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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존재와 목소리를 지우며 만들어지는 민주주의는 없다."

8일 오후 2시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서울, 민주주의를 배우다>행사에서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씨가 '페미니즘과 민주주의의 관계'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이 자리에서 권김현영씨는 민주주의를 "'약하고 불완전하고 못나고 가난한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을 마음껏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페미니즘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고 강조했다.

150명가량의 청중 앞에 선 권김씨는 먼저 지난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를 언급했다. 그는 "광장의 목소리는 다양했지만 평등하지는 않았다"며 광장에서의 길거리 성추행과 괴롭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여성성 조롱, 가수 DJ DOC 가사 논란 등을 예로 들었다.

이어 "(문제 제기를 위해) 억눌렸던 목소리가 나오고, 그 목소리들이 갈등하고 반목하지만, 다시 그 다음 주에는 서로 광장에서 만나는 식의 경험을 했다"라며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파워풀한 정치적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권김씨는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는 대선을 거치면서 몇몇의 목소리로 축소됐다"며 "(당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는 '돼지발정제를 먹여 강간을 공동 모의했다'는 내용을 자서전에 썼고, 국민의당의 박지원 전 대표는 '향후 100년간 여자 대통령은 꿈도 꾸지 말라'며 박근혜의 실정을 두고 여성들에게 연대 책임을 물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왜곡된 성 인식으로 논란에 휩싸인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실 선임 행정관과 관련해 "(자신이 집필한 책) 3권에서 룸살롱 출입 경험을 자랑하고, 자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여자를 일상적으로 모욕하는 글을 썼음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남성들은 이를 통해 '그래도 되는 선'을 배울 것"이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남성연대는 확실히 '룸살롱 연대'를 통해 이뤄지고 있나 보다. 촛불시민들의 광장민주주의가 어째서 '룸살롱 연대'로 바꿔치기 된 겁니까"라고 주장했다.

권김씨는 "페미니스트 정권이 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책에 쓴 글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제대로 이야기해야 한다"며 "'남자는 원래 그래'라는 말 뒤에 숨어 사람들의 문제 제기가 대의에 위반되는 것처럼 구도를 만들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는 "탁현민씨가 계속 청와대에서 근무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내 관심은 한 개인으로서의 탁현민씨가 아니다"라며 "탁현민씨가 책 몇 권에 걸쳐 쏟아낸 말들이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지난 10년 동안 방치 돼 있다가, 그 말들이 얼마나 문제인지를 깨닫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라고 해석했다.

마지막으로 권김씨는 "없어져야 할 것은 성차별주의지 페미니즘이 아니다"라며 "여성의 존재와 목소리를 지우면서 만들어질 수 있는 민주주의는 없다"고 강의를 마쳤다.

권김씨는 신문 지면 칼럼과 SNS을 통해 탁 행정관 저서와 주류 남성문화의 문제점을 꾸준히 비판해오며 '탁 행정관 퇴출 운동'을 벌여왔다.

탁 행정관은 <남자 마음 설명서>, <말할수록 자유로워진다>, <상상력에 권력을> 등 과거에 쓴 세 권의 저서에 왜곡된 성의식과 여성비하적 발언이 담겨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여성단체들은 지난 7일 탁 행정관의 퇴출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6월 29일부터 7월 5일 사이에는 '탁현민 즉각 퇴출 촉구' 온라인 서명운동이 진행돼 총 7542명이 참여했다.

다음은 권김씨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탁현민 논란, 성평등 위해 정부의 전향적 조치 필요"

권김현영씨
 권김현영씨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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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탁 행정관 퇴출 운동을 벌이실 건가?
"'탁현민 퇴출운동'이라기보다는, 탁현민씨로 대표되는 남성문화가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되면 안 된다는 문제제기다. 한국 정치에서 <나는꼼수다>류의 '양아치 진보 리버럴'이라는 목소리가 주류화됐다고 생각한다. 그 목소리는 여성을 끊임없이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고 유흥업소 출입을 '자유'라고 얘기한다. 그것에 대한 싸움을 하는 거다. 탁현민씨가 행정관 지위를 유지하느냐 안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2017년까지 '우리 남자들은 다 그래'라는 식으로 '룸살롱 문화' 등이 용인될 수는 없다."

- 탁 행정관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보나?
"(사과 자체에) 당연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탁현민씨든 청와대든 '우리 사회의 상식은 이게 아니야. 나는 잘못 생각했어. 바뀌는 게 맞아'라는 메시지를 내줘야 한다고 본다."

- 탁 행정관에 대한 비판이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일벌백계주의의 적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탁현민씨 퇴출에 의견을 같이하는 칼럼만 30건이 나왔다. 여성단체는 물론 더불어민주당 소속 여성 의원 등 굉장히 많은 사람이 탁현민씨를 비판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한두 번 말하면 '사과'가 나오거나,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지 않은가. 정말 '비선실세'구나, 대단한 인물이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거다. 이런 정도의 항의가 있는데 인사조치가 없거나, 메시지가 나오지 않는다면 실제로 아무도 못 건드리는 사람이 된다. 그런 권력은 우리가 용인할 수 없다.

한 사람에게 가하는 비판에 대한 '불편함'과는 별도로, 왜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해결되지 않는지도 질문돼야 한다. 아무도 여기까지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우파의 전략'에 말려든다는 이야기도 있다.
"기우라고 생각한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등의 보수매체는 탁현민씨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 문재인 정부가 '성평등 정부'가 되기 위해선 어떤 개혁적 조치가 필요할까?
"남녀동수내각이 필요하다. 할당제를 채웠느냐를 떠나, 굉장히 전향적인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 의사결정구조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굉장히 안전 중심의, 성공하는 정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은 알겠지만, '그들만의 성공'이어서는 안 된다. 조금 더 과감하게 100일 동안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내각 구성에서도 (국가보훈처장으로 임명된) 피우진 중령을 제외하고는 너무 나이가 많고, 썼던 사람을 또 썼다. 민주주의적 상상력이 지나치게 없다."


태그:#탁현민, #권김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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