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로 영재고 키웠더니.. 10명중 1명 의대行
"이공계 인력양성 취지에 어긋나" 정부 제재 나섰지만 효과 불투명
일부선 "의대 가도 과학발전 기여"
우수한 이공계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영재고의 최근 졸업생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조사됐다. 졸업생의 각각 20%, 10%가 의대에 진학한 영재고와 과학고도 있었다. 영재고·과학고에는 통상 일반고의 2~4배에 달하는 국가 예산이 지원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과학고·영재고에서 해마다 '장래의 의사'들을 키워내는 것은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면서 "이공계 인재 양성에 쓰겠다며 과학고·영재고에 들인 예산 가운데 일부가 엉뚱한 곳에 쓰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졸업생 20% 의대 진학하기도
16일 교육부에 따르면, 2016년 전국 영재고 졸업생(499명)의 9%(45명)가 의학계열로 진학했다. 2017년 졸업생(675명)의 경우 57명(8.4%)이 의대에 갔다. 해마다 영재고 졸업생 10명 가운데 1명꼴로 의학계열 대학에 진학한 것이다. 한 입시전문가는 "중학교 때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영재고에 진학한 학생들이 고2~3학년이 되면서 의대로 진로를 바꾸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영재고 가운데 의대에 가장 많은 졸업생을 보낸 곳은 2009년 과학고에서 영재고로 전환한 서울과학고로, 지난해 졸업생(125명)의 20%(25명)가 의대에 갔다. 이 학교는 2013년부터 해마다 약 15~23%의 졸업생이 의학계열로 진학하고 있다. 경기과학고도 2016년 졸업생 12.5%, 지난해 졸업생의 7.8%가 의대에 갔다.
과학고도 2013~2017년 사이 졸업생의 평균 3% 정도가 의학계열 대학에 진학했다. 2015년엔 진학률이 1.7%로 잠시 떨어졌지만 2016년과 2017년 다시 3.3%, 2.7%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서울 지역 과학고의 의대 진학률이 특히 높았다. 지난해 세종과학고(서울 구로구) 졸업생의 10.7%, 한성과학고(서울 서대문구) 졸업생 8.1%가 의대로 진학했는데, 이는 같은 해 전국 20개 과학고 졸업생의 평균 의대 진학률(2.7%)보다 약 4배 높은 수준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서울 지역 학생들이 타 지역 학생들에 비해 수능 점수가 높게 나타나는 등 의대 진학에 유리하기 때문에 진학률 자체도 더 높은 것"이라며 "의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경우까지 합하면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영재고·과학고 학생들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제재한다지만 실효성 의문
영재고·과학고 학생들의 의대 진학을 제재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실제로 교육부는 지난해 ▲고교에서 받은 장학금·지원금 회수 ▲의대 입학 시 학교장 추천서 미작성 ▲고교 입학 당시 의대에 안 간다는 서약서 쓰기 등 방안을 시행하도록 전국 영재고·과학고에 권고하기도 했다. 이에 지난 3월 서울과학고는 2018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에 '의대·치대·한의대 진학 희망자는 해당 계열 진학 시 불이익이 있다'는 점을 명문화했다. 경기과학고, 광주과학고 등도 의대 진학 시 장학금을 회수한다거나 추천서를 써줄 수 없다는 내용을 2018학년도 입학요강에 적었다.
그러나 입시 전문가들은 "학교장 추천서가 없다고 해서 의대 진학 비율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은 "이미 상당수 의대에서는 입시 과정에서 교사 추천서를 받지 않아 영재고·과학고 학생들의 의대 진학을 막는 데 큰 효과를 거두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편에선 "영재고·과학고 학생들의 진로를 틀어막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는 의견도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의대에 진학하더라도 생명과학 등 얼마든지 과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학생들의 의대 선택 자체를 문제 삼을 게 아니라 이공계 진학을 그만큼 독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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