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뭐라도 좀 시키지.. 카페 점령한 얌체족

이정구 기자 2017. 7. 15.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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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3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근처 한 패스트푸드점은 점심때가 지났는데도 50여명의 사람으로 붐볐다. 그중 30명 정도는 햄버거나 음료 등을 전혀 시키지 않은 채 테이블 위에 각종 서류를 펼쳐놓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화가 끝나면 한 사람은 떠나고 남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찾아와 대화를 이어갔다. 매장 측은 "이들 대부분이 온종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 브로커와 중개업자"라고 말했다.

주문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 카페 안내문. / 이정구 기자

역세권 카페나 패스트푸드점들이 부동산 관련 업자와 보험·대출상담사 같은 '영업맨'들의 무료 사무실로 붐비고 있다. 매장들은 '각종 브로커 출입금지' 같은 안내문을 붙이며 대응에 나섰다.

교대역 근처 패스트푸드점은 이 부근에 있는 모델하우스 3~4곳의 분양상담사들이 찾아오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매장 직원 이모(19)씨는 "주문도 하지 않고 아침부터 온종일 상담 사무실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며 "무료 커피 리필을 요구하거나 테이블이 더럽다며 빨리 치우라고 요구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수현(28)씨는 "점심을 먹으러 왔는데 테이블 위에 음식 대신 서류를 놓고 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앉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매장에서 만난 분양상담사 최모(61)씨는 "지하철 2·3호선 교대역과 가까워 고객이 찾아오기 쉽고 특히 매장 2층은 눈치 볼 일도 없어 자주 찾는다"며 "양심상 커피 한 잔 정도는 주문하는데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는 상담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매장 측은 이들 때문에 영업을 방해받자 작년 말 2층 출입구와 매장 안쪽에 '매장은 구매 고객을 위한 공간이며 제품 주문 없이 장시간 착석하는 브로커 및 부동산 중개업자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을 부착했다. 영업에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할 경우 강제 퇴점 조치하겠다는 내용도 포함했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 매장 측은 "고객을 구분해서 나가달라고 할 수도 없어 협조해달라는 뜻으로 안내문을 붙였지만 문제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근처 한 카페도 지난달 초 매장 출입문에 '주문을 전혀 하지 않고 업무만 보고 나가시는 분들은 매장 출입을 삼가달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카페 직원 박모(28)씨는 "지난달 초 한 손님이 스마트폰 충전기를 빌리더니 주문 없이 한참 앉아서 충전만 하고 나가버린 뒤 안내문을 붙였다"며 "역 주위에 부동산 중개를 비롯해 영업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료로 제공되는 물만 마시면서 일만 하다가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안내문을 붙인 다음 그런 손님이 줄긴 했지만 아직도 주변 카페들은 모두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품 매장은 기본적으로 영업을 위해 조성된 공간이고 이곳을 점유하면서 영업에 지장을 주는 행위는 주거 침입으로 볼 수 있다"며 "영업을 방해하면서 사익 추구 활동을 하는 경우 사업주가 강제 퇴거 등의 조치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규정이 있어도 사장들은 '갑질' 논란으로 비칠까 봐 손해를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며 "프랜차이즈 매장이 와이파이와 콘센트 등을 제공하는 것은 상품 구매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주문을 하지 않는다는 건 무임승차와 같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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