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왜 아직도 종이辭典을 만드는가

김인구 기자 2017. 7. 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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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금성판 국어대사전’(1991), 이희승 편찬 ‘국어대사전’(1961), 신기철·신용철이 편찬한 ‘새우리말 큰사전’(1975). 이 중 이희승 국어대사전은 상업 출판의 효시 같은 사전이다.

최후의 사전 편찬자들 / 정철 지음 / 사계절

‘이희승 국어대사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엣센스 영한사전’ 등….

1960∼19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귀에 익은 사전 이름들이다. 고급 양장된 고가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제외하곤 누구나 한 권쯤 책상 위에 올려놓고 펼쳐보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상용화되고, 2000년대 인터넷을 이용한 통합 검색이 보편화하면서 두꺼운 사전류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이젠 궁금한 게 있으면 사전을 찾아보는 게 아니라 네이버를 검색해보는 게 당연한 일로 바뀌었다.

책은 사전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사전을 만들었던 사람들에 관한 기록이다.

웹사전 기획자인 저자는 지난해 ‘검색, 사전을 삼키다’를 통해 인터넷과 검색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종이사전의 몰락을 지적한 바 있다. 이번엔 현대 사전 편찬의 역사를 기록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사전을 만들어온 편찬자들의 육성을 담았다. 종이사전을 사라지게 한 웹사전의 기획자가 종이사전의 장인들을 만나 소통한 셈이다.

첫 번째 만난 사람은 조재수 겨레말큰사전편찬위원장이다. 조 위원장은 ‘50년 사전 장인’이다. 주시경·최현배로 이어지는 한글학회(조선어학회)에 1969년 합류한 이후 약 반세기 동안 사전 편찬에 매달려 왔다. 겨레말큰사전은 남북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하는 최초의 우리말 사전이다. 2005년, 통일 시대를 대비해 민족의 언어 유산을 집대성하자는 취지에서 편찬작업이 시작됐다. 2019년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 위원장은 이에 앞서 ‘우리말 큰사전’(1992)의 편찬에 참여했다. ‘우리말 큰사전’은 조선어학회가 1947년 처음 간행한 ‘조선말 큰사전’의 전통을 잇고 있다. 그러나 1989년 시행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탓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1999)에 가려 무대에서 퇴장했다. 조 위원장은 “사전은 인류가 고안해낸 책 가운데 가장 발전적인 책이다. 언어학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류 지식의 총합이자 체계”라며 “아무리 잘못된 사전이라도 가치가 있다. 오류가 있어도 그 사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강조했다.

장경식 전 한국브리태니커회사 대표는 지난 20여 년간 백과사전을 만들어온 인물이다. 1992년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어판 완간에 기여했고, 1999년 ‘브리태니커 온라인’과 ‘브리태니커 CD롬’ 한국어판을 제작했다. 브리태니커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백과사전이다. 상세하고 정확한 기술과 방대한 분량으로 전 세계 백과사전의 ‘바이블’로 여겨졌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위키백과가 인터넷에 무료로 백과사전을 제공하면서 급속히 퇴보의 길을 걸었다.

장 대표는 “전통적인 백과사전은 인터넷 검색으로 한 번, 그리고 위키백과로 두 번의 충격을 경험했다. 위키백과와 전통 백과사전은 속도에서 경쟁이 안 된다고 본다”며 “그러나 위키백과의 정보는 완결성이나 신뢰성에서 불완전한 면이 있다. 백과사전 고유의 기능인 교육을 위해서 교육용 백과사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저자는 도원영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사전편찬부장, 안상순 금성출판사 사전팀장, 김정남 전 민중서림 편집부장 등을 만나 사전의 의미와 역할,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2009)을 펴낸 도 편찬부장은 “앞으로 한국어대사전은 한국학을 지원하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언어의 양상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우리말 통시(通時) 사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뉴에이스 사전’을 만들었던 안 사전팀장은 “언어의 규범이 중요하지만 지나친 제약은 언어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를 나을 수도 있다. 표준어는 옳은 말이고 비표준어는 틀린 말이라는 접근방식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나는 사전 편찬자들의 확성기가 되어 보기로 했다. 독서인이라면 누구나 호기심을 가져볼 법한 인물들을 세상에 소개하는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며 “우리 사전의 과거가 그다지 아름답지 않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반성할 것을 반성한 뒤에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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