적의 사하라 사막이 있다. 이런 위치의 정주지는 한랭기가 되어 기온이 조금만 내려가도 식생들이 급속도로 타격을 입게 된다.

 

이에 비해 로마는 서쪽이 바다로 트여있고, 동쪽에 위치한 아펜니노 산기슭에 발달한 정주지다. 습기를 품은 따뜻한 바람이 서쪽에서 계속 불어오는 덕분에 한랭기에 기온이 내려간다 해도 영향을 덜 받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로마는 지중해역 중에서도 가장 늦게 사람들이 모여살고 개발되기 시작한 땅이어서 산림이 무성했다. 

 

아무리 한랭기라 하더라도 지중해역 사람들은 바다를 이용해서 살아간다. 바다 자체의 수온이 그리 낮아지지 않아, 배만 있다면 얼마든지 풍성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후변화와 각지의 생태적 특성에 따라 활동하기 더 유리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 차이가 날 뿐이다. 기원전 500년 무렵, 당시까지 무적의 해양족이었던 페니키아를 쇠퇴시킨 그 한랭기의 기후는 역시 페니키아 동맹 멤버였던 카르타고를 빠른 속도로 무너뜨렸을 것이다. 이들이 약해지자 당시까지 미미했던 로마는 아직 다른 지역보다 월등하게 풍부한 목재를 이용, 배를 만들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좁고 생산성이 낮은 땅의 한계를 공격적인 식민지 경영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풀 한포기도 날 수 없도록” 정복한 카르타고 땅에 소금 뿌린 로마

온난기 동안 강력한 해상국이었던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그 가까운 바닷길을 두고 이베리아 반도로 가서 거기서 육지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던 것은, 한랭기라서 로마의 해군에 대적할 만한 배를 만들 목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전 시대에는 해전을 할 때 일단 배를 부딪치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크고 단단한 목재로 만든 배가 거의 해군력을 좌우했다. 아무리 잘 만든 배라도 나무를 조각조각 이어서 만들었다면 충돌 시 쉽게 부서지며, 그럼 그걸로 게임이 끝난다.

 

크고 단단한 나무는 공성장비를 만드는 데도 꼭 필요하다. 어렵사리 육로로 로마까지 왔는데, 높은 라우레툼 언덕에 위치한 로마 성을 공격할 수 없었던 한니발. 고국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공성장비도 그걸 실어 나를 배도, 크고 튼튼한 목재들이 충분해야 확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카르타고에 남아 있던 정책결정자들이 한니발을 도와주고 싶었다 해도, 대규모 공성장비를 공급해주는 건 능력 밖의 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왼쪽: 로마시대 제작된 한니발의 흉상. 오른쪽: 19세기 독일 화가 홀츠슈니트가 그린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 ⓒ 사진=위키미디어

 

 

물론 쇠퇴해가는 나라인 만큼 자기만 살고보자는 이기주의가 카르타고 사회에 팽배해 있었을 수도 있다. 똑 같이 한랭기를 겪으면서도 생태적 조건이 월등 유리했던 로마인들은 그렇게 약해지고 분열되어가는 카르타고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로마인들이 카르타고에 가한 보복의 잔인성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면 제3차 포에니 전쟁까지 승리한 후 로마는 카르타고에 불을 질렀을 뿐 아니라, 엄청난 양의 소금을 땅에 뿌렸다고 전해진다. 다시는 그곳에서 풀 한 포기조차 자라지 않도록. 로마인들의 악명 높은 잔혹성은 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한 납 용기 및 납 수도관에서 오는 납 중독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어쨌거나 카르타고는 이후 역사의 주역으로서는 자취를 감추고, 온난기를 맞아 더욱 강력해진 로마가 한동안 지중해의 폭군으로 군림하게 된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