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식탁의 비밀'] 건강식이 독이라면..

박지훈 기자 2017. 7. 14.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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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지아니 지음, 전미영 옮김/ 더난출판, 344쪽, 1만6000원

부제 때문에 책에 끌릴 때가 있는데 이 책이 그랬다. 제목 ‘식탁의 비밀’ 아래에 적힌 문구는 ‘건강한 음식이 우리를 병들게 만든다’. 도대체 왜 저런 부제를 붙인 것일까. 의아해하며 책날개를 펼쳤더니 저자를 소개하는 이런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

“무작정 길을 떠난 건강 블로거 케빈 지아니. …건강한 다이어트가 오히려 몸을 망치는 것 같다는 의심을 품게 된 그는 참된 건강법을 찾아 2년 6개월간 세계 곳곳을 누빈다.”

케빈 지아니는 미국에선 꽤나 유명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유튜브에 잘못된 건강 정보를 꼬집는 동영상 약 1000건을 올렸는데, 누적 조회 수가 1000만건을 웃돈다고 한다. 과거 운동을 가르치는 평범한 트레이너였던 그가 건강 전문가로 거듭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저자가 건강 문제에 몰두한 건 가족력 탓이다. 그의 아버지는 저자가 두 살 때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도 유방암으로 투병한 이력이 있다. 저자는 자신 역시 중병에 걸릴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몸을 챙기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대표적인 건 역시 식단 관리다. 생식과 채식만 고집했다. 꿀이나 달걀도 먹지 않는 ‘비건(Vegan)’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건강식이라고 여겨지는 이런 식습관이 언젠가부터 몸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저자는 자신의 건강 철학을 송두리째 바꾸기로 결심한다.

“슈퍼맨이 되기는커녕 나보다 나이가 50세 많은 사람보다 호르몬 수치가 낮아졌다. 몸이 망가지고 있었다. 내가 사기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선의 결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몸이 망가진 건강 블로거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탄탄한 몸을 되찾고, 그 방식이 누구에게나 통한다는 걸 보여주려 나선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건강의 비법을 찾아 나선 저자의 좌충우돌 스토리다. 전문가들을 만나고 각종 자료를 뒤진다. 식탁에 오르는 음식을 연구소에 보내 중금속 함유량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한다. 육류를 통해 동물성 단백질도 섭취한다. 심지어 자신의 몸을 ‘실험 도구’로 사용한다. 커피의 유해성을 알기 위해 90일간 커피를 마시며 몸의 변화를 기록해나간다.

눈길을 끄는 내용이 적지 않다. 일본 오키나와, 이탈리아 사르데냐, 코스타리카 니코야 같은 장수촌을 일컫는 ‘블루존(Blue Zone)’의 식단을 분석한 내용이 대표적이다. 블루존 사람들의 공통된 식습관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①유전자 조작 식품이나 패스트푸드처럼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음식은 먹지 않는다. ②육류를 ‘즐겨’ 먹지 않는다. ③이들 지역에는 녹차나 카카오처럼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는 항산화 식품이 존재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만병통치약처럼 들어맞는 건강식은 없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유전적인 특징에 따라 누구에겐 약이 되는 식품이 누군가에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건강한 음식이 우리를 병들게 만든다’는 부제의 이면에 ‘모두에게 건강한 음식은 없다’는 뜻이 숨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저자는 건강을 지키려면 몸의 변화를 면밀히 살피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한다.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받으라는 당부도 곁들인다.

건강식을 둘러싼 편견과 미신을 꼬집는 내용이 이어지지만 말미에 ‘최후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챕터에서는 정신 건강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주인공은 2014년 별세한 저자의 할아버지. 그의 할아버지는 “유기농 식품은 일부러 멀리하려는 듯” 월마트나 일반 제과업체에서 산 식료품만 먹었다. 건강관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95세까지 살았다. 그의 장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할아버지는 90대가 돼서도 손자에게 무료 통화 프로그램인 스카이프와 웹캠 연결을 부탁할 정도로 뭔가를 꾸준히 익히고 배웠다. 그의 컴퓨터 위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정신 게임에서 패하면 육체 게임에서도 패한다.” 저자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뒤 일갈한다. “식습관, 운동 등에만 초점을 맞춘 장수 연구는 분명 근시안적”이라고. 유머러스한 화법이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게 만들고 갖가지 영양학 정보에 귀가 솔깃해지는 금주의 책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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