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봉'이란 말, 이래서 나오나 봅니다

2017. 7. 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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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이완 경제에디터석 산업팀 기자

이완
경제에디터석 산업팀 기자 wani@hani.co.kr

안녕하세요. 가전제품과 스마트폰, 정보기술(IT) 기기 분야를 담당하는 이완입니다. 오래간만입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은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한 친구가 스마트폰 배터리를 바꿨습니다. 몇달 전부터 갑자기 배터리가 20% 남은 상태에서도 스마트폰이 꺼지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배터리를 100% 충전해도 이전만큼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없었고요. 소모품인 배터리를 직접 빼서 교체할 수도 없고, 스마트폰을 바꾸자니 돈이 아깝고 해서 고민 끝에 결국 수리업체를 찾았다고 합니다. 수리업체 직원은 “2년이나 썼으면 그래도 오래 사용했다. 이보다 훨씬 빨리 배터리를 바꾸러 오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은 어떤가요? 여전히 1∼2년에 한번씩은 스마트폰을 바꾸고 계신가요? 제품 가격이 100만원 가까이 되는 스마트폰을 그 성능 그대로 2년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얼마 전 세계적인 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마침 보고서를 하나 보내왔습니다. ‘제조사가 당신의 스마트폰을 조기 사망시키는 5가지 방법’. 그린피스가 최신 스마트폰과 태블릿·노트북 등 44개 모델을 직접 뜯어보고 평가한 것인데요. 여기에 제가 가지고 있던 의문에 답을 주는 힌트가 담겨 있었습니다.

보고서 내용은 이렇습니다. ‘기기는 의도적으로 수리 및 관리가 어렵도록 제작됐다’, ‘스마트폰은 튼튼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파손되기 쉽게 만들어졌다’, ‘배터리를 교체하기 더 어렵다’, ‘일반 공구로 자가 수리할 수 있는 기기는 매우 드물다’, ‘수리 설명서와 교체용 부품은 거의 제공되지 않는다’.

그린피스는 기업들이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부품들을 사용자가 전혀 교체할 수 없도록 만들어 제품 노후화를 앞당기는 디자인을 한 사실도 일부 확인됐다고 했습니다. 제품의 진부화와 부품 교체의 어려움을 통해 사람들이 계속 스마트폰을 새로 구입하도록 만든다는 겁니다. 개별 제품들의 점수를 따져보니, 스마트폰은 LG G4, G5가 좋은 점수를 받았고, 가장 낮은 점수는 삼성 갤럭시 S8, S7이 받았습니다. 지난해 삼성 갤럭시노트7 이상연소 때도 이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은 ‘배터리가 문제면 배터리를 바꿔달라’고 요구했지만, 기업은 이를 묵살하고 넘어간 바 있죠.

이 내용을 보도한 기사를 보고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옛날처럼 하나 장만해서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원합니다. 기업들 반성하세요!’ ‘근데 왜 배터리 일체형으로 바뀐 거냐?’ ‘기업들이 돈벌이를 위해 멀쩡한 기기를 새로 사게 만듭니다.’ ‘희한하게 약정 끝나면 고장이 나’….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을 보니 소비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궁금해 스마트폰 디자인이 왜 배터리 일체형으로 바뀌었는지 국내 스마트폰 업체에 물어봤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더 많이 팔기 위해서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사용자들이 동영상을 즐기는 시간과 장소가 늘어나면서 예를 들어 워터파크나 화장실에서도 방수가 되길 원하고 있다. 분리형도 생활방수가 가능하지만, 진짜 방수가 되려면 일체형으로 스마트폰을 만들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업체들이 이렇게 소비자에게서 걷는 돈은 얼마나 될까요? 시장조사업체 자료를 보면, 애플은 올해 1분기에 무려 11조7000억원을 스마트폰에서 벌어들인 것으로 나옵니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30.7%! 삼성전자도 올해 2분기 실적 대부분이 반도체 덕분이기도 하지만, 스마트폰 부문도 선방해 영업이익을 14조원이나 기록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액수지요.

여러분의 지갑만 털리는 게 아닙니다. 지구의 자원도 털립니다. 전자제품의 생산은 원재료 채굴에서 시작해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생산과정을 거칩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폐기물도 쏟아지는 거죠.

그럼 소비도 줄이고 지구도 아끼는 방법은 없을까요? 소비자들은 계속 애플과 삼성의 ‘봉’이 되어야 할까요? 국내 스마트폰 시장 판도가 삼성-애플-엘지로 굳어진 상태에서 다른 제품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소비자는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제조사에 ‘배터리 무상교체 서비스’ 등을 제안하면 어떨까요. 기업에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린피스도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채용하는 아이티 기업들은 지구의 유한한 자원을 고려한 새로운 제품 디자인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똑똑한 그들이 과연 못 하는 것일까, 안 하는 걸까?” 묻습니다. 듣고 있나요? 팀 쿡, 고동진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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