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박성현(24·KEB하나은행)이 15번홀(파5)에서 버디 퍼트를 넣고 단독선두로 오르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엄지 손가락을 펼쳤고, 박성현을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

박성현은 트럼프 대통령을 보지 못했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어제(3라운드)는 오신 걸 봤는데, 오늘은 못 봤다. 오직 버디를 잡는데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남달라’ 박성현이 트럼프 대통령의 축하를 받으며 US여자오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지난해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로 뛰어들어 첫 우승을 세계 최고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장식했다.

박성현은 17일 미국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GC(파72·6732야드)에서 열린 제72회 US여자오픈(총상금 500만달러)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1개로 5타를 줄이며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우승했다. 우승상금은 무려 90만달러(약 10억3600만원).

50년 만의 US 여자오픈 아마추어 우승을 노린 최혜진(17·부산 학산여고)이 9언더파 279타로 단독 2위를 차지했고, 세계랭킹 1위 유소연과 허미정이 7언더파 281타로 공동 3위에 올랐다. 40년 만의 이 대회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노린 펑산산(중국)은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범하며 6언더파 282타를 쳐 공동 5위로 마쳤다.

US여자오픈은 여자골프 메이저대회 중에서도 최고 역사와 권위를 자랑한다. 1998년 박세리가 ‘맨발 투혼’을 보이며 처음 우승한 이후 올해까지 9번이나 한국선수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대회다.

한국 골프선수 중 가장 호쾌한 경기 스타일을 자랑하는 박성현은 김주연(2005), 박인비(2008·2013), 지은희(2009), 유소연(2011), 최나연(2012), 전인지(2015)로 이어진 US여자오픈 한국인 챔피언 계보를 이으며 스타 탄생을 신고했다. 최근 10년새 7번이나 한국 선수들이 우승했고, 올해는 특히 공동 8위까지 10명 중 8자리를 차지하면서 ‘US여자오픈’이 아닌 ‘한국여자오픈’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박성현에게 축하인사를 보냈다. 미국 언론은 “미국선수들을 더 응원했겠지만, 트럼프는 골프를 사랑한다”고 적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에서 골프를 시작한 박성현은 국가대표를 거쳐 프로무대에 뛰어든 뒤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2015년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스타로 발돋움했다. 2015년 3승에 이어 2016년 7승을 거두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를 휩쓴 박성현은 올해 미국 무대에서 4차례 ‘톱10’ 진입 끝에 마침내 대박을 터뜨렸다.

‘모든 일에 성공하려면 남달라야 한다’는 중학 시절 은사의 조언을 따라 ‘남달라’라는 좌우명 겸 애칭을 캐디백에 새겨넣은 박성현은 한국팬들로부터 얻은 ‘대세’, ‘지존’, ‘닥공’ 등의 별명이 유난스럽지 않음을 증명해 보였다.

박성현의 우승 스토리는 단박에 큰 화제가 됐다. 현지 언론에선 공격적인 스타일로 붙은 별명 ‘닥공’에 큰 관심을 보였고, ‘남달라’라는 애칭에 얽힌 사연도 소개됐다.

박성현은 지난해 US여자오픈에서 마지막날 챔피언조에서 선두를 달리다 결정적인 실수 한 방으로 공동 3위에 머물렀던 아쉬움을 이번에 깨끗이 씻었다. “지난해 경험이 이번 우승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세계랭킹 2위 최혜진은 한때 2타 차 선두로 앞서갔으나 16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뜨리는 바람에 통한의 아쉬움을 남겼다. 50년 만에 US여자오픈 아마추어 우승자가 될 기회를 놓쳤지만 박성현처럼 쓴 경험을 미래의 자산으로 삼으며 ‘차세대 세계여자골프 에이스’ 자리를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