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땅밑에 거대한 '물받이'.. 국내 도심 하수터널 1호 가보니

윤지로 2017. 7. 1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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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구 일대 지대 낮고 반지하 많아/매년 장마철마다 물난리 큰 고통/지하 10m에 지름 4.3m '터널' 뚫어/시간당 91mm·1만5000t 빗물 처리/폭우 와도 침수걱정 "이젠 끝"/ 작년 10월 완공 후 올핸 침수 全無
지하 10m. ‘한 치 앞도 안 보인다’는 말을 실감케하는 이곳은 경기도 부천시에 설치된 국내 최초의 ‘하수터널’이다. 지난 12일 기자가 찾은 하수터널 바닥에는 갯벌처럼 질척거리는 침전물이 깔려있었다. 사흘 전 부천에 내린 시간당 59㎜의 폭우를 받아낸 흔적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강수는 집중호우 형태로 갈수록 난폭해지고 있다. 여기에 도시 개발로 흙길 대신 포장도로가 늘면서 도시의 물받이 능력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부천 하수터널은 큰비가 쏟아져도 도로가 잠기지 않도록 땅 밑에 박은 ‘물그릇’이다. 지난해 10월 완공된 이 하수터널은 지난 9일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예전 같으면 주택가와 도로로 넘쳐흘렀을 장맛비를 고스란히 받아낸 것이다.

◆‘불투수율’ 전국 1위 부천… “이제 침수걱정 없겠죠?”

주민 이향란(56)씨는 부천 토박이인 남편과 35년 전 결혼해 내내 성곡동에 살고 있다. 그동안 이씨의 장마철 필수품은 모래주머니와 펌프였다. 지대가 낮고 반지하 가구가 많은 동네 특성상 장마가 지면 으레 침수피해가 났기 때문이다.

“딱히 어느 해라고 할 것 없이 거의 매년 물에 잠겼어요. 우리 집은 좀 높은 데 있어 그나마 덜했는데 조금 아랫동네 반지하 집들은 툭하면 발목까지 물이 차서 펌프로 물 빼내고 젖은 이불, 가구 말리는 게 일이었어요.”

한국환경공단 직원들이 부천 하수터널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9일 부천에 장맛비가 쏟아지면서 높이 4.3m의 터널에 3.5m까지 빗물이 들어차 물이 닿은 곳과 닿지 않은 곳(위쪽 하얀 부분)의 경계가 선명하다.
2010년에는 추석연휴 첫날 시간당 70㎜가 넘는 기습폭우로 1000여 가구가 침수돼 통장이었던 이씨가 명절 내내 문 닫은 식당 대신 동주민센터로 이재민들의 끼니를 지어 나르기도 했다. 그 이듬해 여름에도 부천에는 이틀 동안 381㎜의 기록적인 물폭탄이 쏟아졌다.

이씨는 “2010∼2011년은 말할 것도 없고 조금만 비가 와도 하수가 역류해서 물난리가 났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천이 특히나 비에 취약하게 된 것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불투수 면적률 탓이기도 하다. 불투수 면적률이란 지역 내에서 지붕이나 도로처럼 빗물이 지표를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면적의 비율을 말한다. 불투수 면적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빗물이 땅에 흡수되는 양이 줄어 홍수가 날 가능성이 높다.

14일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부천의 불투수율은 61.7%로, 전국 평균(22.4%)을 크게 웃돈다. 2위인 서울(54.4%)조차 훨씬 앞지른다.

이에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은 2012년 부천의 상습적인 침수를 예방하기 위해 피해가 특히 심한 오정구 일대 6.32㎢를 ‘도시침수 대응 시범사업’ 구간으로 지정했다.

기존 3㎞ 길이의 하수관로를 교체·신설(0.81㎞)해 빗물이 빠져나가는 길을 늘렸다. 하지만 지름 0.6∼1.4m짜리 하수관로는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비를 감당하기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공단은 하수관로 정비에 더해 이보다 3∼7배 큰 지름 4.3m짜리 ‘터널’을 땅 속에 뚫었다. 1만5000t의 빗물을 담아둘 수 있는 커다란 물그릇이 새로 생긴 셈이다.

하수터널의 빗물은 인근 하천(베르네천)으로 방류되기 전 이물질을 걸러내는 장치를 거친다.
◆국내 도심 하수터널 1호… 미국·일본에는 지름 9m짜리도

‘지하에 터널을 만들어 물길을 넓힌다’는 아이디어는 단순하게 들려도 일반 하수관 공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보통 하수관은 지름이 2m가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1.5m 정도 땅을 파서 묻는다. 그런데 이렇게 얕은 곳에는 하수관로뿐 아니라 상수도관 및 지하 전기배선 등 다른 시설물도 많이 깔려있어 커다란 하수터널은 더 깊이 묻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정구처럼 주택이 밀집한 곳은 터파기용 발파를 하는 것도 위험하다.

공단은 복잡한 지하시설과 반지하 가구가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발파 없이 안전하게 굴착하는 쉴드 TBM(Shield Tunnel Boring Machine) 공법을 도입했다.

터널이 끝나는 지점에는 흘러들어온 물을 1분당 250t씩 퍼올려 인근 하천으로 내보내는 빗물펌프장도 함께 설치됐다.

하수터널은 평소에는 닫혀있다가 강수량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기존 하수관로의 처리용량을 넘어서는 빗물을 받아 흘려보낸다. 지난 9일 시간당 59㎜의 비가 내리자 하수터널에 처음 빗물이 들어왔는데, 높이(지름) 4.3m의 80% 지점(3.5m)까지 물이 찼다. 이날 방류량은 1만2000t에 달한다. 예전 같았으면 도로 곳곳을 물바다로 만들었을 양이다.

주민 이씨는 “이번에도 큰비가 내려 걱정을 했는데 한 곳도 침수되지 않았다”며 “내 기억에 이런 일은 거의 처음”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천 하수터널이 처음이지만 미국이나 일본에는 지름 9m가 넘는 터널도 곳곳에 있다. 한국환경공단 환경관리시설처 공사감독 권철배 차장은 “하수터널은 시간당 91.3㎜의 강우에도 침수를 예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침수 예방은 물론 지역 이미지 제고와 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천=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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