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서평가에서 추리 작가로.. 박현주의 변신

2017. 7. 1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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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미스터리 '나의 오컬트한 일상'
작가 닮은 주인공, 기사 쓰며 사건 해결
"이야기 만드는 게 재미있어..행복할 정도"

[한겨레]

나의 오컬트한 일상 1, 2
박현주 지음/엘릭시르·1권 1만2500원, 2권 1만3500원

객석에서 무대로. <한겨레> 연재물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의 필자이자 번역가이기도 한 장르문학 전문가 박현주가 번역과 비평이라는 울타리를 박차고 직접 창작자로 나섰다.

그의 첫 소설 <나의 오컬트한 일상>은 프리랜서 작가이자 번역가인 도재인이 잡지 청탁을 받고 일상 속의 오컬트(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적 관습을 탐방해 글로 쓰는 한편 그런 현상 이면의 크고 작은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과정을 큰 틀로 삼는다. 1권과 2권에 각 세편씩 여섯 연작으로 이루어졌는데, 차례로 점성술, 풍수, 파워 스폿(사람에게 힘을 주는 특정한 지점), 나자르 본주 팔찌(터키식 악마의 눈 문양 팔찌), 기 클리닝(집에 들러붙은 불길한 기운을 씻어 주는 일), 제주 입춘굿을 소재로 삼았다. 여기에다가 편마다 등장인물 둘 또는 셋 사이의 사랑을 둘러싼 감정의 미스터리를 다루며,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는 도재인과 안성현 사이 사랑의 밀고 당기기가 큰 줄기를 이룬다. 이런 여러 요소를 감안해 작가 자신은 이 소설을 일러 “오컬트 미스터리 로맨스”라 표현했다.

“번역을 하고 서평을 쓰면서도 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어요. 5년 전쯤 이 소설을 구상했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출판사와 피드백을 주고받았죠. 실제로 쓴 기간은 2년 정도 됩니다.”

소설 <나의 오컬트한 일상>을 내며 추리 작가로 변신한 박현주. “인생의 모순을 이해하고 싶지만 또 인생이 모순대로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고 말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나의 오컬트한 일상>은 미스터리이긴 하지만, 살인과 흉악범죄가 벌어지고 형사나 탐정이 그 범인을 찾아내는 식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생활 공간에서 흔히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과 그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일상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죄책감 없이 읽고 즐길 수 있는 일상 미스터리를 나부터가 가장 좋아한다”고 작가는 말했다. 이 소설의 제2장 ‘악마와 깊고 푸른 바다 사이에서’에는 재인이 풍수 강의에서 만난 도영의 약혼자 현규가 산업 기술 누출과 관련해 중국에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정작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도영에 대한 현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이며 그것이 곧 일상 미스터리를 이룬다.

“우리는 누구나 좋아하는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죠. 타인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게 간절한 미스터리가 되고 그것을 푸는 과정이 추리소설 속 탐정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한 남자를 둘러싼 사촌 자매의 엇갈린 사랑(‘별에 씌어 있는 것’), 남녀 대학생들 사이 사랑의 작대기 놀이(‘오, 너 미친 달이여’), 고교생들의 팔찌 열풍 속 사랑(‘천사의 눈’), 척추장애 주인 남자와 어린 하녀의 사랑과 이별(‘크리스마스에는 집으로 돌아온다’), 실연으로 인한 해리성 정체성 장애(‘낙원의 낯선 사람’) 등 편마다 다채로운 사랑의 수수께끼를 다루는 한편, 재인과 성현이 우연한 만남에서 사랑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뜻밖의 음모와 비밀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감추어졌던 진실을 확인하는 발견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랑에 대한 모든 이론은 사랑에 빠진 여자 앞에서는 무용하다” “토라지는 마음이란 애초에 스스로 묶은 매듭이다” “타인의 깊은 두려움에 대해서 우리는 언제나 약간은 무지한 편이다” 같은 세련된 문장들은 밑줄을 긋게 만든다. 복선과 함정, 인물의 미묘한 심리를 실어 나르는 섬세한 문장, 작가 자신과 닮은 듯 다른 주인공 도재인의 캐릭터도 읽는 맛을 더한다.

“이야기를 만드는 건 너무 재미있어요.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요. 물론 머릿속 이야기를 문장으로 ‘번역’하는 건 또 다른 문제죠. 그래도 앞으로는 번역이나 서평보다는 제 글을 쓰는 시간을 조금 더 늘리려 합니다. 일단은 타로와 사주, 예지몽, 전생체험 등을 소재로 이 연작의 속편을 써 갈 생각이고, ‘연애 농촌 로드무비 미스터리’라 할 또 다른 장편을 웹소설 플랫폼에 연재할 계획이에요.”

유능한 서평가 및 전문가를 잃고 창작자를 얻는 게 독자에게는 손해일까 이득일까. 독자의 손익에 대한 판단은 일단 미뤄 두고, 창작이라는 새로운 상대와 사랑에 빠진 박현주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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