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올리면 소득 늘어난다고? 최저임금 18.2% 올린 도시 들여다보니..

박현영 2017. 7. 17.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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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애틀, 2016년 최저임금 11달러에서 13달러 인상 후
'소득 감소, 고용 감소 vs. 소득 증가' 주장 맞서
"저임금 근로자 근무시간 9.4%, 월 평균 소득 125달러 감소"
"외식업계 대상 연구에서는 임금 1% 오르고 고용 변화 없어"
최저임금 인상 지지자 "연구 방법 오류" "소득 증가 효과 있어"
미주리주는 "높은 최저임금이 일자리 줄인다"며 최저임금 인하
전문가들 "최저임금 대신 근로장려세제 등 대안 모색해야"

[박현영의 글로벌 J 카페] 최저 임금의 경제학

최저임금 시급 15달러를 요구하는 미국의 포스터.
내년에 최저 임금(7530원)이 올해(6470원)보다 16.4% 오르는 것으로 확정되면서 근로자 측과 사용자 측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2011년(16.8%) 이후 가장 큰 인상 폭에다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최저 임금 1만원(시간당)’ 공약의 첫 단추가 끼워졌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의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의견은 경제학자들 간에도 팽팽하게 맞선다. 오히려 고용이 줄어 총 소득은 준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럴 땐 우리보다 앞서 최저임금 ‘고속 인상'의 길을 먼저 간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시의 경험이다.

시애틀은 2015년 이후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리고 있다. 2015년 4월 최저임금이 시급 9.47달러(약 1만734원)에서 11달러(약 1만2468원)로 16.2% 올랐다. 9개월 뒤인 2016년 1월에는 13달러로 인상돼 상승률 18.2%를 기록했다. 올 1월에는 15달러로 15.4% 올랐다. (500인 이상 사업장 기준)

미국 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 도시 중에서도 최저임금 상승 속도가 이례적으로 가파르다. 이 때문에 시애틀은 최저임금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의 관심 대상이다. 최근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 후 고용과 소득의 변화를 연구한 논문 두 편이 잇따라 발표됐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른 뒤 근로자의 소득은 얼마나 늘었을까?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 수가 줄어든다는 통념은 사실이었을까? 두 질문에 대해 두 논문은 정반대되는 답을 내놓았다.

최저임금 인상을 외치는 미국 시위대. [중앙포토]

① UC버클리 “레스토랑업계 최저임금 올려도 고용 줄지 않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UC버클리) 연구팀은 시애틀시가 최저임금을 올린 결과 근로자의 소득이 약간 늘었다고 밝혔다. 의미를 부여할만한 고용 감소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과거 연구 중에도 최저임금을 올려도 고용 감소에 미치는 영향이 적고, 설사 영향이 있더라도 소득 증가분으로 상쇄가 된다는 결과가 꽤 있었다.

1994년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와 데이비드 카드 UC버클리대 교수가 발표한 연구 논문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뉴저지주 최저임금이 4.25달러에서 5.05달러로 인상됐을 때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10대들의 임금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고용 감소의 증거는 없었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발표한 UC버클리 연구는 시애틀 지역 외식·레스토랑 업계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에서는 최저임금 일자리가 대부분 패스트푸드점 등 외식업계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 최저임금이 10% 오를 때마다 외식업계 임금은 1% 올랐다. 일자리 수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범위를 외식업계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모든 업종으로 일반화시키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② 워싱턴대 “최저 임금 대폭 올리니 고용·소득 줄어”

워싱턴대 연구팀은 UC버클리 연구팀과 반대 결론을 내놨다. 최저임금을 올리니 저소득 근로자의 일자리와 근로 시간이 모두 감소했고, 따라서 소득도 줄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워싱턴주 정부가 보유한 전 업종의 근로시간과 근로소득 상세 데이터를 연구에 활용했다. 외식업체에 국한시킨 UC버클리 연구보다 대상 범위가 넓다. 모든 산업군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에게 미치는 효과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연구팀은 “앞선 연구들이 고용 증감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이번 연구는 근로 시간 변화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 증가로 이어지지만, 저소득 근로자의 근무 시간은 상당히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6년 최저임금이 11달러에서 13달러로 올랐을 때 이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일자리 수는 9만3382개에서 8만6842개로 7% 줄었다. 임금은 3% 올랐지만 근로 시간은 9% 감소했다. 저소득 근로자의 임금은 월평균 125달러씩 줄었다.

최저임금이 2015년 9.47달러에서 11달러로 올랐을 때는 인상 전·후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없었다. 2016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소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인상 기간이 짧고(8개월) 인상 폭(18.2%)이 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칼럼에서 "최저임금을 점진적으로 올려 저임금 노동자의 여건을 개선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너무 급격한 조정은 저임금 노동자의 후생을 개선시키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③ 진보 성향 연구자들 “워싱턴대 연구 오류” 반론

워싱턴대 연구 결과는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는 진영에 충격을 안겨줬다. 연구 방법론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진보성향인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의 벤 지퍼러 박사는 “임금이 올라 저임금 일자리가 줄어든 것이 경기 호황 때문인지 최저임금 인상 효과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시애틀은 실업률이 완전고용 수준인 3%대다. 그는 "호황기에는 저임금 일자리가 고임금으로 바뀌고, 저임금 근로자의 근무 시간 감소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애틀의 레스토랑업계에서는 워싱턴대 연구를 인용하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시애틀 레스토랑협회의 질리안 헨즈 대변인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염려를 연구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다. 워싱턴대 연구 결과를 시애틀시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업계는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운다는 점도 시애틀에서 목격됐다. 14개 업장에서 300명을 고용하고 있는 이단스토웰 레스토랑의 안젤라 스토웰 사장은 최저임금 인상 이후 고용을 줄이지 않았다. 대신 메뉴 가격을 올리고 서비스요금 20%를 신설했다. 스토웰 사장은“주변 레스토랑업자 20명 가운데 고용을 줄였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업주의 부담이 가격 인상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맥도널드 등 패스프푸드점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위대가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미국 연방 최저임금은 7.25달러이며, 주에 따라 10달러대가 많다. [중앙포토]

④ 세인트루이스시는 거꾸로 최저임금 내려

최근 미국 중부 미주리주의 에릭 그라이텐스 주지사는 8월 28일부터 세인트루이스시의 최저임금을 7.7달러로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두달전 10달러로 올랐는데, 이를 종전으로 환원하겠다는 것이다. 삭감률은 23%다. 그라이텐스 주지사는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죽이고 있기 때문에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미주리주에서 최저임금 문제는 법정까지 갔다. 미주리주 의회와 세인트루이스시는 법정 다툼 끝에 세인트루이스시가 승리해 최저임금을 올해부터 10달러로 올렸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짧았다. 당초 세인트루이스시는 올해 10달러, 내년 11달러로 인상할 계획이었는데 제동이 걸렸다.

⑤ 최저임금 인상 외 대안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 근로자의 근무시간과 소득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옴에 따라 저소득 근로자의 실질적 소득을 늘리기 위한 정책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1차 목표는 “소득 불평등 해소”다. 워싱턴대 연구팀의 제이컵 비그도어 교수는 “대공황 직전까지 극심했던 소득 불평등은 1938년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되면서 완화됐다"며 " 철강ㆍ자동차ㆍ석유 등 미국 대기업들이 노동력에 의존해 이익을 창출하게 되면서 블루칼라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경영진과 협상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배분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이 기업으로부터 공정한 몫을 최소한으로 보장 받기 위한 장치로 시작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게 비그도어 교수의 주장이다.

오늘날 이익을 많이 내는 애플ㆍ구글ㆍ마이크로소프트ㆍJP모건체이스ㆍ웰스파고 같은 기업들은 과거 굴뚝 산업보다 훨씬 적은 인원을 고용해 더 높은 수익을 낸다. 미국 상무부가 근무 시간당 기업이 창출하는 이익을 분석한 결과 레스토랑ㆍ호텔업종에서는 1시간 근무할 때 평균 2.5달러의 수익을 올린다. 정보기술(IT)업종은 근무시간 1시간당 평균 22달러 수익을 낸다.

이를 바탕으로 비그도어 교수는 “식당ㆍ호텔업 종사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라고 강제할 수는 있지만 수익률이 낮아 재원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근로자의 빈곤 탈출이 목표라면 최저임금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들이 빈곤가구에 속하는 비중이 낮은 한국에서는 더욱 설득력이 있다. 유경준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2014년 연구에서 "국내에서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들이 빈곤가구에 속하는 비중은 3분의 1 정도이기 때문에 빈곤 감소가 정책의 목표라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보다는 근로장려세제, 사회보험료 지원, 외국인 근로자 대책 등 종합적인 정책조합을 통해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⑥ 향후 전망은

최저임금 인상 움직임은 2012년께 본격 시작됐다. 그해 11월 뉴욕 맨해튼 맥도널드 앞에서 패스트푸드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200여명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시작한 것이 미국 전체로 확산됐다. 최저임금 인상 운동의 슬로건은 ‘15달러를 위한 투쟁(Fight for 15)’이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유권자의 52%가 최저임금 15달러에 찬성했다. 연간 3만 달러 이하 소득 가정에서는 67%가 최저임금 인상을 찬성하고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데이비드 어토 교수는 최저임금제 논쟁이 벌어진 시애틀을 “석탄 막장 안 카나리아”에 비유했다. 카나리아는 사람보다 일산화탄소 등 유해가스에 먼저 반응하기 때문에 옛날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막장에 데리고 들어갔다. 카나리아가 노래를 멈추면 광부들이 서둘러 갱도를 빠져나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온라인 해설 전문 사이트인 파이브서티에잇은 “카나리아가 목숨을 희생하며 다가오는 거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것과 같이 시애틀이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경고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고임금 경력자가 우대받으면서 청소년ㆍ무경험자 등 노동 시장 신규 진입자는 경쟁에서 밀려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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